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세 번은 목탁을 듭니다. 출가 전 참 오랜 세월을 신심으로 독송하던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출가 후에는 멀리한 채 살고있는데, 군법회에서는 진행을 위해 제가 집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반야심경을 하고 나니 사회자가 '입정(入正)이 있겠습니다.'라고 안내를 합니다. 저는 죽비를 들고 법우님들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입정 이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라며 오늘의 설법을 시작하였습니다.
: 서울에서 설법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설법회를 통해서도 다시 확인되는 것이 있는데, 역시 삶은 업인과보(業因果報) 즉 업(業)과 보(報)의 인과(因果)관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업과 보에 관한 이야기가 가르침의 중심에 서지 못하여서, 오랫 동안 절에 다닌 분들도 업인과보의 의미와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우님들에게 지난 일년 동안 '착한 업을 지으면 행복해지고, 악한 업을 지으면 괴로워진다.'는 이야기를 반복해 드렸는데,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 가르침의 진정(眞正)에 접근하는 바른 길인 것을 서울 설법회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산다는 것은 행위하는 것입니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행위하는 것 즉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지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행위에는 행위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고 하는데, 이 결과를 보(報)라고 합니다.
행위의 결과인 보는 ①행위 즉시 나타나기도 합니다. 날씬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지나갈 때 쿡 찔러 희롱하면 그 즉시 뺨을 향해 손바닥이 날라올 것입니다. 그렇듯이 어떤 행위는 행위 즉시 보(報)가 초래됩니다. ②법우님들께서 지금 이 법회에 참석하여 공부하는 행위는 법우님들의 삶을 올바르게 안내할 것입니다. 또한, 살다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때 참아내고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는 게 힘들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혹 죽어버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공부하는 업을 짓는 여러분은 올바른 삶, 참아내고 극복함으로써 행복한 보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報)는 행위하고 난 뒤 미래의 어느 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③그런데 '나'는 몸과 마음의 결합체입니다. 부모님에게서 생겨난 몸과 전생의 죽음에 이어 모태에 드는 마음이 함께할 때 '나'인 것입니다. 몸은 물질이어서 어느 만큼 살다가 죽으면 소멸하고 말지만 마음은 정신적이고 몸과 근원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몸이 죽어도 따라 죽지 않고 다음 생으로 이어져 갑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행위의 결과로 초래되는 보(報)는 마음이 다음 생의 몸과 결합하여 살아갈 때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음 생에 겪어야 하는 보인 것입니다.
보(報)가 나타나는 시점이 이렇게 세 가지라는 것은 잘 알아야 합니다. 행위 즉시 나타나는 보도 있지만 과거 행위의 보가 행위 시점의 미래인 지금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①지금 행위의 보일 수도 있지만, ②지금 몸으로의 과거 행위에 따르는 보일 수도 있고, ③이전의 몸 즉 전생의 행위에 따르는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런 이해가 선행할 때, 지난 법회에서 말씀드린 부처님의 선물(http://cafe.naver.com/happybupdang/2729) 가운데 '과거는 작은 것입니다. 현재는 큰 것입니다. 과거는 작은 것이고 현재는 큰 것입니다.'라는 업장소멸(業障消滅)의 원리가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에 의하면 업(業)과 보(報)는 이런 형태의 인과(因果)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바르게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업에 대해서도 한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알아보겠습니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가 업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몸과 말과 마음은 무엇을 원인으로 행위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창조주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나'를 창조하였기에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위하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원인이나 조건 없이 행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또한 아니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법우님들은 지금 하느님이 시켜서 이 법회자리에 오셨습니까? 아니면 왜 인지 모르게 그저 와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에 의하면, 법우님들의 마음이 어떤 형태로든 생각을 일으켜서 부처님 가르침이 있는 이 자리로 몸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법당에 가서 빵 한 쪽 받는 재미가 마음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한 주일 동안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부처님 말씀이 필요하다는 바람이 마음을 움직였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 평생 행복하리라는 믿음이 있어 법우님의 마음이 몸을 움직여 이 자리에 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 즉 업은 마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업은 마음을 원인으로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원인인 마음이 욕심-성냄-어리석음에 오염되면 오염된 행위 즉 악한 행위를 짓고, 그에 따라 괴로운 과보가 초래됩니다. 마음을 오염시키는 욕심-성냄-어리석음이 옅어질수록 행위는 선(善)해집니다. 착한 행위를 짓는 만큼 그에 따라 행복한 과보를 누리게 됩니다. 마음이 욕심-성냄-어리석음의 오염에서 벗어나면 청정한 행위를 짓고, 이 행위는 과보를 초래하지 않습니다. 해탈-열반의 삶[완전한 행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법회 때마다 법문을 경청하기 위해 입정(入定)을 합니다. 정(定) 즉 삼매(三昧-samādhi)에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삼매는 무엇입니까?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지혜[혜(慧)-paññā]를 일으키는 수행입니다. 그러면 일어난 지혜[혜(慧)-paññā]가 욕심-성냄-어리석음을 제거하는 일을 하고, 그때 마음은 청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정해지는 만큼 착한 업을 지어 행복해지는 것이고, 그 청정이 완성되면 해탈-열반의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정(入定)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5분만 입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법회 때 입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더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죽비 소리, 딱! 딱!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