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본질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관계' 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더 오래 같이 있고 싶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기도를 시작했을 때 그냥 교회에 앉아있기도 하고, 찬양을 듣거나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 아버시 집에 왔습니다" 라고 말하고 하나님 앞에 엎어시는 시간이 쌓이다보면 그분과 친밀해지고, 그분의 본심을 깨닫고, 실재를 경험하고. 궁극적으로 내 삶을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서 보여지고 만져지는 물리적 환경을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내 상황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높게 두고 배워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가 금제단에 드려진다는 것은 기도가 금처럼 소중하기 때문이다.기도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으로 사용할 때 기도는 즐겁지 않다.
구하면 주시지만 응납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기도의 본질이 아니다. 기도의 본질을 묵상할 때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예수님이 여러가지 기도로 기도시간을 확보했던 이유는 하나님아버지와의 관계를 분리된 채로 방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활성화되면 의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믿음이 견고해진다.
기도도 해본 사람이 더 오래 할 수 있다. 5분 짧게 기도하는 것만으로 깊은 교제가 이루어진다면
굳이 오래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려면 식사도 하고, 카페도 가고, 오래 대화를 나누어야 깊은 대화도 나누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원한다면 더 오래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 나 또한 오래기도하면 할수록 주님과의 교제가 더 깊어졌고
그 시간을 통해 평안함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다. 믿음의 선배도 우리와 같우 훈련의 과정을 거쳐왔다. 초대교회의 교부들도 루틴을 정하면서
규칙적으로 기도했다. 이유는 시간유 정해야 견고함이 생기고 영적으로 더 활성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