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39 부산딩기클럽의 모선의 요코하마에서 부산까지의 여정>
--마치호 윤태근
길고긴 망설임끝에 선택되어진 부산딩기클럽의 모선이 될 요트 J39를 타고 부산을 향하여 짧지않은 항해를 하여가야할 아침은 일찍 밝아왔다. 2005년5월20일 새벽4시경 벌써 훤해진 애노시마의 요트하버가 한눈에 들어왔다. 혼자서 즐길요트가 아닌 팀전원이 애용할 애마를 선택하는
일인지라 무던히도 힘이 들었는 모양이었다. 같이 갔던 클럽의 회장님인 김수곤씨와 부회장님인 황석주씨.. 배가 선택되어지자 그동안의 갈등과 고민이 말끔히 씻어지는양 편한밤을 보낼수 있었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한 밤도 길지는 않았다. 출발을 위한 설레임이 그들을 깨웠던것이다.
새벽5시가 갓넘은 시각 우리는 우리가 타고갈 요트로 가 어제께 사놓았던 식료품으로 아침식사를 해먹고는 출발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9시를 넘어설 무렵부터 이배의 전 맴버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 배의 특성과 세일세팅 그리고 여러가지 다음 사용자가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해주었고 급유며 그들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J39의 부품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12시쯤되었을때 그들의 맴버 전원과 우리 3사람 ..이 요트를 통하여 새롭게 인연이 된 열두명은 각자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부라보을 외쳤다. "잘탈께요 먼길가는데 이렇게 도와주어 고맙습니다"
이런 우리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14년간 정들었던 자식을 보내는 심정인것 같아보였다. 정확히 12시30분경 애노시마를 출발하여 부산을 향한 첫 바닷길을 나섰다. 뒤에는 아쉬운마음으로 손을 흔드는 그들이 보였다. 배가 하버를 빠져나가고 넓은 바다로 나서자 그들역시 배가보이는 쪽으로 달려와 또다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마 그들중 몇은 눈앞이 흐려져 이배를 보지못하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몇명은 목젖이 아파왔을 것이다. 만나는 반가움이 있는 반면 헤어지는 아픔은 있게 마련이다. 만약 그들이 부산을 오게 된다면 열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이 배를 보러 오게 되리라........!
애노시마 요트하바의 앞바다는 시합을 하는것같은 딩기요트와 크루져 요트로 분주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견시를 하며 그곳을 빠져나와 1시경 코스를 제대로 잡을 수가 있었다. 바람은 정면에 가까울정도지만 아주 조금 왼쪽편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메인세일을 올리고 엔진을
사용하여 신라천의 남쪽끝으로 항로를 잡고 항해하였다. 그곳까지는 53마일로 한밤중에 통과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지리를 모르는곳을 통과하여 먼바다쪽으로 나서는 중이었으므로 될수있으면 육지하고 떨어지되 너무멀리 돌아가지 않게 신경을 쓰며 북태평양인 일본동해로
나아갔다. 파도는 1.5-2미터로 그리 높지안았지만 바람이 정면쪽에서 불어오는 통에 날려온 파도로 배전은 언제나 바닷물로 질퍽했다. 내해로 들어가기전 남쪽으로 크게 나와있는 와카야마(화가산)까지 두밤을 보내고서야 도달할수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좋을때는 세일
만으로 항해를 하곤 했지만 벌써 준비했던 연료를 많이 소비해버렸다. 5월22일 오후 3시경 일본내해를 바로 앞에두고 낮선항에 들어가 연료를 구입했다. 그리고 다시 5시30분경 출발하여 세토나이까이(일본내해)로 들어서는 첫 협수로인 나루토가이교를 들어갔다. 조류표에는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9노트의 속도로 물이 흐르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속도가 6노트정도밖에 되지 않는 요트로서는 무시무시한 조류였다. 다행히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었지만 섬뜩한 조류의 회오리를 곧보게 될터이었다. 다리입구까지는 7-8노트로 속도에 별 변함이 없었으나 다리를 넘어서자
속도는 15노트를 넘어섰다. 물속의 지형의 영향으로 수면은 와류현상이 여기저기에서 심하게 휘몰아 쳤다. 앞서가던 대형선박이 지그재그로 항해하고 있어 왜저러나 했는데 막상 조류가 부딪히는 곳에 와보니 그 이유를 알수있었다. 물이 돌아가가 부딪히는 곳은 정말 배를 집어 삼킬듯이
들끓고 있었다. 약20분정도 그나마 조용한 곳을 찾아 앞선 배처럼 지그재그로 항해하여 내해로 접어 들었다. 어느듯 밤이 되어 깜깜했다. 무거운 구름들이 멀리 앞쪽에서 다가와 우리의 뒤편으로 지나갔다. 간격이 짧은 파도가 배전에 부딪히며 끝없이 스프레이처럼 날려 조타석에 있는 우리를 향해
뿌려대었다. 바람은 언제나 정면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만 보고 가면 우리가 가고자하는 곳으로 갈수있을것 같다고 얘기가 나올정도로 바람은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질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풍이 아니것에 감사하며 어두운 일본내해로 깊숙히 진행하여 들어갔다.
23일 새벽2시경 항로는 오사카쪽에서 나오는 수 많은 대형선박들과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배들로 빨간등 초록등 백색등 그리고 등대등 또 항로 표시등 마을의 불빛등으로 새까만 밤중에 불빛만에 움직이고 혹은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반대편 항로를 택해 조심스럽게
좁은 수로를 지나갔다. 그렇게 일본내해에서 하룻밤을 항해한뒤 같은날인 23일 오후2시경 새번째 협수로인 미도대교(쿠루시마 가이교)를 앞에두고 배를 천천히 진행시키며 조류가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미풍을 받으며 1-2노트의 속도로 가는 방향만을 유지한채 배놀이
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쯤 시야에 어로작업을 마치고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한척의 어선을 발견했다. 우리는 각자 신선한 횟감을 머리에 그리며 그 어선에 다가갔다. 그리고 거래를 시작했다. 일단은 우리의 입장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3일전 요코하마를 출발하였고 지금 한국 부산으로 가는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선한 고기를 좀 사고싶다. 이렇게 얘기를 꺼내자 일본어부는 바께스를 달라고 하더니 오륙키로는 충분히 될정도의 고기를 건내주었다.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약간은 떨리는 어조로 물었더니(이때 돈이 거의 바닥나 이삼천엔정도 밖에 없었다.) 돈은 안받겠다고 했다. 할수없이 우리는 갖고있던 담배몇갑으로 성의를 표하고 몇번이고 인사를 했다.고맙고도
미안했다. 2천엔정도는 지불할 능력이 되어 드릴려고 했지만 그냥 맛있게 먹고 안전하게 잘가기만 하라며 여태껏 작업해놓은 알 까지 한남비 더 주고는 하던일을 하러 횅하니 가버렸다. 마음씨좋은 일본어부 덕분에 횟를 떠서 먹고 알을 끓여 와사비장과 함께 맛있게 먹으며 한낮에
여유를 마음껏 누리며 조류가 바뀌길 기다렸다. 일석이조 금상첨화였다. 맛있는 횟거리를 즐기다보니 조류가 어느새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8노트의 속도로 크루시마 가이교를 빠져나와 다시 내해에서 하룻밤을 항해하여 마지막 협수로인 관문해협의 관문교를 앞에두고
5노트의 역조류를 만나 수심이 낮은 지역으로 벗어나 앵커를 내리고 배를 정비하며 조류가 바뀌길 기다렸다. 5월24일 아침7시 조류는 멈추었다. 앵커를 올리고 배를 몰아 관문해협으로 진입하였다. 이때쯤 조류는 우리의 진행방향으로 1노트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관문해협을 순항하여 고꾸라 항에 입항하였다. 이곳에서 다시금 대한해협을 건너기 위해 준비도 하며 부산에서 응원항해를 하기위해 아침일찍 건너온 2명의 부산요트클럽회원분들과 합류하여 저녁6시경에 대한해협으로 나아갔다.
파도도 적당하고 바람도 북동풍이어서 세일링만으로 거의7-8노트를 유지 하며 18시간30분만인 25일 12시30분경 부산요트경기장에 입항할수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J39 39피트 요트는 상당히 견고하고 속도도 있었으며 항해시 안정감이 느껴지는 든든한 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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