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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이익과 효율, 국가 단위의 이기주의는 더 이상 인류가 환경에 긍정적 전망을 가지기보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그저 반드시 찾아올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날이 내가 사는 시간 동안 오지 않으리라 믿으며 천천히 더 나빠지는 것을 지켜만 보게 되었다.
그렇게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란 아는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들조차 그저 들어만 본, 그러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부질 없는 상상 속 이야기가 되어 그리워 하면서도 아쉬워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어째서 우리의 선조들은 그리도 현명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그토록 무지하고 무책임 했는지 성토할 수도 있건만, 이제는 머리에 쓰는 헬멧과 몇 시간 분량의 공기통이 없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행성에서 그런 감상에 빠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한번쯤 이러한 지구를 물려준 선조들을 비난해봤겠지만 그런 것이 이제와 무엇이 중요할까. 당장의 내 생존이 중요한 세상 속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산소를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을까, 숨막혀 죽을 상황에서 어떻게 자살하는 것이 가장 덜 고통스러울까를 고민할 뿐이었다.
흑갈색 먼지가 질소와 이산화탄소, 1%도 되지 않을 산소와 함께 행인들을 열심히 밀어대고 있었다. 마치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벌 받으러 가버리라는 듯이.
창창창.
…
창창창.
….
창창창창..
-아 시발 이 시간대에 어떤 새끼가 문을 두들겨!
매일 닦아내는 의미가 없어져 이제는 지층을 이룰 법한 먼지로 코팅된 철제 셔터 뒷편에서 어떤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강화 플라스틱 헬멧을 거쳐 들려왔다.
-미안합니다, 그로벨 영감님. 급하게 산소 60L가 필요합니다. 웃돈이라도 얹어드릴테니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셔터가 올라갔고, 아는 얼굴. 정확히는 아는 차림새라는 걸 알고 짜증을 냈지만 나름 찾아보기 드문 예의 바른 청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웃돈을 생각보다 더 많이 받아야겠다는 심술 아닌 심술만 부리기로 했다.
-에이 씨, 쯧. 들어와.
먼지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모든 입구에는 짧거나 긴 통로가 있고 양쪽 문을 닫은 뒤 대체로 펌프로 작동되는, 내부 공기를 밖으로 내버리고 내부에 있는 공기로 교체하는 장비가 있곤 하다. 공기를 교체하기보단 먼지를 최대한 빼내기 위한 작업이다.
삐, 꺽. 삐, 꺽. 삐, 꺽. 삐, 꺽.
20대 초중반 쯤으로 보일 법한, 한스라는 이름의 청년은 주인장 대신 수십 차례 펌프를 눌러 댔다. 그로벨이라는 주인이 됐다는 말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됐어.
그로벨은 닫힌 문을 열고 한스를 들여줬다. 장사하는 공간은 당연히 산소가 부족한 환경이다. 질소와 이산화탄소로만 꽉 차있는 가게는 그럭저럭 먼지가 앉아 있지만 들이 마실 것도 아님에도 이 정도 두께라면 꽤 청결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60L라고 했지? 한 10시간 분량인가? 무슨 일 있나보지?
-산소통 하나에 구멍이 뚫렸어요. 녹슨 부분이 기어코 상한 거죠.
쯧쯧.. 하는 혀 차는 소리와 함께 그로벨은 무거운 스테인리스제 산소통을 익숙하게 기울여 굴리며 장치 위에 올렸다. 그리고 고무로 된 관을 입구에 꽂은 뒤 탱크에 저장된 공기를 필요한 양만큼 다른 탱크로 옮겼다. 계기판으로 확인한 그로벨은 신속히 벨브를 잠그고 옮겨진 탱크를 냉각시켰다. 대체로 누군가 어디선가 구해온 리튬 냉매나 냉장고 등에서 뜯어온 냉매들이 소모된다. 그마저도 쉽게 구하거나 양이 많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곤 2층으로 올라가 바벨 플레이트들을 금속 사슬로 단단히 묶은 뒤 밀어서 내려뜨렸다. 사슬이 잡아 당겨지며 쾅! 소리를 냈지만 끊어지진 않았고 냉각 중인 탱크 내부에서 위아래로 분리된 탱크의 아래쪽이 금속 줄로 끌어당겨지며 올라갔다.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계기판의 압력이 크게 상승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로벨은 탱크의 다른 벨브를 힘겹게 돌리며 압축냉각된 산소를 산소통에 옮겼다.
-됐다. 꺼내봐라.
한스는 가방을 열고 그 안에 담긴 정수된 1.5L 물 세 병과 100g이나 될까 싶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한 덩이를 꺼냈다. 고작 그 정도냐는 듯이 그로벨이 쳐다봤지만 가장 아래쪽에 보관된 나무 상자를 꺼내자 눈을 빛냈다.
헬멧 너머로 그로벨의 표정을 보고 상자를 마저 열었다.
-으흠!
유리병에 담긴 신선한 방울토마토 화분이 열매 몇 알과 함께 푸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로벨 영감은 품에서 손전등을 뒤적이다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가게에 있는 휴대용 전등을 꺼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것이었고 레버를 살짝 돌리자 적당한 광량으로 방울 토마토 화분을 비췄다.
-이 정도면 웃돈으로는 충분하겠죠?
-흐음.. 나무 크기도 작고 열매 양도 몇개 없구만. 키워서 먹으려면 꽤 걸리겠어. 게다가 키우는 데 들어가는 물과 전기도 그렇고.
한스는 그로벨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적당히 받아줄 뿐이었다.
-그걸로 봐주세요, 영감님. 늦은 시간이 죄송했습니다.
얼른 대화를 중단하고 돌아가려던 한스는 영감이 괜히 입맛을 다시며 늦은 밤이라 웃돈에 통로 청소까지 해야 맞다고 했지만 선심쓰듯 귀찮으니 그냥 가보라고만 했다. 손으론 아닌 척 물병부터 집고 있었지만 눈길이나 몸짓은 화분에 온 신경이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한스는 약 1.5m쯤 되는 무거운 산소통을 어떻게든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로벨 영감은 괜히 떨어뜨리거나 해서 터뜨리지나 말라며 핀잔을 주며 나갈 때까지 지켜봤고 그가 밖으로 나가고 철제 셔터를 다시 내려준 이후에나 작게 그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메고 있는 공기통의 잔량을 보니 약 17분 정도의 분량이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괜히 산소를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니 조금 호흡이 거칠어 지더라도 빠르게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는 어깨와 허리가 금방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바쁜 걸음으로 먼지폭풍이라 불러도 될 바람 속을 헤쳐나갔다. 더러운 먼지가 조상의 죄를 그에게 책임지라는 듯 들러붙었다. 헬멧 바이저를 수 차례 닦으며 돌아온 집에서 그를 반겨준 것은 그의 여동생이었다.
-돌아왔어? 이상은 없고?
-그래. 읏차..
여동생은 그가 짊어진 무거운 산소통을 같이 내려줬고, 한스는 무거운 거라며 조심하라고 상투적으로 일렀다. 그리고 그것을 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입구-통로-입구-무산소 작은 거실-입구-통로-호흡 가능한 실내로 이어지는 번거로운 실내 구조는 더 이상 호흡할 수 없는 대기 상태를 가진 지구에서 가장 보편적인 거주 형태이다. 밖으로 나갈 때 밖의 먼지가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통로와 산소가 없는, 거의 마당이나 다름 없이 사용되는 거실과 그 거실에서 한번 더 밀폐된 통로로 이루어진 통로를 거쳐 약 20%의 산소가 포함된 공기로 차있는 생활 공간이 나온다. 거실과 생활 공간 사이의 통로는 생활 공간의 공기가 밖으로 유출되기를 막기 위한 곳이다.
생활 공간과 이어진 통로는 실내 공간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슈트를 입고 보관하기도 하고 그것을 다 입은 뒤엔 펌프질로 산소가 포함된 공기를 다시금 실내 공간으로 돌려 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와중에 먼지를 제대로 막지 못한다면 실내 공간으로 들어오지만 웬만큼 잘 만들어진 곳이나 그럴만한 장비가 있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으며,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산소통을 조심히 들여보낸 한스와 에반젤린 남매는 이미 잔량이 간당간당한 산소통을 잠그고 새로 가져온 산소통을 연결했다. 약 1/3을 기존 산소통에 넣어주어야 압력을 덜 받고 폭발 위험도 적어진다.
“이번 산소통은 튼튼한 걸로 가져왔네. 저번 건 너무 낡았어.”
에반젤린의 눈에 들어온 산소통은 외피에 녹이 슬어 있는 것이었고 방안 한 구석에 눕혀져 있었다.
“어쩔 수 없었지. 그때 구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으니까. 더 일찍 바꿨어야 했는데..”
한스는 저 개같은 물건 때문에 괜히 손해만 봤다면서 짜증나려는 머리를 꾹꾹 눌러댔다. 아주 작은 틈이었지만 고압으로 보관된 것은 아니었던 지라 새어나오는 소리가 너무 작았다. 게다가 거실 겸 작업실에서 사용하던 것이기 때문에 산소의 유출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다시 포집할 방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알아차린 때엔 이미 다 사라져버렸을 참이었으니까.
“됐어. 늦었다. 잠이나 자자.”
“그래.”
에반젤린은 마지막으로 썩 넓은 방 중앙에서 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닐 하우스를 덮는 천을 슬쩍 열어젖히고 안을 보았다. 안에는 그럭저럭 깨끗하다 할만한 흙과 몇가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에반젤린은 이 일대에서 유명한 농부였다. 말이 농부지 실제로는 작은 방울토마토나 산소를 많이 만들어준다는 스킨답서스와 스파티필룸 같은 관엽식물을 키우고 있다. 그녀의 취향이지만 경제성은 별로 없는 철쭉, 그나마 먹을 수도 있는 민들레 같은 꽃을 키우기도 하고 클로버 같은 식물을 키우기도 한다. 물론 그걸 위해 비닐하우스의 일부 구획을 나누어 조금씩 다른 환경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대체로 스킨답서스의 경우만 다소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스파티필룸은 조금 습한 환경으로 구분해준다.
그녀는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을 보며 LED 전등을 껐다. 일반적인 백색 LED와 그보다 작고 광량 역시 부족한 붉은색 LED를 사용한다. 백열전구와 형관등 역시 있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는다면 사용하지 않는 스페어이다.
전기를 구하거나 생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에 그들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기댈 구석이라곤 둘 밖에 없는 식구지만 그럼에도 말 없이 자라는 식물에게 위안과 유대감을 느끼고 있다. 동물도, 사람도 아닌 것이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그들의 마음 속 한 켠에 자리잡아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 캐내고 빻고 달여 마시기도 하지만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되는 푸르른 친구들. 그저 작았던 씨앗이 사랑스러운 연두빛 새싹을 틔우고 그것이 하루하루 자라나는 것을 보면 이 어둡고 캄캄한 세상 속에 아직 순수한 무언가가 남아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에반젤린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한스 역시 그녀의 성과를 사랑한다. 사람이 없으면 태어날 수도, 자랄 수도 없는 것이, 너무 무력하면서도 그런 것 따위 모른다는듯 정직하게 자라나는 것이,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고 암울한 미래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듯 했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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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끝날 수도, 연재..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만약 한다면 각 화의 텀은 꽤 길어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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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식물 테라피는 좋지요. 그런데 식물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사이즈여야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직간접경험) 이제 통제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게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