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 수정 / 박복남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법당에 합창이 숙연하게 깔렸다. 흠칫했다. 아니, 귀의라니! 노래를 따라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통일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법륜스님은 정토회 안팎에 ‘통일의병’을 두고 있다. 힘들 때마다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역사를 바탕에 두었다. 통일에 관심을 가진 시민 역량을 키우자는 취지다. 얼떨결에 부산 통일의병을 출범시켰더니 그 공을 인정받아 스님이 주관하는 ‘동북아 역사 기행’에 참가할 수 있었다. 신청자가 많아 아무나 갈 수 있는 여행이 아닌 줄 한참 후에 알았다. 학생 시절에 들었던 고구려와 발해의 고대 유물과 유적, 독립운동 관련한 근대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았다. 네 시에 일어나 좀비처럼 걸어 새벽시장으로 가서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을 보았다. 북한에서 3백만여 명이 굶어 죽었던 1990년에, 6개월 동안 그곳에 살면서 헤엄쳐 건너 온 사람들을 도왔던 제이티에스(JTS:국제구호단체) 활동가의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사할린에서 농사짓는 동포에게 갔더니 뷔페 음식을 마련해 주었다. 음식 찌꺼기 하나 없이 빈 접시 150개가 착착 쌓이도록 끌어내는 스님에게 감동했다. 해외여행을 잘 가지 않지만, 스님이 만든 여행은 더 하고 싶었다. ‘인도 성지 순례’가 있는데 그건 정토회 회원만 갈 수 있다고 했다. 두말하지 않고 다음 학기에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전국에서 동시에 법륜스님의 영상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수업 끝날 때의 ‘사홍 서원(네 가지 큰 원)’도 시작할 때의 ‘삼귀의(불, 법, 승에 귀의함)’에 못지않았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내가? 무슨 수로? 겁이 났다. 천연덕스럽게 노래하는 사람들이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약속을 하지? 잘 못 왔나. 차마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계속 다녀야 하느냐는 갈등은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자 금방 사라졌다. 의례는 문화일 뿐이라는 말씀에 이어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을 배우겠다’는 뜻이며, ‘중생을 건지겠다’는 것은‘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겠다’는 뜻이라 했다. 처음 듣는 것에는 ‘예’보다 ‘왜?’가 먼저 떠오르는 내 습성에 안달 나지 않을 속도로, 마음을 꿰뚫듯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풀어 주었다. 그중 답을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던 것은 ‘나는 행복한 수행자입니다.’라는 명심문이었다. 사람이 늘 행복하다면 일상이 천국이란 말 아닌가? 정토회는 신앙이나 철학으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수행을 중심으로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복을 비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또 입을 다물었다. 납득되지 않는 일을 그냥은 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어려워지기도 하지만, 성미는 고쳐지지 않았다.
스님은 늘 그랬듯이 또 대답을 주셨다. ‘행복하다는 것과 즐겁다는 것은 다르다. 고(苦)와 낙(樂)은 동전의 양면이며 행복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괴롭지 않다는 것이다’는 설명에 의문과 내 입은 같이 풀렸다.
불교대학 1년을 감동 속에서 지냈다. 고등학생 시절 학생 회원으로서 배운 불교는 '철학'이었다.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떨치지도 못하고 마음의 고향처럼 담고 있었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다시 만난 법륜스님의 불교는 ‘생활’이었다. 하나하나 근거를 대면서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른 데서 불교대학을 졸업했거나 교회,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하는 이유였다. 1년 과정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불교의 핵심이라는 ‘연기설’과 ‘무상, 무아’는 스스로 풀었다. 내 인생의 책이 된 <코스모스>(칼 세이건 작)에서 답을 찾았다. 연기설을 신앙이 아닌 과학적 사실로 받아 들자, 머리가 가벼워졌다.
이렇게 오류를 수정받아 편해졌냐고? 아니다. ‘지식으로 알고만 있는 것은 소용이 없다. 내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부처님께 철저하게 귀의한 스님을 따라, 갈지자걸음을 걷기는 하지만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해받으려 하지 않고 이해하겠습니다. 도움받으려 하지 않고 돕겠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명심문을 읽으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첫댓글 요즘 가끔 법문 영상을 봅니다.
'연기'란 낱말 이 글에서 만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은요.
'행복하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괴롭지 않다는 것이다'는 말 기억하겠습니다.
저도 이 글에서 행복하다는 것과 즐겁다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제일 눈에 들어 오네요. 글 고맙습니다.
'왜'를 먼저 외치는 건 참 바람직한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괴롭지 않는 마음 상태' 얼만큼 마음 수련을 하면 이렇게 되는지요?
법륜 스님 강연을 듣다 보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법이 배워지더라고요. 그러면 괴로움도 줄어들겠지요. 1년이나 공부하시다니요. 저는 '수련'까지는 못하겠어요. 귀찮기도 하고 너무 힘들잖아요. 하하.
`이해 받으려 하지 않고 이해하겠습니다. 도움받으려 하지 않고 돕겠습니다. ' 어리석은 저같으ㄴ 이에게는 어렵지만 가슴에 새길 말씀이네요.
어려운 내용을 참 쉽게 풀어주셨네요. 선생님 글 읽으니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연기설과 무상, 무아는 스스로 풀었다.
언제 한 수 가르쳐 주시지요.
미련한 중생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