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50분짜리 버라이어티쇼 진행자"
'꿈의 출석'→'칭찬가' 부르고 교과서 문답법으로 공부… NIE·선행록으로 학생과 소통
서울여상 박영하 도덕 교사의 수업은 한 편의 잘 짜인 연극 같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박 교사는 1학년 예(禮)반 학생들에게 '수업 순서 안내'라는 프린트물을 나눠줬다. 각종 행사의 '식순'처럼 이 수업에는 8단계의 '수업순서'가 있었다.
첫 번째는 '꿈의 출석' 부르기. 교사가 이름을 부르자 한 여학생이 일어서 씩씩하게 외쳤다. "저는 책임감과 성실의 미덕으로 은행원이 될 김보라입니다." 마무리는 박 교사다. "사랑과 열정으로 여러분의 꿈을 키워줄 도덕교사 박영하입니다."
두 번째는 '칭찬가' 부르기. 교사와 제자가 손뼉을 치면서 교실이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칭찬의 소리…칭찬합시다."
이후 수업은 '칭찬하기→질문과 대답→미덕을 키워가는 이야기 읽기→식목일을 맞은 노래 감상→교과서 문답법으로 공부하기→다음시간 예고'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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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와 제자가 손뼉을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이 수업은 음악이 아니라 도덕 수업이다. 박영하 교사는 수업이‘50분짜리 버라이어티쇼’라고 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박 교사는 지난 18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수업 방식을 정착시켰다. 도덕 교사들은 이 수업을 '박영하 모델'로 부르고, 그에게 "진짜 도덕 수업을 하는 교사"라는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1992년 서울여상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아이들과 눈도 못 맞추고 책만 읽다 교실을 뛰쳐나오는 '초보'였다. 학생들은 그에게 창 밖만 쳐다본다고 해서 '창밖의 남자', 진도만 줄기차게 나간다고 해서 '진돗개', '나홀로 50분' 같은 별명까지 붙여줬다.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심한 그는 NIE(신문활용교육)며 노래, 시, 칭찬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과 주변인물이 실제로 한 선행에 대해 쓰고, 생각을 덧붙이도록 하는 '선행록'도 쓰게 했다. 10여개 학급 학생들의 선행록에 일일이 두세 줄씩 칭찬의 말을 써 돌려줬다.
선행록의 효과는 컸다. 우울증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학생이 자신감 있게 살아간다는 감사 메시지를 보내왔고, 소극적이던 학생이 박 교사가 선행록에 남긴 "글 잘 쓴다"는 칭찬에 힘입어 방송작가가 되기도 했다.
박 교사는 다른 교사들로부터 "그렇게 하면 교과서 진도는 언제 나가느냐", "인문계에서는 불가능한 교육 방식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박 교사는 "시도를 안해 그렇지, 교사의 열정만 있다면 인문계에서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교사는 50분짜리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요, 연출자입니다. 교사는 이끌고, 학생 스스로 수업을 채워나가도록 해야지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