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티베트로 불리는 라다크(Ladakh)의 주도 레(Leh)는 히말라야산맥 서편에 깊숙이 자리 잡은 도시다. 행정적으로는 인도에 속하지만 지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티베트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지역인 만큼 찾아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다. 분쟁지역인 까닭에 국제선보다 훨씬 까다로운 국내선 수속절차를 밟고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레 지역의 예기치 않은 홍수로 인해 좀처럼 비행기는 뜰 줄을 몰랐다. 비행기 안에서 답답한 3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비행기가 이륙했고 얼마 후 3,500m의 고도(古都) 레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조금은 피곤하고 짜증나는 통관절차를 밟고 난 후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갑작스런 고도변화 때문인지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눈앞에는 마치 달 표면을 연상케 하는 황량하고 척박한 태초 대자연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사막고원과 그곳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하얀 설산 스톡캉그리(Stock Kangri·6,153m)가 신비롭게 다가왔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고소적응 훈련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레에서의 고소적응은 곰파(라마교 사원)를 찾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곰파는 항상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맨 먼저 찾은 곰파는 레에서 약 45km 떨어진 헤미스(Hemis) 곰파였다.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예수가 부활해 잠시 머물렀다고 전하는 유명한 곳이다.
모두 들뜬 마음으로 이동하는데 곳곳에서 홍수 피해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흙더미에 마을이 통째로 묻히고 지붕만 드러난 집에서 하염없이 삽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팔자 좋게 산에 간다는 것이 왠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모두 휴식을 하고 있는데 서기석 대표가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한다. 내일은 산행기점인 진천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후 가볍게 산행할 예정이었는데 홍수로 인해 도로와 다리가 유실되어 부득이 차로 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고개인 카르둥라(Khardung La·5,606m)를 올라 고소적응을 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 카르둥라에서 고소적응
다음날 아침 모두 느긋한 마음으로 차를 탔다. 시내를 빠져나가 카르둥라 고갯길에 접어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깎아지른 천길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고갯길은 바라만 봐도 침이 마르면서 숨이 멎었다. 이런 우리와는 달리 마음씨 좋게 생긴 기사 아저씨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사정없이 내달린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데 여기까지 와서 산행도 못 해 보고 영원히 가는 것이 아닐까?
오전 10시, 드디어 산행기점 스톡빌리지(3,480m)에 도착했다. 카고백 등 큰 짐들은 말에 싣고 첫 번째 야영지 만카르모(4,200m)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높은 고도에서 움직이는 상향 캐러밴이기에 처음엔 힘이 들었지만 5시간 정도의 산행이므로 그래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야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바로 텐트를 치고 내일 산행준비를 마치자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김치와 깍두기 등 모처럼 우리 음식으로 푸짐하게 준비한 저녁식사를 마치자 날이 어두워지면서 하늘에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별빛 아래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잠자리에 들었다.
간밤에 비좁고 불편한 텐트, 지끈거리는 두통에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잠을 잘 자 두통이 사라졌다. 개운한 기분으로 서대표가 진두지휘해 쿡들이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베이스캠프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해발 5,200m의 하이 캠프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인도산악연맹(IMF)에서 환경오염을 우려해 하이 캠프를 폐쇄하는 바람에 베이스캠프가 5,050m로 내려앉았다. 덕분에 오늘 일정에는 여유가 생겨 좋았지만 정상을 갈 때는 그만큼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걸 생각하니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를 향하는데 가파른 언덕길이 많아 자연히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교적 짧은 거리여서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입성할 수 있었다. 베이스캠프에는 이미 다른 원정대들의 텐트가 많았다. 우리처럼 새로 들어오는 팀이 있는가 하면 철수 준비를 서두르는 팀들로 북적였다.
그 중 어제 등정했다며 처음 보는 사람만 있으면 껴안고 큰소리로 웃는 일본원정대가 특히 눈에 띄었다. 이런 일본원정대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전투를 앞둔 병사 같은 심정이 되어 새롭게 마음의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그래 내일이면 나도 저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리라.’
아무리 먹으려 해도 입맛은 천리만리 달아나
“밤 10시30분에 기상해 간단한 식사와 등반준비 후 밤 12시에 정상 공격합니다!”
저녁식사 후 서대표의 한마디에 침묵과 긴장감이 돌았다. 잠시 모두 정상을 밟았으면 하는 마음에 펄럭이는 깃발과 돌탑을 보면서 ‘우리 모두 정상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한 후 텐트로 돌아와 몇 시간 후 시작될 정상공격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보려 했지만 흥분과 고소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저 눈만 감은 채로 뒤척이는데 옆에 누운 대원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인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몇 시나 되었을까, 아직 출발 시간이 멀었는데 갑자기 텐트 주위에 불빛이 비치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결국 옆에 누워 있던 대원이 텐트 밖으로 나가더니 급히 돌아와 나를 깨웠다.
“형님! 큰일났어요. 글쎄, 옆 텐트에 있는 대원이 고소증세가 심해 하산했답니다.”
누구나 정상을 가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 하산하는 동료의 마음을 어떠할까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웠다. 정성이 부족한 탓일까. 그렇게 간절히 빌었는데. 이런 소란을 겪다 보니 어느덧 기상시간이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식당텐트로 가자 벌써 대원들이 나와 있다. 모두 부스스한 것이 간밤에 긴장되기는 나와 마찬가지였나보다. 안 먹어도 안 되고 과식해도 안 되고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어두라는 김창호 대장의 말에 억지로 주먹밥을 입안에 우겨 넣어 보지만 입맛은 이미 천리만리 달아나 있었다. 이렇게 식사가 끝나고 출발에 앞서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파이팅을 외쳤다.
맨 앞에 메인 셰르파, 그리고 서대표, 맨 뒤에 셰르파, 이런 순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의외로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컨디션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고도가 점점 더 높아감에 따라 호흡은 거칠어지고 발걸음은 무거워져갔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설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부터 크램폰을 착용합니다.”
김대장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크램폰을 착용하고 산행을 하는데 이제부턴 마치 직벽 같은 느낌의 된비알이 시작되었다. 끝없이 오르막은 계속되고, 문득 위쪽을 보니 저 멀리 먼저 출발한 외국 원정대의 불빛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 저기까지 오르나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 둘 하나 둘 마음속으로 숫자를 헤아리며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동이 트기 시작하자 좀 더 힘을 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 해발 5,700여m 지점의 안부에 도착하자 잠시 휴식을 하면서 후미를 기다렸다. 후미는 많이 지쳤는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서대표가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는 모두 정상에 갈 수 없으니 서대표가 후미와 함께 하산하기로 하고 비교적 컨디션이 좋은 선두 5명만 2개조로 나누어 서로 줄을 묶고 정상을 가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되자 곧바로 등정을 시작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정상은 가까운 듯하면서도 오르면 오를수록 멀리 도망가며 좀처럼 내주지 않았다. 숨이 턱에 차 오르면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는 일이 잦아졌다. 어찌나 숨이 가쁘고 힘이 들던지 다시는 고산등반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 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어느 순간 온통 하얀 눈밭에 오색 깃발 룽다가 펄럭이는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캠프에 누워 ‘서밋’이란 단어 떠올리는 순간 입가에 미소
“정상이다! 정상!”
우리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누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사진 찍기를 끝내자 그만 하산하자는 김대장의 말에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2개조로 줄을 묶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하산 길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산행 시간이 10시간을 넘어서자 서서히 눈이 감기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캄캄한 새벽에 아무것도 모르며 올라왔던 길이 이렇게 길다는 데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눈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발걸음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저 아래 베이스캠프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후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 먼저 내려온 대원들이 축하를 해주며 식사를 권했다. 하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이내 텐트로 돌아와 눕자 나도 모르게 서밋(Summit)이란 단어가 떠오르며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다시 날이 밝고 하향 캐러밴이 시작되었다. 한결 마음에 여유가 있다 보니 올라올 때 미처 보지 못한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풍광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횟수가 많아지고 우리들 웃음소리는 커져 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히말라야가 점점 내게서 멀어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만큼 아쉬움도 커져만 갔다.
[ 레·라다크 정보와 여행 팁 ]
라다크(Ladakh)는 ‘고갯길이 있는 땅’이라는 뜻의 티베트 말이다. 작은 티베트라고도 불리는 라다크는 인도 북부의 잠무&카슈미르(Jammu & Kashmir)주에 속하고,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던 실크로드에 자리하며, 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상인들의 종착지였다.
라다크는 950년부터 1834년, 힌두교의 침략을 받을 때까지 독립적인 왕국이었다. 이후 힌두교의 도그라스가 카슈미르를 장악하자 라다크와 이웃인 발티스탄은 잠무와 카슈미르의 지배 하에 있게 되었다. 1947년 인도-파키스탄의 전쟁 이후에 발티스탄 지역은 파키스탄 쪽에 있게 되고, 라다크는 인도의 잠무와 카슈미르주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고조, 1950년의 중국의 티베트 침공, 1962년 악사이 친 지역에 대한 중국의 점령 등으로 인해 라다크는 인도의 가장 중요한 전략지가 되었다.
히말라야의 그늘 속에 있는 라다크는 커다란 산맥들이 얽혀 있는 고지대의 황무지이다. 오래된 주도인 레를 포함해, 대부분의 지역이 지리학적으로 인도 히말라야에 속하며, 북쪽으로는 동부 카라코람산맥을 접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자동차 도로인 카르둥라(Khardung La·5,606m)를 통하는 누브라 벨리는 동부 카라코람의 시세르산군과 리모산군을 조망할 수 있으며, 극지를 제외하고 가장 긴 빙하인 시아첸빙하의 말단이 있다. 이곳은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라를 통해 인도로 넘어오는 유일한 길목이었기에 탐험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라다크의 오랜 주도인 레(Leh·3,520m)는 라다크 지역의 모든 트레킹, 등반, 관광, 어드벤처 투어 등의 기반이다. 야생의 풀들과 꽃, 빙하가 녹아 흐르는 맑은 물, 사방천지가 산이고 황갈색에서 연초록까지 다양한 색조를 띤 산정들의 모습에서는 척박함과 황량함의 극치를 달린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거대한 황무지에 눈부신 초록색 에메랄드가 박혀 있는 오아시스의 모습으로 우리의 시선을 자극한다
깎아지른 산허리에 자리를 잡은 유명한 티베트 곰파(사원)들과 인더스계곡, 판공(Pangong)호수, 초모리리(Tsomoriri)호수, 마르카벨리, 누브라벨리, 아리얀(Aryan)계곡, 낙타 사파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자동차 도로, 이 모든 것들을 레에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지역적으로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이 이곳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되고, 스웨덴 출신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통해 은둔의 장소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레를 중심으로 라다크에는 수많은 트레킹 코스가 있으며, 6,000m가 넘는 등반 대상지가 많이 있다. 대부분이 10~15일의 짧은 일정으로 가능하며, 특히 스톡캉그리는 매년 100여 개 팀이 등반을 시도한다.
접근 방법
기점도시인 레로 가는 방법은, 가장 일반적인 육로인 뉴델리→마날리→레 코스는 꼬박 3일이 소요된다. 1989년에 완공된 마날리→레 구간의 도로는 6월부터 10월 초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국내선 항공은 시즌 중에 매일 3편이 운행하나,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전 세계 관광객의 폭주로 항공좌석을 확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최소한 출발 3~4개월 전에는 국내선 항공좌석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등반 시기 및 정보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을 아우르는 라다크 지방은 몬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의 기후보다 더욱 안정적인 기상상태를 나타낸다. 라다크 지방은 연평균 강수량이 84mm밖에 되지 않으며, 등반 시즌은 6~9월이 적기이다. 따라서 한국의 여름기간에 등반이 가능하며, 다른 지역보다 짧은 기간에 히말라야 등반을 경험할 수 있다.
등반 외에도 다양한 트레킹, 등반, 어드벤처코스가 있으며, 이색적인 지형구조와 색깔, 그리고 문화유적의 다양함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몇해 전부터 인도를 찾는 한국 배낭여행자들의 방문지로도 최고의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라다크 지방에는 현재, 6,000m가 넘는 봉우리 104개가 오픈되었으며, 이외에도 이름 없는 많은 봉우리가 산재하고 있다.
이곳 전문 여행사 유라시아트렉은 레와 라다크 지방의 트레킹과 등반대를 위해 네팔의 시스템을 도입해 네팔 셰르파와 한국음식이 가능한 네팔 요리사를 시즌 내내 상주시켜 한국 정서에 맞는 형태로 등반 가이드를 한다. 또한 11~15일 정도 시간에 등반이 가능한 7~9개의 6,000m 이상 봉우리를 프로그램화해 놓았다. 문의 유라시아트렉 02-737-8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