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뜻이 내 삶 속에 완결되기까지 고독하고 쓸쓸한 길을 계속 걸어가야겠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셨습니다.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호형호제하던 사람들, 사랑했던 사람들, 고마운 인연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입니다.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고향 사람들에게도 꼭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고을에서보다도 훨씬 강도높게 복음을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저 사람은 우리집 건너편에서 살았던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가 아닌가? 우리 어머니와 별반 다를바가 없는 평범한 여인이었는데...”하면서 도무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냉랭하면서도 완고한 고향 사람들의 태도 앞에 예수님께서도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도 끝끝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수용하지 않는 고향 사람들의 소극적인 자세 앞에 예수님께서는 태도를 바꾸십니다. 적극적인 강공 모드로 돌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복음 4장 24~27절)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자부심이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주눅들지 않으시고 거침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대기근이 들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잘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면하시고, 한 이방인에게 먼저 극진한 사랑을 베푸셨음을, 수많은 이스라엘의 나병환자들은 제쳐두고 이방인 나병환자를 치유해주셨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은 유다인들에게 크나큰 수모요 상처였습니다. 그들은 화가 잔뜩 나서 길길이 뛰고 이를 갈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작당한 그들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살해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르르 예수님을 향해 몰려든 그들은 일단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몰았습니다. 소나 돼지 몰듯이 말입니다. 깎아지르는 절벽까지 예수님을 끌고 간 그들은 거기에서 예수님을 떨어트려 추락사시키려고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지혜로움과 민첩함이 크게 돋보입니다. 하실 말씀 시원하게 다 하신 예수님, 유다인들의 속을 긁어놓을데로 다 긁어놓은 예수님께서는,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시고, 재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나신 후 홀연히 당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셨지만 동족으로부터 환영은 고사하고, 협박당하고 벼랑 끝까지 내몰리고, 죽음의 위협을 받으셨습니다. 정말이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역 중에도 이런 반역을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쿨하십니다.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유유히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이 당신 삶 속에 완결되기까지 메시아로서의 고독하고 쓸쓸한 길을 계속 걸어가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