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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게시판 스크랩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란?
CRYSTAL 추천 0 조회 10 10.04.14 09:3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예수를 따르려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그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새번역)


 

예수를 믿는다는것은 어떤것일가요?




요즘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질문입니다. 어쩌면 믿는다는 기독교인이라면 그의 신분과 직분이 무엇이든지 날마다 이 질문에 스스로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의 할 일이 따로 있고 장로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집사가 해야 할 일과 전도사나 청년회장이나 여전도 회장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는것도 아닙니다.



목사의 기도와 장로의 기도와 집사의 기도와 성도의 기도가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직분과 상관 없이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함을 얻은 자들이라면 모두가 형제요 자매들이지 직분과 신분을 구별하고 차별화 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못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조직화 되고 제도화된 교단 교파적인 집단이 복음의 진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슷할 순 있어도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복음의 진리로 향하며 다가가는 것에 집중할 때 비로소 참다운 교회의 본질이 회복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고민이 없이 그저 앞서간 전통과 문화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오늘날처럼 괴물과 같고 기업화 된 거대한 매가처치로서 결코 예수의 마음과 다른 길로 달려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지경이 되도록 부추긴 것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홀로 자기 길로 달려가면서 세상의 영광을 독차지 하려고 몸부림 치는 저들은 과연 그 속에 진정 복음의 정신이 들어 있기나 한것일까요?



지금 온통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라고 하는 단체들의 발광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어떻게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신 예수가 보이는지요? 예수가 걸어간 그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은 길, 십자가로 향하는 길을 찾는 교회가 어디있습니까?



말씀이 철저히 모욕당하고 주님이 가르치신 주의 기도가 이토록 무시당하는 시대입니다. 날마다 모여서 고백하는 주의 기도가 전혀 허공을 치는 공허하고 울리는 괭과리처럼 시끄럽기만한 교회들...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도 결국은 세상의 영광을 더 얻기 위하여 온갖 추태를 행하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회칠한 무덤이된 기독교...그리고 십자가를 더욱 크고 화려하고 높이 걸어 올리기만한 죽은 교회당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이 말씀을 예수는 하셨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당시 현장에 있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광의적으로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이며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자 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 기독교 사회의 중심인 교회 지도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하게된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 이후에 예수를 붙잡고 강력하게 십자가에 죽어서는 안된다고 항변하던 제자 베드로를 강하게 책망하신 다음에 였습니다.



예수의 아버지의 뜻을 향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최고의 가치였으며 목표였으며 목적이었습니다.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영광의 주께서 영원하신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예정하신 그 뜻을 이루시려고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제 때가 가까와 지자 예수는 제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느냐? 그러면 나를 믿고 따르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하십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을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이런정도입니다. 예언자(선지자)가운데 한사람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유명하다는 4대 성인중에 한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선지자 예수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한국 기독교안에서조차 특히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예수를 향한 인식의 정도가 어쩌면 이정도일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이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기독교계를 보면 그대로 열매로 들어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다면 이럴수는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비리목사들과 추잡한 사건에 거론되는 목사와 교회들, 그리고 교회가 서로 싸우다가 분열되고 주일 예배라고 하면서 온통 수라장이되고 법정 소송과 분쟁이 터져 나오면서도 모두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배한답시고도 전혀 부끄러운줄 모르는 한심한 교계와 총회의 모습들이 어떻게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자들의 모습입니까?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냐? 하는 예수의 질문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고백한 것이 베드로의 의지적이며 자의적인 고백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고백이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베드로의 믿음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토록 오래 예수를 곁에서 보고 그의 가르침과 능력을 보았어도 여전히 믿음이 없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어리석고 무지한 제자들을 당신의 증인들로 세우시기 위하여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고백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탄의 일?



베드로의 고백은 자기가 뭔 말을 했는지조차 모릅니다. 거기 서 있었던 제자들 역시 아무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백했던 베드로가 바로 다음 순간에 헛소리를 해서 그의 불의함이 탄로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는 드디어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때가 된것입니다. 여기서 신앙과 믿음의 지각변동이 나타납니다. 많은 경우 이 과정에서 제대로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에 엉뚱한 자기 길로 떠나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상 숭배와 배도의 길로 변질된 것이 여기서 부터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으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홍해를 건너는 특혜를 받았지만 결국 광야를 통과하지 못한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영광의 하나님을 대면하고 율법을 받아서 계약을 맺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광야의 여정을 거부하였기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마음에 품었기에, 그들의 불의함이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으로 무리바에서 들어난것입니다.


 

신앙의 기초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대 각성의 지점입니다.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마16:21)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때를 늦출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길은 바로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아 죽임 당하시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그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정녕 이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입니까? 아버지여, 이 잔을 마셔야만 하는 것입니까?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호소하셨던 인간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권능을 포기하셨던 예수...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을 앞에두고서 나를 위하여 기도할것을 당부하셨건만, 육신의 연약함으로 졸음을 이기지못하여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한심한 제자들을 깨우시면서...이제 가자, 함께 가자 격려하시던 예수...

십자가를 피하여 도망칠 제자들을 알면서도 일어나 나와 함께 가자 손잡아 주셨던 예수.....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한 제자들을 향하여서 장차 되어질 일을 말씀하시는 예수의 심정은...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셨던 예수(요17장)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행이며 만사 형통이라고 속이는 자들 때문에 예수 이름이 멸시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예수를 잘 믿는다는 한국 기독교안에서 말입니다. 진정 예수를 믿는다는것이 무엇일까요?



무조건 예수를 주여 주여 부르기만하고 정성 들이고 공을 쌓아서 기도하고 교회 충성만 하면 좋은 믿음이라고 가르치는 거짓말장이들이 설교를 하고 있으니 오죽하면 사회에서는 "너희들은 좋겠구나! 실컷 죄를 짓고도 교회가서 회개하고 십일조 내고 봉사하면 목사의 축도기도와 함께 죄사함 받았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좋겠느냐" 하는 비아냥소리들...들어도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적반하장격으로 "저 예수 안믿는 것들" 하고 무식한 소릴 하고 있는 어리석은 교인들과 목사들을 보면서...




당시 제자들의 수준이 오늘날 이런 우리들의 모습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예수 최고로 잘 믿고 열심과 충성이 최고라서 예수께서 칭찬하실 만한 믿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을 것을 미리 밝히자 베드로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마16:22)



베드로가 예수를 생각해서 간곡하게 말리는것으로 보이지만 흠정역을 보면 정 반대입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꾸짖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거늘(흠정역)



눈을 부릅뜨고서 예수를 붙잡아서 흔들어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정신 나갔느냐는 말입니다. 미쳤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동안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모든것을 버리고 온것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는 당신을 보자고 온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의 능력을 보고서 제자들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과 천하를 호령하는 예수 옆에서 그동안의 고생 끝 행복 시작을 그렸던 것입니다. 그동안 당했던 고생이 끝이나고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서 세상 영광을 마음껏 누리겠다는 야망으로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죽어야 한다는 예수의 말이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이꼴을 보자고 예수를 따라온것이 아니라는 제자들의 항변을 베드로가 대표해서 따지고 오히려 예수를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슨 정신 나간 생각을 하고 잇는것이냐, 예수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말 잘 들으라는 베드로입니다.



우리가 결코 당신이 죽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예수 잘 믿는자들이 혹시 베드로의 마음은 아닙니까? 목사가 되어서 주의 길을 가겠다는 자들의 마음에 베드로와 같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러니 십자가의 복음이 외면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따르겠다는 말은 하지만 정작 자기 야망을 위하여 자기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와 반대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 좋다는 것을 베드로와 같이 겉으로 보기에 열심이며 충성인것으로 오해하는 것 때문에 교회가 이모양이 된것이며 신자들의 믿음 역시 껍데기 뿐인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베드로를 향하여서 선언합니다. 이 지점이 바로 진정한 믿음의 길로 가느냐 아니면 발람의 길로 가느냐의 기로입니다. 믿음의 대 지각변동이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새번역)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고 하시더라(한킹)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는구나."(현대어 성경)


 

그러나 예수님은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고 꾸짖었다. `사탄아, 썩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현대인의 성경)


 

그분께서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흠정역)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는 다시 확고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새번역)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한킹)


 

그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흠정역)


 


오늘 이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기에 목사 따로 장로 따로 집사 따로가 어디있습니까? 큰 교회 작은 교회가 무슨 상관입니까?



문제는 날마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느냐 그말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것, 예수를 믿는다는것이 곧 나를 부인하는 자리에서 부터입니다. 나에게는 전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이 전혀 없구나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것이라고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붙들고 죽지말라고 소리치는 것뿐입니다. 나를 성공하게 해주고 부하게해주고 병 고쳐주고 사업 성공하게 해주어야할 예수를 원하는 것이지 그렇게 십자가에 죽을 예수를 원하는것이 아니라는 솔직한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고백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이렇듯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것은 아니냐 그말입니다.



믿는다고 고백하였던 베드로를 향하여서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십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일을 좋아하는 것이 사탄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겉으로아무리 화려하고 거룩하고 경건의 모양으로 포장을 했지만 그것이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사탄의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칭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혹시 십자가의 원수의 일은 아니며 사탄의 일은 아닌가 분별해서 그 자리에 그들의 모임에 동참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모임에 동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창49장 야곱의 유언 참고.5-7)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이 말씀을 날마다 마음과 영혼에 품고 자기를 돌아보는것이 곧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기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는 자들이 어떻게 세상과 짝하며 세상의 영광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2009/12/19.ⓒ 사랑그리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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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0.04.14 09:40

    첫댓글 필터링하면서 읽어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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