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레23:26~28)
속죄일은 ‘죄 벗는 날’이었습니다. 일을 쉬고 금식을 하며 제물을 바치면, 죄를 벗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성전이 건축된 이후, 속죄일은 성전에서 지켜야 했습니다.
‘죄 벗는 날’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대목이었습니다. 죄 벗는 날 속죄일에서 성전으로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제물을 팔아 큰 이익을 남기는 날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준비해 둔 제물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직접 가져온 제물에 흠이 있다고 트집 잡기도 했습니다. 제물에 흠이 있다고 판정을 받으면,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돈으로 환전을 해서 제물을 다시 사야 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환율을 지나치게 높게 잡아 이중의 이익을 챙기려 했습니다.
물세례는 성전에서 행해졌던 타락한 속죄 행사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성전으로 공간이 특정되지 않아도 돈을 들여 제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죄를 벗을 수 있다는 것이 세례 요한의 입장이었습니다.
물만 있으면 죄를 벗을 수 있다는 세례 요한의 선언을 듣고, 성전의 대목 행사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었던 요단강에선 종교 의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요단강에는 지성소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제단이 준비되지도 않았습니다. 세례를 베푸는 요한이 우림과 둠밈으로 장식한 제사장의 옷을 입은 것도 아닙니다. 정해진 절기가 아니라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푸는 날이면 날마다 ‘죄를 벗는 날’이었습니다.
물세례는 성전에서 벌어지는 부패한 상행위에 대한 비판이었고, 성전에서만 죄를 벗을 수 있다는 타락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그럴듯한 ‘경건의 모양’이 없어도 어디에서든 ‘죄 벗는 날’을 경험하는 것이 물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물세례의 정신은 비판과 저항입니다. 부도덕을 비판하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 요한이 베풀었던 물세례였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성전주의자들을 비판하고 그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 물세례의 정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물세례를 받았고, 비판과 저항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건물에 매임 없이, 관습에 집착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더 나아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 하십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1:5)
성령으로 세례를 받던 상황을 예수님은 선언하듯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은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자기중심적입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이라는 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 사람이 자신과 혈족 외에 다른 사람을 내 자리로 초대하고, 다른 사람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은 본성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를 만나고 있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공적인 삶을 삽니다. 개인과 가족 등 혈족을 넘어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가난한 자에게 천국을 소유했음을 전하고,(마5:3)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장애인에게 일상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제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씀하셨습니다.(1:2)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1:3)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예수의 증인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와 함께 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1:8)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의 직함에는 ‘공익’, ‘인권’, ‘특수’ 등의 관형어가 붙곤 합니다. 공익 활동가, 인권 변호사, 특수 교사 등의 별명을 갖게 됩니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증인들에게 세상을 맡겨 두시고 하늘로 가셨습니다.(1:9) 예수님은 땅에 없습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예수님께서 감당하셨던 공적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 예수 노릇해야 합니다. 이제 땅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작은 예수들이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는 곳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통치관을 받들어 작은 예수들이 섬김으로 통치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부패를 비판하고 타락에 저항하며 물세례를 받았다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내가 성전 되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나와 만나는 하루가 ‘죄 벗는 날’입니다. 나와 함께 하는 한 해가 ‘주의 은혜의 해’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