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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 신부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로마 14,7-12
루카 15,1-10
행동의 변화
아이들과 함께 살다 보면 생활이나 어떤 순간의 분위기가
이것이 아니다 싶 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까 고민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떤 때는 살짝 말을 흘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내일 아침에는 담당 구역 청소를 특별히 점검해서 잘한 사람은 상을 주고
못한 사람은 벌점을 줘야겠다고 비공식적으로 살짝 흘립니다.
그러면 나태하고 안이한 아이들의 생활 태도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청소를 안 하던 아이들이 보란 듯이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제가 지나갈 때마다 청소를 하고 있으니 잘 봐 달라고 밉지 않은 표정들을 합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잘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벌점을 받지 않기 위해서
태도를 바꾼 아이들이 밉다기보다는 오히려 순수하고 착해 보여서
더욱 더 사랑하게 됩니다.
쉽게 자신의 태도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 아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우리가 칭찬을 받을 차례입니다.
살레시오회 백광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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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신부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로마 14,7-12
루카 15,1-10
손과 발은 어떤 일에 많이 씁니까?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고 싶다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올바르게 살고 싶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려운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어렵고 소외된 이를 돌보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고, 아예 어려운 처지를 모른 척 피할 수도 있고,
어떤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선의의 마음을 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예전에 시장에서 참 황당한 일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건들거리며 지나는 사람마다 어깨를 툭툭 치며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서 부딪친 사람을 보고는 씩 웃는 것이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노숙자였습니다.
‘저러니까 사람들에게 괄시받고 길거리잠이나 자는 거지’ 하는 생각이 금세 들더군요.
그런데 많은 노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 않았던 분들이 없고,
처음부터 길거리잠을 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만그만한 사연이 있고 삶에 굴곡이 있었던 거지요.
그러고 나니 그때 그 노숙자의 행위도 ‘나 아직 여기 살아 있어’
라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사람이란 더 깊게 보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이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처럼
나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고 싶다면 이 역시 저절로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갈등이 많지만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서울대교구 이성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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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운 수녀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로마 14,7-12
루카 15,1-10
약은 청지기
오늘 복음의 약은 청지기 비유 이야기는 다소 알아듣기 힘듭니다.
마치 협잡꾼을 본보기로 내세우는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임승필 신부님의 새 번역 성서의 주해를 보니
예수께서는 다른 비유에서도
서슴없이 하느님을 의롭지 못한 판관에 비기기도 하시고(루카 18,1-8),
제자들에게 뱀처럼 슬기로우라고 권면하기도 하신다(마태10,16)며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불의하거나 사악해지라고 권유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은
명백하며, 그 청지기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이 청지기처럼 자기들의 부정한 사업을 능란하게 이끌어 가듯
제자들도 하느님의 나라를 섬기는 데 능숙해지라고 권고하시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마르 12,30)는 첫째 계명을 실천한다 함은
각자가 받은 모든 은사와 경험과 지혜를 총동원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기업들이 제품을 팔기 위해 내놓는 신제품에 대한 광고를 보고
구매 욕구를 높이기 위해 온갖 참신한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막대한 돈과 시간과 공간적 투자를 하는 것을 보며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저와 우리의 복음을 전하는 열정은
참으로 구태의연하고 소극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주님, 저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열정과 지혜를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착한목자수녀회 변수운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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