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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향기로운 동심, 살뜰한 동심의 노래
이정환
동심은 천심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마음이지요. 여기 맑고 향기로운 동심을 가진 한 시인이 있습니다. 살뜰한 동심의 노래 예순 편을 세상에 널리 펼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마음이 메말라지기 쉽지요. 최화수 선생님은 어릴 적 그 마음 그대로인 채로 여러 사물과 세상을 살핍니다. 따사로운 눈길로 동심을 보듬어 안습니다. 섬세한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아름다운 시어를 동원하여 노래를 엮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동시조는 살뜰합니다. 읽는 이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쩌면 이렇듯 다정다감하게 아이들의 마음과 생활 그리고 놀이를 노래할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천심인 동심을 잘 가꾸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최화수 선생님의 두 번째 동시집『내 발도 꽃이야』는 시조 형식을 갖춘 동시조집입니다. 이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연둣빛 아기벌레//동그마한 이파리에//콕 콕 콕 잇자국 내며//점 점 점 그려가요//누구라 흉내 낼까요//아기벌레 첫 그림
-「첫 그림」전문
「첫 그림」에서 초장은 셋째마디가 한 글자 늘어났고, 중장에서도 둘째마디가 한 글자 늘어났을 뿐 다른 곳은 잘 맞게 쓴 작품입니다. 표본에 가깝지요. 이렇듯 시조는 일정한 형식이 있어서 자유롭게 쓰는 시보다 읽는 맛이 더 납니다. 우리는 동시조집『내 발도 꽃이야』를 읽으면서 다양한 정서로 노래한 작품에서 우리말의 맛깔스러움과 더불어 시조만이 가진 리듬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조상이 물려준 우리 고유의 시이기 때문이지요. 「첫 그림」은 아기자기한 분위기 속에서 아기벌레가 첫 그림을 완성하는 모습을 실감실정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앙증맞은 이미지로 짜서 생생하게 그린 점이 돋보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기 적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아기와 아기벌레는 하나입니다.
「궁금이 아기 새」도 같은 정서입니다.
엄마 새 일 나간 사이//둥지 밖이 궁금한 아기//부리 한껏 내밀고//바깥 맛 쬐금 본다//짭 짭 짭 햇살 한 마디//호로록 바람 한 숟갈
-「궁금이 아기 새」전문
아기 새는 궁금이입니다. 하여 둥지 밖이 몹시 궁금합니다. 부리를 한껏 내밀고 바깥 맛을 봅니다. 많이 볼 수는 없지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쬐금 맛보면서 햇살 한 마디 짭짭 거려보고 바람 한 숟갈 호로록 들이마셔 보면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풀어봅니다. 사랑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물새가 그림 그려요/널따란 모래톱에//종종걸음 두 발이/두 줄로 찍은 화살 무늬//물새는 앞으로 가고/화살표는 뒤로 가고
-「물새가 그린 그림」전문
「물새가 그린 그림」은 관찰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모든 정경을 눈여겨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합니다. 물새가 그림을 그리는데 널따란 모래톱입니다. 종종걸음 두 발이 두 줄로 찍은 화살 무늬를 보면서 물새는 앞으로 가는데 화살표는 뒤로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뜻있는 장면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단순미의 깊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내 발도 꽃이야」를 보겠습니다.
네 살 손이 치익 칙, 화분에 물을 뿜다/홰뜩, 뿜개를 제 발에다 뿜어대요/준이 너!/듣는 척 만 척/“내 발도 꽃이야.”//그렇구나 준이야 네 발도 꽃이구나/발 닿는 자국마다 하하 호호 피는 꽃/일곱 빛/무지개보다/더 곱게 피는 꽃.
-「내 발도 꽃이야」전문
발이 꽃이 된다는 생각을 어른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네 살 손이 치익 칙, 화분에 물을 뿜다가 뜻밖에도 홰뜩, 뿜개를 제 발에다 뿜어대는 것을 어른은 보고 깜짝 놀랍니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지요. 화자가 준이 너!, 라고 외쳤지만 별무 소용입니다. 듣는 척 만 척하면서 별안간 내 발도 꽃이야, 라고 외칩니다. 그 순간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습니다. 돌발적인 발상이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그래서 그렇구나 준이야 네 발도 꽃이구나, 하고 동의합니다. 발 닿는 자국마다 하하 호호 피는 꽃이자 일곱 빛 무지개보다 더 곱게 피는 꽃을 정겹게 바라봅니다. 이렇듯 꽃 소동은 행복하게 끝이 납니다.
다음으로「1요일 2요일 3요일」를 봅니다. 제목부터 아주 독특합니다.
다섯 살 내 동생//유치원 친구 생겼대요//짝궁이 여행가서/1요일 2요일 지나고 3요일 날 온대요//엄마도 나도 갸우뚱한//아기들만의 요일 이름
-「1요일 2요일 3요일」전문
무슨 내용일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내 동생 유치원 친구 생겼다면서 짝꿍이 여행 갔는데 1요일 2요일 지나고 3요일 날 온다는 말을 남겼나 봐요. 엄마도 나도 갸우뚱한 아기들만의 요일 셈법입니다. 한번 계산해 보아요. 참으로 깜찍하지요.
「아기 집게」도 사랑스럽게 읽힙니다.
빨랫줄 흔들어요/봄바람이 마구마구//얼굴이 하얘져요/건너 줄 엄마 집게//“엄마, 나 잘할 수 있어!”//청바지 꽉 무는 아기 집게.
-「아기 집게」전문
봄바람이 마구 빨랫줄을 흔들어대자 건너 줄 엄마 집게가 얼굴이 하얘집니다. 그러자 아기 집게가 하는 말이 무척 야무집니다. 엄마, 나 잘할 수 있어!, 그러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 말을 엄마 집게에게 건넵니다. 그러면서 청바지를 꽉 물고 잘 버팁니다. 이런 아기 집게를 보고 봄바람도 이젠 살랑살랑 불다가 곧장 떠나가 버릴 듯합니다.
「구름나라 오를 참이야」는 짱아의 꿈이 아주 큰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지랑대 꼭대기/바들대는 짱아야//바람이 헤살 놓아/떨어질까 겁나니?//아니야!/바지랑대 박차고/구름나라 오를 참이야.
-「구름나라 오를 참이야」전문
바지랑대 꼭대기서 바들대는 짱아에게 바람이 헤살 놓아 떨어질까 겁나니?, 라고 묻자 짱아는 씩씩하게 아니야! 바지랑대 박차고 구름나라 오를 참이야, 라고 답합니다. 구름나라는 참 높은 곳인데 이곳에서 힘을 충분히 길러서 꼭 오르고야 말겠다고 합니다. 참 다부집니다.
「아까스름」은 제목이 특이하군요.
열흘 못 본 사이/훌쩍 큰 다섯 살//양떼 목장 다녀와/쫑알쫑알 전해요//양이랑 나눠먹던 젤리/엄마가 꽁당, 버렸다고//“그런데요 그 젤리가/자꾸만 아까스름 했어.”//아까스름이 뭔 말이니?/“조금 아까운거야.”//어쩌면 저런 말 열릴까/오롱조롱 열릴까
-「아까스름」전문
열흘 못 본 사이 훌쩍 큰 다섯 살이 양떼 목장 다녀와 쫑알쫑알 전합니다. 양이랑 나눠먹던 젤리 엄마가 꽁당, 버렸다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그 젤리가 자꾸만 아까스름 했”답니다. 아까스름이 뭔 말이니?, 라고 물으니 조금 아까운 것이라네요. 어른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할 말을 아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말합니다. 아까스름, 참 재미난 말이지요. 입에서 오롱조롱 열리는 새로운 말은 정겹기까지 하군요.
「길 하나 있지」는 따사로운 눈길에서 비롯된 작품입니다.
아기벌레 흙 속에/길 하나 가지고 있지//날마다 오가는 고불고불 휘어진 길//혼자만/숨겨 놓은 길/환한 길 하나 있지
-「길 하나 있지」전문
아기벌레 흙 속에 길 하나 가지고 있는데 날마다 오가는 고불고불 휘어진 길입니다. 혼자만 숨겨 놓은 길인데 그 길은 아주 환합니다. 비록 고물고불 휘어진 길이지만 아기벌레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길이지요. 날마다 오가기 때문입니다. 나만의 길 하나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게 하는 작품이군요.
다음은「빗방울과 나뭇잎」입니다.
톡 톡 톡, 토도독//창밖의 저 소리 좀 봐//빗방울과 나뭇잎이 손뼉치고 있잖아!//서로가 하나씩 가진 손//둘이 맞대 톡 톡 톡//촉촉 목축여주는 빗방울아 고마워//초록빛 그늘을 주는 나뭇잎아 고마워//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칭찬박수 짝 짝 짝.
-「빗방울과 나뭇잎」전문
먼저 톡 톡 톡, 토도독 창밖의 저 소리 좀 봐, 라고 시선을 돌리게 합니다. 빗방울과 나뭇잎이 손뼉치고 있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지요. 서로가 하나씩 가진 손이 둘이 맞대 톡 톡 톡, 하고 소리를 내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촉촉 목축여주는 빗방울아 고마워, 초록빛 그늘을 주는 나뭇잎아 고마워, 라고 가락을 살려 고마움을 표합니다. 그것은 곧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칭찬박수이지요. 함께 행복을 나누는 소리입니다, 짝 짝 짝.
「모리겠다 꾀꼬리」는 입말을 살렸군요. 표준말로는 모르겠다, 인데 그렇게 쓰면
재미나기가 어렵지요.
개구쟁이 준이 녀석/점심 먹다 말 따 먹나 봐//고래는 뭘 먹어요?/“작은 고등어 먹지”//그러면 고등어는 뭘 먹어요?/“더 작은 새우 먹지”//새우는 뭘 먹어요?/“더 더 작은 그 머더라….”//머더라는 뭘 먹어요?/“더 더 더 작은 거시기”/할머니, 두 손 드시며//“모리겠다 꾀꼬리!”
-「모리겠다 꾀꼬리」전문
개구쟁이 준이 녀석은 점심 먹다 말 따 먹나 봐, 라면서 고래는 뭘 먹어요?, 라고 물어서 작은 고등어 먹지, 라고 답해줍니다. 그러자 또 그러면 고등어는 뭘 먹어요?, 라고 묻습니다. 더 작은 새우 먹지, 라고 말하자마자 새우는 뭘 먹어요?, 라고 묻습니다. 정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더 더 작은 그 머더라…, 라고 엉겁결에 답하자 머더라는 뭘 먹어요?, 라고 물으니 더 더 더 작은 거시기, 라고 하다가 할머니는 두 손 높이 들고는 끝으로 하는 말이 모리겠다 꾀꼬리, 입니다. 웃음이 절로 나는 장면이지요. 이런 말놀이, 생각놀이를 하면서 준이는 반듯하게 성장합니다. 할머니와의 좋은 추억은 아마 평생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순간입니까?
「튼튼이 체조」를 봅니다. 운동 중에 간단하면서 좋은 몸에 좋은 운동은 맨손체조입니다.
운동장 나무들이//바람의 구령에 맞춰//힘차게 팔 흔들고//허리를 휘돌려요//나무도 우리들처럼//튼튼이 체조 하나봐.
-「튼튼이 체조」전문
어느 날운동장 나무들이 바람의 구령에 맞춰 힘차게 팔을 흔들고 허리를 휘돌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나무도 사람처럼 체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튼튼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체조를 나무들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자주 체조를 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법하지 않나요? 이따금 도구로 하는 곤봉체조나 훌라후프로 하는 갖가지 체조를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그리고 체조는 아니지만 굴렁쇠 굴리기도 운동 능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마스크 놀이」는 요즘 우리 생활을 잘 노래하고 있군요.
1 약국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어요/왜 저렇게 줄 서냐고 엄마에게 물었어요//마스크 사려는 사람/너무 많아 그렇대요//2 준이네 장난감도 기다랗게 줄 섰어요/뽀로로와 루피, 콩순이, 바나클……//입에다 대일밴드 붙여주며/“코로나야 잘 가!”
-「마스크 놀이」전문
약국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보고 왜 저렇게 줄 서냐고 엄마에게 물었는데 마스크 사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다고 답해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보니 준이네 장난감도 기다랗게 줄을 섰습니다. 준이는 뽀로로와 루피, 콩순이, 바나클……, 이라고 정겹게 부르면서 입에다 마스크 대신 대일밴드를 붙여주며 코로나야 잘 가!, 라고 인사합니다. 그 마음씀씀이가 잘 어여쁩니다. 준이의 소원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종이실 돌돌돌 뭉쳐/거실 나무에 올려놓고//“새집이야, 새가 올까?”//갸웃대는 준이 녀석//창문을 열어 두재요/새가 날아올 거라며//새 꽁지만큼 놀다 와선/“할머니, 새 왔어?”//간절한 눈빛에게/“그럼, 새가 왔지 흐흐”/나부죽,/종이 새 한 마리/둥지에 앉았네요.
-「종이 새」전문
「종이 새」는 새를 사랑하는 정답고 아기자기한 이야기입니다. 종이실 돌돌돌 뭉쳐 거실 나무에 올려놓고 새집이야, 새가 올까?, 하고 갸웃대는 준이 녀석이 창문을 열어 두자고 합니다. 새가 날아올 거라는 기대감에서지요. 그런데 새 꽁지만큼 놀다 와서는 할머니, 새 왔어?, 라며 간절한 눈빛입니다. 할머니가 대답하기를 그럼, 새가 왔지 흐흐, 웃으시면서 나부죽, 종이 새 한 마리 둥지에 앉은 것을 넌지시 일러줍니다. 준이를 위한 남다른 사랑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대목이지요. 이 작품에서 특히 새 꽁지만큼 놀다 와선, 이라는 표현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남다른 언어감각입니다.
최화수 선생님은 자신 속의 또 다른 아이를 통해 “맑고 향기로운 동심”을 가꾸면서 “살뜰한 동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지 못한 작품들에서도 아름답고 정겨운 이야기를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찾아 읽어보세요.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되고 한없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멋진 또 한 권의 동시조집을 펴내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맑고 향기로운 노래로 엮은『내 발도 꽃이야』가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오래도록 널리 읽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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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제가 읽은 동시조 중에 제일 재미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