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광산(光山)은 전라남도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이다. 신라시대에 이르러 도독(都督)을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 무주(武州)로 고쳤다. 진성여왕 때는 견훤(甄萱)이 이곳에 후백제를 세워 도읍을 정하기도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하고 군현을 정비하면서 무진주를 광주(光州)로 개편하고 도독부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관제개혁 때 해양도(海陽道) 소속이 되었다가 1259년(고종 46) 기주(冀州: 일명 冀陽州)라 고쳤으며, 충선왕 때 이르러 화평부(化平府)로 강등되어 공민왕 때 광주목(光州牧)이 되었다. 1430년(세종 12)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가 성종 때에는 광산현으로 강등되었고, 연산군 때 주(州)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羅州府) 관할의 광주군(光州郡)이 되었다가 1910년 광주면이 되었고, 1935년 광주읍(光州邑)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광산군(光山郡)이 되었다. 1988년 송정시와 함께 광주직할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개편되었다.
성씨의 역사
광산이씨(光山李氏)는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의 후예로, 송악(松嶽)에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웠던 궁예(弓裔)의 6세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이종금은 1010년(현종 1) 거란(契丹)의 40만 대군이 내침하여 송도(松都)와 주읍(州邑)이 허물어지고 왕이 남천(南遷)하는 혼란 속에서 강감찬(姜邯贊)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 대소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1018년(현종 9) 3차로 재침해 온 거란의 10만 정예군(精銳軍)을 맞아 휘하의 주군을 이끌고 강화성(江華城)을 굳게 지켜 나라의 귀중한 재화(財貨)를 보전시켰다고 한다. 그 공적으로 1032년(덕종 2) 광산군(光山君)에 봉해지고 본래의 이름인 김일형 대신 이종금(李宗金)이라는 성명을 하사받았다. 따라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광산군(光山郡) 일원에 세거하면서 본관을 광산으로 삼게 되었다.
분적종 및 분파
시조의 8대손으로 고려 말에 현달한 이순백(李珣白)·이숙백(李淑白)·이승백(李升白) 3형제 대에서 상서공파(尙書公派)·한림공파(翰林公派)·직제공파(直提公派)로 분파되었다.
주요 세거지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 검승리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죽청리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 옥곡리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수양리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경상북도 달성군 논공면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광산이씨는 11,416가구 총 36,74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