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안동 왕모산(648m)
전설이 풀풀 날리는 신비로운 낙동강변의 산
왕모산은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 경계에 자리하는 유서깊은 산이다. 들머리인 동시에 날머리가 되는 도산면 원천리에는 퇴계 선생의 무덤이 자리하는 하계 마을과, 이육사 선생의 출생지이며 이육사문학관이 자리하는 원촌 마을, 선생이 그 유명한 시 '광야'의 시상을 다듬었다는 윷판대(일명 쌍봉) 등이 자리하여 짧은 겨울 해가 원망스러운 볼거리가 그득한 산이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들머리 내살미 주차장에 등산안내도가 자리한다. 안내도 한 켠에 적힌 왕모산의 유래를 읽어보자.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으로 왔을 때 왕의 어머니가 이곳에 피난하였다고 하여 왕모산이라 한다. 전설에 의하면 홍건적이 이곳까지 진격하여 공민왕이 위태롭게 되자 백마를 탄 노장수가 왕을 구하고 지렁이로 변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왕모산은 갈선대라는 바위가 유명하며, 12개의 산봉을 거쳐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정상에서 낙동강의 자연경관은 볼만하다. 특히 왕모산에는 공민왕이 피난하였을 시 주민들이 쌓았다는 왕모산성이 있는데, 전체 길이는 360m가 넘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50m 정도가 남아 있다. 성의 안에는 왕모당이라는 성황당이 있으며, 당내에는 남신상과 여신상 각 1구가 있어 동민들이 매년 정월보름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동쪽으로 느긋한 산길이 이어진다. 잎이 큰떡갈나무와 신갈나무, 잎이 좁은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낙엽이 쌍곡선의 묘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산길은 신비롭다. 오늘 산행에는 정종원 기자와 '일본 100명산'을 연재하는 우제붕씨, 안동에서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 '고타야'를 운영하는 이희오씨가 함께 하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담을 나누며 산길을 이어가면 용애봉으로 불리는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지나온 원천교가 한눈에 다가오고, 굽이도는 낙동강변에 자리한 이육사문학관이 또렷이 조망된다. 다시 산길을 이어 왕모당에 이른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수호신인양 버티고 선 당집 안에는 특이하게도 남녀 한 쌍의 목신상이 자리한다. 다시 동쪽으로 능선길을 이어간다. 뚜렷이 정비된 산길에는 길목길목 이정표가 자리하고, 급경사에는 계단이 준비되어 나도 몰래 휘파람을 불고 가는 멋진 산길이다.
뒤이어 하산지점 이정표 삼거리를 지나 절경으로 유명한 길선대에 올라선다. 명불허전이라! 소문대로 갈선대의 조망은 탁 하고 무릎을 치는 절경이었다. 300도 원을 그리며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이며, 북녘의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은 어쩌면 한 폭의 그림이었으니. 시정화의라! 시인이 오른다면 명시를 읊을 것이요, 화백이 오른다면 천하의 명화를 그릴 이곳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산정무한의 경지에 빠져든다.
다시 산길을 이어가면 바위지대에 이른다. 어찌보면 자연의 성벽같은 화강암 바위지대는 쉬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서너 번의 전망대를 지나 정수리에 올라선다. 제법 너른 헬기장의 정수리는 어느덧 어깨 높이로 웃자란 풀밭으로 변했고, 입구에 자리한 삼각점(1978년 재설)은 풀속에 숨어 있었다. 헬기장 왼쪽 구석에 안동 산맥산악회에서 마련한 '왕모산 648m'로 표시된 알루미늄 정상팻말과 안동시에서 세운 등산안내도가 자리한다.
점입가경이라! 안내도가 자리한 왼쪽으로 두 아름과 아름 반의 두 그루 노송이 신선 선녀인 듯 빼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부드러운 필기체의 W자를 그리며 흘러가는 낙동강을 지그시 굽어보는 저 소나무,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듯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은 저 소나무, 어찌보면 왕모산의 수호신이요, 달리보면 공민왕과 모후가 연상되는 저 소나무야말로 오늘 산행의 백미가 아니겠는가. 더더욱 소나무 아래에 산꾼들을 위한 평상이 마련되었으니! 평상에 둘러앉아 간식을 나누며 굽어보는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은 잊을 수 없는 가경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리니.
아쉬움을 달래며 하산길에 접어든다. 북북서로 내려가는 능선길도 아름드리 노송과 참나무가 빼곡히 숲을 이룬 향기로운 낙엽길이다. 이윽고 이정표 삼거리에 이른다. 12년 전 필자가 왕모산을 처음 올랐을 때는 왼쪽으로 왕모당을 거쳐 원점회귀로 산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산행에는 이희오씨의 안내로 오른쪽 단천교, 한골 입구 방향으로 내렸다. 산중의 외딴 농가를 지나 허리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한골 입구와 목심 마을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가는 단천교에 이른다.
태백의 매봉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안동-구미-대구를 지나 부산의 몰운대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장장 510km의 저 낙동강. 가을볕에 물비늘이 반짝이는 강물 너머로 오늘 오르고 내린 왕모산이 손을 흔들고 있었으니.
안내를 맡은 이희오씨의 도움으로 돌아오는 길에 윷판대를 찾았다. 이육사문학관에서 퇴계 무덤을 향한 왼쪽 길가에 '윷판대길'이란 팻말이 있다. 이곳에서 10분이면 까마득 벼랑을 이룬 해발 130m의 쌍봉(일명 윷판대)에 올라선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육사의 명시 '광야'가 탄생한 곳이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낭낭한 목소리로 광야를 읊조리고, 반대편으로 숲길을 내려가면 퇴계 무덤이 자리한 하계 마을은 지척지간이다.
*산행길잡이
내살미주차장-(40분)-갈선대 삼거리-(1시간20분)-왕모산 정수리-(40분)-한골 입구 삼거리-(30분)-갈선대-(30분)-내살미주차장 또는 한골 입구 삼거리-(50분)-단천교
왕모산 원점회귀산행의 들머리는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에 위치한 주차장이다. 왕모산 등산안내도와 쉼터정자가 자리한 이곳에는 수도가 있어 수통에 물을 채울 수 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산길을 이어가면 주차장에서 570m 거리에 위치한 왕모당에 이른다. 다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르면 이정표가 자리한 천곡지 삼거리에 이르고, 이어 가파른 계)단길을 거쳐 절경의 조망을 자랑하는 갈선대에 올라선다.
갈선대를 내려오면 한골로 이어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이 하산로와도 이어지는 곳이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길게 따르면 솔숲과 바위가 어우러진 성터를 지나 왕모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정수리 입구 오른쪽 풀밭 속에 1978년에 세운 삼각점이 자리하고, 안동 산맥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지기와 등산안내도가 자리한다. 특이한 것은 정상표지기의 왼편으로 조금 내려가면 두 아름 노송 밑에 평상이 있고, 이곳에서 굽어보는 전망이 뛰어나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산길은 정상표지기 옆의 북쪽으로 내려간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더러 만나는 제법 미끄러운 낙엽 능선을 이어가면 목실 삼거리를 지나 내살미, 왕모당, 왕모산주차장, 단천교, 한골입구, 목실입구를 알리는 이정표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내살미, 왕모당 방향은 원점회귀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취재진은 단천교, 한곡 입구 방향을 선택하여 목실을 지나 단천교에 내렸지만 안내자가 없을 경우 등산로 이탈과 교통의 접근이 어려워 원점회귀산행이 바람직하다.
*교통
기차 또는 시외버스로 안동에 가서 안동역 앞 교보생명에서 1일 3회(06:00. 12:40, 17:20) 운행하는 시내버스로 출발하는 시내버스로 내살미(왕모산 입구)에서 하차(도착은 07:00, 13:30, 18:15).
내살미에서 나가는 버스편은 07:15, 14:00, 18:40, 교보생명 도착 08:10, 14:00, 19:40.
안동역 앞 교보생명에서 출발하는 67번 버스는 내살미, 청량산, 도산서우언 등 여러 노선이 같은 번호를 쓰니 주의를 요함.
*숙소 & 맛집
들머리인 원천리에 숙박시설이 전혀 없으니 안동시내의 시설을 이용한다. 취재산행을 안내한 이희오씨가 운영하는 숙박시설 '게스트하우스 고타야'(안동역에서 도보 5분 거리, 070-7325-0224, 011-301-0225)를 이용하면 산행과 안동지역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글쓴이:김은남 시인
참조:왕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