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성클릭

천행 - 아들은 울돌목의 조류를 생각했습니다. 반면 장군은 백성의 용기를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연의 힘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도 천운입니다. 그 힘이 없었다면 명량해전의 역사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백성의 합력이 없었다면 이 또한 이루어 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뒤로 물러서던 군사들이 다시 전열에 가담한 일이나, 뭍에 있던 백성이 조그만 목선을 타고 몰려와 꼼짝 못하던 장군의 배를 끌어당긴 일은 자연의 힘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모두가 합하여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보는 시각은 다르지요. 어느 쪽에 마음을 두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어느 한 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에 임하는 군사라면 아마도 대부분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비록 한층 유리한 입장에 놓인 쪽에 두려움이 한결 적겠지만 그래도 적과 마주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문제는 드러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숨어있는 두려움을 어떻게 도출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리한 입장의 아군에게서는 드러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숙제가 있습니다. 장군의 말대로 그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몇 배 이상의 용기로 전환됩니다. 또 한편 한층 유리한 입장의 적군에게서는 감추어진 두려움을 꺼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승산이 있습니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아무리 실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자연적 환경뿐만 아니라 우선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지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나 극한상황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병법에서 ‘배수진’은 극한상황을 만들어내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한 마디로 ‘죽기 살기’로 대드는 것이지요. 살 수 있는 길이 오직 하나입니다. 물러서면 길이 없습니다. 장군은 말합니다. ‘생즉필사, 사즉필생’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살 것이다. 스스로 마음의 극한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 대조해도 무리한 전쟁입니다. 한 마디로 승패가 너무나 뻔한 싸움이지요. 그러나 장군은 승패를 떠나 나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잃는다면 조선을 잃는 것이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바다를 사수해야 한다는 일념뿐입니다. 숫자는 생각 밖입니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적진의 동향을 조사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치를 바다를 순시합니다. 물결의 흐름에 대하여 주민의 지식을 듣고 생각합니다. 이쪽은 아무리 뒤져도 적습니다. 그러나 적군은 수십 배나 됩니다. 어떻게 어디서 막는 것이 최선일까 연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무리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병사들 가운데 탈영병이 생깁니다. 그러잖아도 한 사람이 아쉬운데 자리를 떠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요. 뻔히 죽을 싸움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군대는 조직이고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입니다. 개인의 생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체가 지켜야 할 가치와 명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고 안타깝지요. 더구나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데. 그러나 전체의 생각과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할 말은 다 했느냐?’ 그 즉시 처단합니다. 따뜻함과 더불어 단호함도 있어야 군대를 지휘할 수 있습니다.   오른팔이 되어주어야 할 장수까지 자리를 몰래 떠납니다. 그냥 떠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아끼던 단 하나 거북선을 불태우고 수장까지 살해하려 했습니다. 단합해도 어려울 판에 방해까지 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낙심천만이지요. 그래도 피할 수 없습니다. 떠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잃는다면 백성이 설 곳이 없게 됩니다. 이곳마저 왜군에게 뺏긴다면 나라 전체는 왜적의 손아귀에 넘어가 이전보다 더 참혹하게 짓밟힐 것입니다.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하는 군사들이 따라 와주는 일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군사들이 죽음의 문턱에 기꺼이 나설 수 있을까?   적군이 몰려옵니다. 바다를 까맣게 뒤덮습니다. 보기만 해도 떨립니다. 겨우 12척, 저들은 330척입니다. 오죽하면 왕까지 포기하고 육지 군사에 합류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장군의 생각대로 이 바다를 잃으면 육지를 통하지 않고 바로 한양으로 전진하여 금방 왕실이 쑥대밭으로 변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끝나는 것이지요. 앞뒤 가랄 것 없이 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갑니다. 위세 등등하게 몰려오는 적군 앞으로.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이제까지 참 많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재현되었습니다. 누차 반복된 이야기, 또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습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발전된 촬영기법, 사용된 여러 가지 도구들, 무엇보다 실제 같은 1시간가량의 해상전은 그 어느 때의 것보다 월등합니다. 많지 않은 대사 속에서 장군의 깊은 생각과 마음을 다시 읽어봅니다. 그리고 백성의 마음이 어떻게 하나로 합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화 ‘명량’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