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27:18-20 영이 머무는 자
마9:17에 보면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말씀하셨다. 여기서 ‘가죽 부대’는 양이나 염소 등의 가죽을 통채로 벗겨낸 후 목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다시 기워 그 안에다 액체를 담아 놓는 데 사용된 용기다. 그런데 이 가죽 부대가 낡아 튼튼하지 못할 경우 거기에 새 술을 담아두면, 발효할 때의 팽창력을 감당하지 못해 신축성이 없는 낡은 가죽 부대는 터져 버리고 만다. 따라서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새 술을 담아둘 경우에는 반드시 새로 만든 가죽 부대를 사용했다. 새술은 새 부대에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결코 공존할 수 없으며 만약 이를 어리석게도 배합하려고 한다면 둘 다 파괴되고 만다는 뜻으로 생명력이 약한 유대교의 전통과 의식에 생명력이 충만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포도주'를 수식하는 '새'는 ‘네오스’를 말하는데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으로 가장 최근에 제조된 포도주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새'는 ‘카이노스’를 말하는데 질적으로 새롭다는 의미로 가죽 상태가 전혀 훼손되지 않고 매우 양호한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지금 새롭게 시작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나라는 형식과 전통의 종교인 유대교가 아닌 새로운 조직 속에 부어 넣어져야 한다고 교훈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새로운 교훈이 (복음) 유대주의적 의식에 (율법) 맞게 변형될 수 없으며, 또한 그 전통에 의해 통제될 수 없고 오히려 이것을 통제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영적 질서임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출애굽 1세대를 인도했던 모세를 리더십에서 내려오게 하신 후, 2세대와 함께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여호수아를 새로운 리더십으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리더로 세우면서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하셨다.
하나님은 새로운 리더십인 여호수아를 말씀하시면서 ‘영이 머무는 자’라고 그를 평가하셨는데 영이 머무는 자는 ‘성령에 사로잡힌 자, 항상 언제나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자’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새로운 리더십으로 세우신 이유는 그가 바로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적인 조건이나 자격을 먼저 보지 않으심 –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음) 고전1:26-29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다.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삼상16:13에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하셨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서 두 번째로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는 사람이었고. 다윗은 사울 왕을 이어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는 사람이었다. 여호수아와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입었을 때,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입은 후에 새롭게 되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세움을 입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는 사람이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 온전히 순종한 여호수아는 바란 광야에서 믿음으로 선포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십인 모세를 수종을 들면서 한결같이 보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가나안 정복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실 때,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자로 인정을 받은 것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여호수아처럼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성령에 지배를 받아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새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외모를 보시고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고 사람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 리더십으로 세우신다. 이 시간, 영이 머무는 자 즉 성령에 사로잡힌 자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 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자.
1.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한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곁에서 끝까지 모세를 보필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에 사로잡힌 후,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충성을 다했다. 바울 역시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했다. (수많은 환난과 고통의 순간을 만났지만 끝까지 충성) 고전4:1-2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백하였다. 계2:10에도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함없는 충성은 성령에 사로잡힌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힘과 능력으로 하면 얼마못가 탈진이 되고, 시험에 들어 낙심하게 되며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인정해 주시고 더 귀하게 사용해 주신다. 그렇게 사용해 주시면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은혜로 채워주신다. 주신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하라고 하나님이 필요를 따라 공급해 주신다. 마25:21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셨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리더십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간구하였다. 히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셨다. 그렇다.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한다. 사역의 열매가 많이 열렸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사역의 열매가 적을 때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하였다. (은혜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성령에 사로잡힌 바울은 평생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었다. 그때에 바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전15:10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갈채를 받을 때도, 신적인 대접을 받을 때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라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고백하였다. 그렇게 모든 상황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바울을 새 시대에 (초대교회 시대)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