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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0일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6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1:9-20절 (신399)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교회의 산 자이신 주 예수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 즉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를 환상으로 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고 있으며 장차 성취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에게 복(1:3)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과 그것에 대한 해석입니다. 복음서에서는 ‘그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과거 사역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십자가 복음은 잘 알려지며 강조되고 있지만, 그의 부활의 복음(주 예수의 복음, 산 복음)은 조금 부족하게 이해되며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바울 서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인 부활의 복음, 즉 부활하신 주 예수의 현재와 미래 사역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서문(1:1-8)에서도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를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의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1:5)로 제시하며, ‘구름을 타고 오고 계시는 분’(1:8)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충성된 증인’도 과거에서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 충성된 증인(3:14, 22:16, 22)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서문에서 이같이 부활의 복음을 간추린 다음에 요한은 오늘 본문(1:9-20)에서도 그의 첫 환상을 통하여 부활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가 전하는 부활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교회)의 ‘보배로운 산 돌’(벧전2:3)이신 주를 더욱 깊이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기록자인 요한 자신(교회)의 상황과 사명(9-11)과 교회의 주 예수에 대한 환상(12-20)으로 크게 구분되며, 12-20절은 환상 그 자체(12-16), 요한의 반응(17a), 그리고 그의 환상 해석(17b-20)으로 나누어집니다.
1. 예수 안에서 환난 중에 있는 요한과 형제들(교회)과 사명(9-11)
요한은 자신을 사도로 소개하여 그의 권위를 강조할 수 있으나, 자신을 일곱 교회의 성도인 ‘너희 형제’로 소개하여 그들과 하나임을 강조합니다. 9a절입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또한, 요한은 그들과 함께 ‘예수 안에서’ ‘그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동반자)’입니다. 그와 그들은 예수 안에서 그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과 그들(교회)은 ‘예수 안에서’ 두 가지의 실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환난’입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 전에 어떤 성도는 ‘휴거 ’될 것이며, 나머지 성도는 남아서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그렇듯이 1세기에 이미 환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환난과 고난의 강도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롬8:17-18절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처럼 환난은 하나님의 상속자(아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 위한 필수코스입니다. 만약에 어떤 성도가 환난 전에 휴거된다면, 이 영광을 놓치게 될 것이며, 요한이 강조하는 성도의 하나 됨(동반자)에도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 그 나라’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사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1:5b-6)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왕이요, 의로우며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영광을 버리신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은혜의 복음으로 우리가 이미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인데, 어떤 성도는 휴거가 되고 어떤 성도는 되지 못한다면, 이것은 휴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능력에 대한 중대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그의 은혜 복음에 의하여 ‘예수 안에서 그 나라’라는 우리 정체성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그 환난과 나라’인 우리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인내’입니다. 이것은 막연히 참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될 것이라’는 복음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인내’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때문에 밧모 섬에 유배되어(9b) ‘예수 안에서 그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밧모 섬에 죄수로 있었을 때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여기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은 하나님의 큰 음성과 같다는 것입니다(출19:16).
그 큰 음성은 11절입니다.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네(요한)가 보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의미하는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2. 교회의 부활하신 주 예수의 환상(12-20)
이 명령(11)을 받은 요한이 그 음성을 보려고 몸을 돌이킬 때(12a), 그의 첫째 환상을 보았습니다(12b-16).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성도 여러분, 이 환상을 살펴보기 전에 그 환상을 보았던 요한의 반응(17a)과 그 환상에 대한 주 예수의 해석(17b-20)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요한의 반응입니다(17a).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이것은 요한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이사야(사6;5)나 에스겔(겔1:28) 선지자와 같이 아직 연약하고 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요한에 대한 주 예수의 위로와 자기 계시입니다(17b-18).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주 예수는 두려워하는 요한에게 ‘그의 오른손을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허물이나 죄로 인하여 요한과 같이 두려워하는 우리에게도 그의 오른손을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요한에게 힘있게 그의 부활의 복음을 설명하십니다(17c-18).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주 예수는 1:8절의 하나님과 같다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는 자기 계시와 그것을 설명하는 ‘곧 살아 있는 자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고 그의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시지만, 다시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의 십자가 죽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한 그의 십자가 죽음이 없다면 그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위한 그의 현재와 미래 사역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환란 가운데 있는 교회(우리)에게 그의 십자가 죽음으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영원히 살아 있는 자‘이신 주 예수의 복음(이론이나 죽은 자의 복음이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자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주 예수는 요한에게 그의 환상들을 기록하라는 사명을 다시 줍니다(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어떤 이는 ‘네가 본 것’은 앞에서 요한이 본 환상, ‘지금 있는 일’은 2-3장, 그리고 ‘장차 될 일’은 4:1-22:5절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방해합니다. 이는 2-3장에서 현재와 미래 사건을 예시하는 내용이 있으며, 4-22장에서도 현재와 미래 사건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19)는 17c-18절에서의 주 예수의 자기 계시(그의 복음)를 가리킵니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은 그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한 복음의 결과로서, ‘네가 본 것’은 11절과 같이 요한계시록 전체를 가리키며(1:2),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은 ‘네가 본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넷째, 주 예수의 환상에 대한 해석입니다(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여기서 ‘사자(천사)’는 교회의 목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천성적 특성을 나타내는 교회의 대표로서 거룩한 참 교회와 동일시될 수 있습니다.
주 예수가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20b)고 해석하신 것은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해석 원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주 예수님은 자신의 오른손의 일곱 별(사자)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교회)를 요한이 보았다고 말씀하셨고(요한의 환상에서 그가 첫째로 본 것은 일곱 금 촛대임), 그것들만을 해석하신 것(20)은 요한계시록이 증거 하는 주 예수의 복음은 교회(우리)와 관련해서, 즉 현재 환란 가운데 있는 교회(우리)에게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위로와 소망을 주도록 증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주 예수의 자기 계시(17c-18)와 요한의 사명(18)과 그의 환상의 해석(20)들은 요한의 환상(12b-16)을 이해하는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요한의 첫째 환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의 눈(상상력)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12b-16절입니다.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이것은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17c)라는 자기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과 같은 자의 환상이요, 이것은 ‘살아 있는 자, 곧 죽었다가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 있어 죽음과 음부의 권세를 가지신 자’(18)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해방되었고, 그에 의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이 이미 된 교회(우리)’에 대한 환상입니다.
요한은 교회(20)인 일곱 금 촛대를 먼저 보았습니다(12a). 이것은 성전 전체를 대표하는 슥4:2-6절에서 일곱 등불을 가진 촛대를 시사합니다. 촛대 위에 있는 등불들은 성전을 완성하도록 촛대(이스라엘)에게 주신 성령을 상징합니다. 슥4:6절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교회가 ‘촛대’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제사장 사명(출19:6)을 반복하며(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는 이미지와 같습니다. 특히 교회가 ‘금 촛대’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아주 소중하며 거룩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요한은 ‘촛대들의 한가운데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인자 같은 이’(13)를 봅니다. 여기서 ‘발에 끌리는 옷과 가슴에 금띠를 띠고’는 대제사장(출28:8, 29:5)이나 왕의 의복(단10:5)을 의미합니다. ‘복장’은 입은 자의 역할을 의미하는데, 촛대들의 한가운데서, 즉 교회들을 주관하시는 ‘인자 같은 이’가 교회들을 위해서 대제사장(히6:20)의 역할을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교회(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언하십니다. 요일2:1절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처럼 교회들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인자 같은 이’는 단7:13-14절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나아가 ‘영원한 권세와 영광과 나라’(딘2:44)를 받으시는 ‘인자 같은 이’의 환상을 시사합니다. 단7:13-14절입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서에서 자기를 지칭하는 (80회 이상)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반복하시며(막8:31, 9:12, 10:33, 요3;14, 8:26), ‘인자’가 권능과 영광으로 올 것이라는 말씀(눅9:26, 21:27)과 일치합니다. 이처럼 성도 여러분, ‘인자와 같은 이’는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만유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17:14)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교회들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이시오, 만왕의 왕이신 ‘인자 같은 이’에 대하여 7개의 환상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14a)’는 대제사장으로서 인자의 흰 양털 같고 눈과 같은 순결한 성품을 나타냅니다(사1:18). 둘째, ‘그의 눈은 불꽃 같고(14b)’도 그의 전지성(단10:6)에 근거하여 불꽃과 같이 더러운 것을 태워서 순수한 것을 정결하게 하며, 모든 것이 더러운 것은 완전하게 태워버리는 그의 순결한 성품을 나타냅니다. 셋째,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15a), 즉 풀무불(그의 십자가)로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그의 발’은 모든 자를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는 권세(빌2:10)를 의미합니다. 엡1:22절입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넷째,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15b)’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있는 그의 음성과 같다는 의미입니다(겔43;2, 시29:3). 다섯째,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16a)’에서 ‘그의 오른손’은 권능으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사자를 통하여 일곱 교회를 위하여 말씀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섯째,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16b)’는 그를 끝까지 믿은 교회, 즉 이기는 자들을 구원하시며, 대적하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그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일곱째,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6c)’는 그 얼굴은 은혜와 평강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의미합니다. 신6:25-26절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성도 여러분, 이처럼 교회를 주관하시는 ‘인자 같은 이(주 예수)’에 대한 설명에서 처음과 마지막 환상은 교회에 대한 용서와 축복으로 장식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의 환상을 통하여 환란 가운데 있는 교회(우리)를 주관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살아 있는 주 예수의 영광과 권세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주로서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현재 영원히 산 자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권세와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계시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주 예수의 산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아무리 흔들려도 그는 우리에게 복음의 약속대로 하고 계시며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심지어 육체의 죽음에도 이기는 자가 되어 영광의 면류관(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우리와 함께하신 주(부활의 복음)를 항상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170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