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반야심경
글 /이원익
내가 불교의 경전을 문자 그대로 접해 본 것이 고등학생 때인데 반야심경을 처음 눈과 소리로만 겉핥기로 읽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길지 않은 한문 문장들에 웬 ‘없을 무’자가 그리 많은지, 뭐도 없고 뭐도 없고 뭐도 그런 것 없고….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 좀 제대로 된 해석을 읽어 보니 이건 그 때까지 내가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던 불교의 교리를 온통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여러 군데 ‘무’자가 나오지만 예를 들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거룩한 네 가지 진리라는 것도 부정한다. 우리 삶의 본바탕이 괴로움이라는 것, 그 괴로움의 뿌리가 무엇이냐는 것, 그리고 그 괴로움은 없앨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 괴로움을 없애는 여덟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이것들도 죄다 무, 미안하지만 그런 건 없다는 말씀이다. 아무튼 그 때 나는 일단 그렇게 알아들었었다.
이게 뭐야? 부처님께서는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셨나? 상당히 황당하기도 했었지만 내 얕은 지식과 경륜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아무튼 대단한 진리를 품고 있는 경전이라니 그러려니 했었다. 내가 아직 공부가 덜 되었는지 사실 이 나이가 되도록 아주 뚜렷하게 이러한 말씀의 본뜻이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없다’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의 테두리가 드러나 보인다. 내가 잘못 이해하여 내 머리속에서 그 ‘없다’들을 엉뚱한 ‘있다’들로 내 멋대로 둔갑시킬 위험이 없지는 않겠으나 그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결론은 미뤄 두더라도 어쨌거나 나는 경전의 이러한 말씀들에 세속적이며 인간적으로도 상당히 고마워한다. 문화현상의 하나로서의 불교는 현실에 있어서 개선 돼야 할 문제도 많고 마음에 덜 차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이런 경전 하나 있는 덕분에 적어도 사람을 사람답게는 남겨 두는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에서다. 다시 말하면 불교도는 적어도 극단적인 근본주의, 교조주의에 빠져서 중세의 십자군이나 요즘 IS인지 이슬람 국가인지 뭔지 하는 치들이 벌이는 미친 짐승이나 흡혈귀 같은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는 하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인류 역사상 종교가 사람들에게 끼친 공덕이 클까, 폐해가 클까? 우리가 부처님께서 주신 오계 가운데 하나를 지켜 곧이곧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인류에게 그 공덕의 몇 배나 되는 해를 끼쳤다고 대답해야 한다. 종교 때문에 살아난 사람, 종교가 살린 사람이 많은가 아니면 종교 때문에 죽이거나 죽은 사람이 많은가? 특히 저 사막에서 생겨나 퍼진 종교들의 광신도들 때문에 말이다. 만약 종교라는 것이 사람이 잘 살아 보려고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통틀어 종교를 결산해 보면 이건 완전히 밑진 장사다. 너무 많이 죽었다. 그저 남은 건 기울어져 가는 거대한 돌기둥이나 축대, 돌무더기나 주춧돌, 무덤들뿐이라고 하면, 그래서 불쌍한 후손들이 관광객 받아서 생활에 그나마 보탬은 된다고 하면 너무 심한 이야기인가?
지금도 저 중동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난전을 벌이고 서로 소리쳐 호객하는 한 편에선 조폭들 니와바리 다툼하듯 칼부림하며 하고 한날 눈을 부라리고들 있는 패들이 모두 종교 때문이거나 아니면 종교를 핑계 삼고 있는 무리들이다. 그런데 난처하게도 언제부턴가는 우리 동포들이 앞장서서 이런 아슬아슬한 아귀다툼의 언저리에 끼어들곤 한다. 그것도 세계 방방곡곡, 꼭 말썽 날 만한 동네 골목만 주로 찾아다니며 일종의 떴다방을 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말 그대로 종교적인 사명감에서 그러고들 있다는 것이다. 정말 떴다방처럼 돈이나 기회만 챙기려는 속물들이라면 차라리 심각함이 덜할 지도 모른다.
남들이 몸 바쳐 지극정성으로 하는 일을 이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느냐고 나무랄 수는 있겠지만 이건 정말 우리 모두의 장래와 평화를 위한 나의 지극정성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불자들이 지금 이웃 걱정해 줄 형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기도 해서 생각을 해 본다. 내 한 평생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놓고 설득과 강요를 받아왔다. 교회 나오라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라고. 내 대답은 거의 늘 같았다. 가고 싶을 때 가겠다고, 받아들여질 때 받아들이겠다고. 이렇듯 내 사랑하는 피붙이요 벗들이 저리도 한 평생 집요하게 나를 못 데려가 애고 답답해하는 지극정성에 좋다 싫다 대꾸도 없이 너무 무반응이라면 그건 맞대놓고 욕설을 마구 퍼붓는 이상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내가 너무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여 이런 글 한 편을 도로 접는다면 그건 너무 소심한 것일 게다.
언젠가 말귀를 조금 알아들을 귀를 갖춘 친한 벗이 평소와는 달리 자기 교회와 종교의 요즘 와서 갑자기 주춤해진 기세에 대해 상당히 충격을 받아 의아해 하며 근본적인 염려를 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넌지시 해 준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천기누설을 하나 하지. 뭐든지 그걸 목덜미에 서늘하게 느끼게 될 때는 이미 근본 원인은 한참 전에 무르익어 있어서 실은 꺼져가는 부동산 붐처럼 내가 지금 거의 막차를 타고 있을 때지. 자네 교회와 믿음이 그 동안 세상의 추세를 무시하고 거기에 발맞추지 못해 그 불같은 신앙이나 새벽기도의 지극정성으로도 효험이 없고 수습이 잘 안 되어 미래가 염려 된다면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길은 오직 하나 있다네. 작은 수레가 아닌 큰 수레 기독교, 대승기독교의 반야심경이 나오면 된다네. 불교에서는 이미 이천년 전에 나왔다네. 교조의 말씀에 곧이곧대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며 절대시하여 착 달라붙는 얽매임, 끄달림을 부정한 거지. 그러다 극동의 선불교에 와서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 책 덮으라, 그리고 심지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라는 데까지 매섭게 나아가기도 했지. 아무튼 이렇게 근본주의, 교조주의를 접는 바람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폭풍이 아니라 부는 듯 아니 부는 듯 봄바람처럼 아지랑이처럼 사방으로 더 널리 퍼져나가 꽃피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 불교는 대체로 육식동물이 아니라 순한 초식동물이 되었다네. 포식자를 저만치 적당히 끼고 살며 이럭저럭 최소한의 방어만 하는 초원의 들소 떼처럼 말이야.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자네가 정말 보살 예수처럼 마음이 열려 나에게 기독교의 반야심경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묻는다면 그 옛날의 용수보살이나 무착, 세친처럼 내가 능력이 출중하고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저 상식선에서 평심으로 말해 줄 수 있는 거라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 근본 교리 구절에, 그 말씀에 문자 그대로는 너무 얽매이지 말아 보라고, 일단 부정 한 번 해 보라고, 부정이 결국은 긍정이라고(이런 논법을 알아나 들을랑가). 죽이는 길이 살리는 길이라고. 요즘 세상에 이런 불경스런 말 했다고 장작더미에 나를 올려놓을 일은 없을 테니 감히 조언하건대, 그 쪽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그걸 일단 십자가 앞에서 한 번 아니라고 해 보라는 것, 돌려서 말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내 말이 사탄이나 마귀의 속삭임은 아니야. 그 따위 최면 풀어 버리고 염려 좀 붙들어 매고 일단 하느님, 그런 것 없다, 동정녀 탄생, 그런 것 없다, 기적, 그런 것 무, 종말, 부활, 심판 그런 것 무, 그런 것 다 진리를 전하기 위한 방편이다, 말일 뿐이다 생각하고 한 번 그리 해 보라는 것이다. 강요는 아냐. 나처럼, 하게 될 때, 그리 되어질 때 해 보라는 것이지 싫으면 없던 일로 하고 잊어버리라고. 난 암시랑토 않아.
이 봐, 우린 다 해 보고도 멀쩡한데 자네라고 왜 못하겠나? 지금도 우리 불자들은 눈앞에 멀쩡히 부처님 모셔 놓고 향 피워 놓고 촛불 켜 놓고 나이 든 보살이든 젊은 거사든 모여 앉았다면 줄지어 일제히 고개 숙이며 목탁 소리에 맞춰 읊조린다네. 당신이 말씀하신 사성제, 그런 것 없나이다, 팔정도, 그런 것 없나이다…, 무, 무, 무…. 그러면서 그 분이 하신 본래 말씀은 다 알아듣든가 듣는 척을 하는 거지. 반야심경은 무슨 법회나 의식에나 다 쓰는 약방의 감초 같은 경전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불교가 기적처럼 금방 부흥은 잘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웃 종교들이나 종파들하고 교리나 하느님을 앞세워 꼴사나운 쌈박질은 하지 않는다네. 종교를 하면서도 인류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지. 역설 같은가? 절대적인 진리라는 그 종교라는 것을 하면서도 말이다. 만약 자네가 정말 자네 쪽의 반야심경을 읊는 날이면, 내 확신하건대 인류평화가 머잖아 문 앞에 다다랐다고 환호하며 함께 축복의 샴페인을 펑, 터뜨려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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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원익 법사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정말 공감 만점입니다. 글 곳곳의 번득이는 생각들이 시원하고 신선하네요. 유일신교는 자기 부정을 할 수 없는 구조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타인을 바꾸려고 하는 동기는 다름아니라 자기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잘 사는 것을 보면 스스로의 종교가 혹시 틀린 건 아닌지 불안해서, 그 불안을 없애려고 공격전도에 나선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뭏든 반야심경 이야기는 공감 만점이고, 저는 그래도 전체적으로 4대 종교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 도움 받아 온,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약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