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
이청준의 중편소설 ‘이어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어도는 예로부터 제주도 사람들에게 복락과 구원의 이상향이었다. 뱃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들은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 이어도는 사시사철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때문에 뱃사람들은 위험스런 뱃길을 이어도로 위로받으며 두려움 없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또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자식을 기다리는 여인네들에게 이어도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이기도 했다. 즉, 이어도는 이승의 삶이 지겹도록 고달플 때 편히 쉴 수 있는 피안의 섬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서는 전설 속의 섬 이어도가 실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해군의 수색작전이 벌어지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역시 이어도는 가상의 섬이란 게 드러난다. 하지만 수색작전 취재차 동승했던 기자의 실종사고에 대한 의문을 풀어감으로써 이어도가 고된 삶을 살았던 제주도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과 안식이 되는 구원의 섬인가를 잘 보여주었다.
이어도의 실체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00년 6월 5일 21시 40분경이었다. 일본에서 중국 상하이로 향하던 6천톤급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암초에 부딪치는 접촉사고를 당한 것. 이때 소코트라호는 암초의 위치가 동경 125° 07″이라고 영국 해군성에 보고했다.
그 후 1910년 해군성의 지시에 따라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워치호가 이 암초의 위치와 수심을 확인했다. 그로 인해 암초는 처음 발견한 선박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는 명칭으로 세계 해도에 올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이어도의 실재론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51년이었다. 당시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섰으나, 높은 파도로 인해 바다 속의 검은 바위를 눈으로만 확인했을 뿐이다. 1973년에도 이어도 탐사가 시도되었으나 역시 실패했다.
그러다가 1984년 5월 제주대와 KBS가 소코트라 암초에 대한 공동탐사에 성공하면서 이를 파랑도(波浪島)라 불렀다. 주변 수역이 얕고 조류가 강해서 파도가 강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더불어 이 암초가 전설의 섬인 이어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제주 사람들은 모두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꿈꿔온 이어도가 어떻게 물속의 암초뿐일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1987년 제주지방해양수산청은 소크트라 암초에 이어도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 후 2001년에는 국립지리원이 중앙지명위원회를 개최하여 소코트라 암초의 명칭을 이어도로 변경하는 문제를 심의 확정함으로써 이어도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어도란 이름 자체에 이미 물속의 암초라는 명확한 의미가 숨어 있다. 이어도는 우리말인 ‘여섬’에서 비롯되었는데, ‘여’가 ‘이어’로 길게 발음되고 섬은 한자어 ‘도’로 바뀌면서 이어도가 된 것이다.
여섬의 ‘여’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물속에 숨어 있는 바위’를 일컫는다. 여에는 ‘속여’와 ‘잠길여’가 있는데, 속여란 썰물 때에도 드러나지 않는 여를 의미하고 잠길여란 썰물 때 드러나는 여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어도는 속여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찾아도 찾을 수 없고 찾아가면 돌아올 수 없었던 이어도가 물속의 암초였음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중국 국가해양국이 지난해 해양감시용 비행기를 동원해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에 대한 감시활동을 벌인 사실이 최근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중국이 무슨 의도로 그런 사실을 공개했는지 몰라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어도란 명칭 속에 오랜 옛날부터 거기를 드나들며 생활을 영위해온 우리 조상들의 체취와 삶과 한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성규 편집위원 yess01@hanmail.net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