경상 감영과 옥 터(대안 성당)
조선 시대 경상도 지역의 행정 중심지이며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앙을 증언한 곳이자 순교지.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는 장사(杖死:장형을 당하여 죽는 일을 이르던 말)하고, 최봉한 프란치스코, 김시우 알렉시오,
서석봉 안드레아, 김흥금, 김장복, 안치룡 등은 경상 감영 옥에서 옥사하였으며
살아남은 7명은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
대구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는 신학교 설립에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중국 상하이의 어떤 신자가 거액을 희사하면서 '유스티노 성인'을 주보로 모실 것을 요청하여,
1914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 탄압으로 1945년 3월 19일에 문을 닫기 까지 모두 67명의 사제가 배출되었고
1982년 '선목 신학 대학'으로 재개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관에 들어가자 신학생들이 수업중이라 조용히 나왔다.
성직자 묘지
1915년 조성된 성직자 묘지는 성유스티노 신학교와 성모당과 연결되어 있다는걸
이날 가서 알게되었다.
비산(날뫼) 성당
비산 성당 자리는 경상 감영의 사형 터 가운데 하나로 '이 알로이시오 곤자가'의 선대 때부터 신자들이 살았다.
최양업 신부의 서한에 따르면 '날뫼'에 교우촌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떤 노파'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병인박해로 관덕정에서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의 시신을 날뫼 뒷산에 묻었던 이응칠 가족도 이곳에 살았고 30명의 신자가 날뫼에 살았다.
여기도 마당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한 형제님이 순례자인지 확인하시고 역사를 설명해 주신다.
형제님께 감사를~
새방골 성당
경신박해 (1860년)를 전후하여 신자들이 살기 시작하였고
병인박해가 끝난 뒤 더 큰 교우촌이되었다.
여기도 친절한 자매님이 성전에 불까지 켜 주시며
천정이 물고기 모양임을 말하신다. 아름다움에 순간 감탄사~~
자매님께 감사를~
가실 성당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348호인 가실 성당은 1895년 설립되었다.
대구 계산 성당에 이어 경상도 지방에서는 두 번째 성당.
경상도 북부 지역과 충청도 일부 지역까지 교세를 맡아 관할하는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하였다.
순례책자에 기도하기 좋은 성당으로 나와 있는데
정말 기도 하고픈 곳이었다.
따스한 외부의 십자가의 길 앞에서 각자의 십자가의 길을 드리고...다음 순례지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