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길라잡이>
30년 전 이스라엘 키부츠 공동체에 두 달간 머물렀을 때,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문을 가장 먼저 여는 마스터 일을 맡았었다. 매일 아침 일찍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전날 마지막까지 그곳을 이용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른 봉사자들이 하나둘씩 도착해서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허기에 찬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일은 식당에 나오지 말라며 모든 외국인 봉사자에게 다음날 먹을 음식을 내주면서 식당 이용이 불가하다는 공지를 했다. 주방에서 유다인들끼리 뭔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들끼리만 파티하고, 외국인 봉사자는 찬밥 신세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민낯을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것이 유다교도들만 참석하는 ‘하가다(haggadah)’예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몇천 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났던 일을 잊지 않고 가장 중요한 날로 오늘날에도 기억하고 있다. 파스카 만찬의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오늘의 나에게 ‘기억하여 행하라’고 하신 성체성사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이집트 땅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며 하나의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산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이천 년 전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과의 화해의 길을 여신 예수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같은 민족끼리 면면히 이어져 오는 옛 기억을 오늘처럼 사는 이스라엘과 같이, 나는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만찬의 기억을 오늘로 살고 있는가? 누구도 앗아갈 수 없고 끼어들 수 없는 친밀한 사랑으로 그때의 기억을 오늘 재현하고 있는가?
빵과 포도주로 당신이 몸과 피를 내어 주시는 예수님을 영원히 기억할 사도들은 먼지의 세상으로 나아가 죽음과 부활을 전할 것이다. 복음 전파에 힘쓴 열두 사도들의 아름다운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유혹과 인간의 나약함으로 주저하는 나의 발도 씻어 주시길 청한다. 끊임없이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더 깊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께 더러워진 발을 내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