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부철학은, 오직 철학자이기만한, 그런 철학자들의 연구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 영신지도자, 설교가, 성서해석자, 신학자, - 그리스도교의 선교를 목적. 사실의 성질상 실제로 철학에 속하고, 철학적인 방법으로 파악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를 다룸.
1. 신앙과 지식
1) 고대의 견해 - 신앙과 지식은 논리적인 문제라기보다 가치의 문제. -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체험은, 이 신앙의 지식보다 훨씬 높게 평가, 신앙이 지식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 신의 로고스가 철학적인 로고스를 포함. - 유스티누스, 그리스도교신자들은 능히, 아니 본래적인 뜻으로, 철학자라고 불릴 수 있다. - 그리스도교신자들이야말로, 이교도의 철학자들이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했던, 지혜를 가지고 있다. - 우리들은 신앙과 지식 사이에, 논리적-인식론적으로는 아무런 원칙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오직 정도에 따라서는, 마치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단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 아우구스티누스, 지식과 신앙중, 신앙이 앞서는 것이다. - 왜냐하면, 신앙은 우리들이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언젠가는 인식하도록, 우리들의 마음이 준비하게끔 해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2) 근대의 견해 - 칸트, "신앙에다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나는 지식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 내적인 인간은 아직 지식의 합리적인 면과 신앙의 비합리적인 면으로 나눠져 있지를 않다. - 아우구스티누스, "동의할 때에 인식한다", 신앙이 곧 사고다.
2. 신(神)에 대한 인식 - 바오로, "로마서" 1장 19절. 인간은 신앙에 의해서만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 "본성적"으로도 신을 인식할 수 있따. - 스토아철학도, 보편적인 기본개념들을 주장함으로써, 철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용어들을 제공, - 유스티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도 이런 용어를 사용. - 카파도키아 사람들도 "공통적인 감각"을 알고 있었다. - 세계의 질서와 아름다움에 마주치게 되면, 이 조화의 원인으로서 신적인 세계창조자가 있다는 관념을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
3. 신의 본질 - 처음부터 강조되는 것은, 신이 무엇이라고 말하기보다, 무엇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부정신학), 우리는 신을 특징지우려 한다. - 신의 초월성을 보되, 특별히 플라톤주의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 - 클레멘스, 신을 일자라고 하나, 동시에 일자와 하나인 것을 넘어선 저편에 있다고 단언, - 테르툴리아누스, 신을 물질적인 것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 신은 정신이기는 하나, 모든 샐지는 결국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닐까 하고 묻는다. - 마니교들도 신을 물질적인 어떤 것, 즉 빛을 발산하는 물체라고 본다. 아루구스티누스도 청년시대 품고 있던 생각. - 오리게네스, 영원한 신은 물체의 세계처럼 변화하지를 않고, 신은 정신이요 연장이 없는 것, 공간에 얽매이지 않으며, 나눠질 수가 없다. - 카파도키아 사람들, 신은 물질적이 아니며 초월해 있다. - 신의 유일성, 영원성, 절대성, 헤아릴 수 없음, 전능.
4. 창조 -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특별한 문제는 창조의 개념. - 어떻게 창조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
1) 이데아 - 클레멘스,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창조의 밑바탕에는 모범이 되는 이데아들이 있고, 창조는 에지의 세계가 현실화 된 것. - 플라톤과는 달리 창조라고 하는 개념을 끌어들인다.
2) 시간 - 창조는 신의 의지의 작용을 바탕으로 해서, 시간 안에서 행해진다. - 시간이라는 계기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불러일으킴. - 클레멘스, 영원한 창조를 인정하지만, 이것은 오직 의지의 작용에 관해서만 그렇고, 의지가 실현되는 것은 시간 안에서. - 오리게네스, 의지의 작용뿐만 아니라, 세계 그 자체도 영원하다. - 영원성은 항상 거듭해서 다른 세계들이 영원히 계속해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한다는 뜻에서 영원하다. - 이는 분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 바실리우스, 우리들의 세계와 더불어 시간이 생겼다. 창조의 작용 자체는 시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비감각적인 것의 세계. - 다른 편으로는 우리들의 시간이 무시간성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이해되기도한다. - 왜냐하면 시간을 다시 시간 안에서 시작하게 하는 것은 무한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
3) 무 - 무로부터 창조에 관해서는 아무런 혼란도 없다. - 그리스도교 사고 전체에 대해서, 독특하고 영속적인 철학이론이 나옴.
4) 동시적인 창조 - 성서에는 엿새에 걸쳤다고 기록되어 있음에도, 신은 세계를 그 풍부한 형상 그대로 전체적인 영역에 걸쳐 한꺼번에 만들었다고 주장. - 형상은 영원하다고 하는 플라톤주의의 이론과 더불어 생겨난 관념론적인 형태학에 따라 저절로 생겨난 것. - 형태학: 생성과 발전은 절대로 본래적인 새로운 것의 생성이 아니라, 이미 미리부터 있던 형상들이 현실화되는 것.
5. 로고스 - 창로론과 로고스사상이 서로 연관, - 이 시대는 로고스라는 말이 일종의 유행어. 이교도의 철학에서도 그랬고, 필론은 이런 경향을 한층 더 강화. - 복음서를 쓴 요한이 이 개념(로고스)을 가지고써, 신의 아들에 관한 기쁜 소식을 헬레니즘의 구미에 맞게 한 이래로, 이 사상은 공인.
1) 로고스와 신 - 로고스는, 그것을 가지고써 신이 자기 자신에 관해서 생각하는 관념들의 총체다. - 본래적인 플라톤철학에 있어서는 자체 안에 근거를 두는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들의 세계인 이데아, - 필론에 있어서는 이미 인격적인 신에 관한 사상으로 된다. - 이데아들은 신의 본성 전체를 반영, 신의 본성 안에 이데아들의 근원이 있다. - 로고스는 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영원한 지혜, 신이 자기 자신을 표명하는 말씀, 신의 아들.
2) 로고스와 세계 - 로고스는 피조물들의 원형, 피조물의 질서, 구성법칙. - 세계에서 정신과 법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모두 로고스로부터 생긴 것. - 세계는 신의 빛이 반사된 것. - 로고스는 세계와 신 사이의 틈바구니를 이어주며, 신플라톤주의에 이어서의 중간적인 존재.
3) 로고스와 인간 - 로고스는 인간에게 있어서도 그 정신적 이데아적인 원형, - 인간으로 하여금 "단순한 세속적인 것"과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서, 신과 연결지어주는 윤리적인 당위의 척도. - 후세의 학설들, 인간 안에 잇는 신적인 것, 영혼이 불꽃 및 신적인 척도로서의 양심 등등에 관학 학설등은 사실에 있어서 여기에 뿌리 박고 있음.
4) 로고스와 생성 - 스토아학도들이 말한 바와 같이 로고스의 내용은, 씨앗으로서의 소질. - 유스티누스, 그리스도교의 많은 진리들은 이미 이교도의 철학에 있었다. - 이 씨앗들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완전히 성장(발전), 근본적으로 씨앗들은 미리부터 언제나 있던 것. 이교도 철학자도 그리스도교 신자. - 오르게네스, "그것(로고스)은 자체안에 모든 피조물들의 시초와 형태와 질서를 내포하고 있다" 6. 인간 - 교부철학은 인간에 대해서 특별한 주의.
1) 왕자적인 존재 - 네메시우스, "인간본성론" - 인간은 피조물들의 왕이다. 존재가 생명이 없는 물체, 식물, 동물, 인간 등의 층계가 지어져 있다고 생각. - 인간은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천사만이 인간보다 더 높은 것. - 인간은 로고스에 참여함으로써 신의 정신을 닮아있기 때문에, 신의 모습 그대로 창조되었다.
2) 중간적인 존재 -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바탕으로 해서 신의 본질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가 있다. - 육체에서 풀려나, 온전히 정신으로서 살게 될 때 더욱 신의 본질을 잘 이해. -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중간자. 선과 악의 중간. - 감각적-지상의 세계와 초감각적-정신적인 세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3) 자유 -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우며,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가지고 있고, 어떤 권력을 위해서도 봉사하지 않는다. - 자유가 악을 행하는 데 잘못 쓰여질 수 있다. - 신은 스스로 존재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이며 변할 수 없는 것인 것과는 반대로, - 창조된 정신들은 시작이 있고, 따라서 변할 수 있다. - 피조물의 우연성(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에 뿌리박고 있는 이런 변할 수 있는 성질 속에서, - 우리들은 악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보게 된다. - 인간이 죽는 바의 것이며, 인간이 성(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죄의 결과.
7. 영혼
1) 본질 - 교부철학 전체에 있어서는, 인간이란 첫째로 영혼이다. - 영혼이란 무엇인가? - 테르툴리아누스, 특별히 섬세한 성질을 가진 것이라고는 해도 물체 이외의 것은 아니다.
a. 물체냐 정신이냐? - 스토아학파의 영향도 있었고, 물체적인 성질을 지닌 감각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따위의 생각이 매우 중요. - 오리게네스, 영혼이 정신이며, 더욱이 이 영혼이 신을 닮아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밝힘. -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영혼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을 증명, - 인간이 품고 있는 뜻과 계획을 보고서 해낸 증명. - 뜻과 계획은 정신적인 작용(활동)이며, 따라서 이 작용이 깃들어 있는 곳, 즉 누우스도 비물질적이어야 한다는 것. -영혼은 단일성, 개별성, 실체성 등은 그리스철학에서보다 훨씬 더 강조 b. 실체냐 형상이냐? -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영혼은 창조되었고, 살아 움직이고, 이성을 지닌 실체다. - 그러나 이 실체는, 이런 능력을 지닌 본성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한, 받아들일 능력이 있는 유기체에게 생명력과 지각력을 스스로 부여한다." - 네메시우스, 한 가지의 이성적인 영혼의 잠재능력에 지나지 않는 영혼은 식물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을 분리하는 것에 반대, - 플라톤과 아리스토테렐스가 주장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식물적이고 감각적인 영혼 자체가 생명의 원리가 아니라고 할 뿐만 아니라, - 영혼을 엔텔레케이아(완전현실태)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도 반대. - 영혼이 엔텔레케이아라면, 영혼은 육체에 붙어 있는 한 가지의 성질이나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되며,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교사상에 있어서는, 영혼은 단순한 형상 이상의 것. - 영혼이 다시 육체의 형상이라고 불리어질 때, -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 있어서보다 훨씬 더 실체적인 것. - 한 층 더 플라톤의 에이도스의 방향에서 이해, 에이도슨는 이미 그 자체로서 실체.
c. 육체와 영혼 - 영혼을 실체라고 봄으로써,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처리하는 일은 한층 더 어려워진다. - 어떻게 영혼과 육체의 통일을 보장? - 플라톤주의에 접근하면서, 이원론을 피하려 한다. - 오리게네스, 영혼이 죄를 지어, 벌로써 육체에 처박혀 있다는 견해. - 이런 비관주의는 육체적인 것도 신이 창조했다는 가르침에 전혀 맞지 않다. - 메네시우스, 영혼은 육체를 마치 외투(겉옷)처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렇게 해도, 여전히 이원론은 남게 된다.
2) 기원 - 기원에 관한 문제는 어려운 문제 - 영혼이 부모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부모의 생명이 옮겨 전해진 것이라는 출생설, 전이설. (테르툴리아누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 영혼이 신에 의해 독자적으로 창조, 창조설(클레멘스, 락탄씨우스, 할라리우스, 대부분의 교부들) - 영혼은 미리부터 있었다. 선재설(오리게네스, 네메시우스) 3) 불멸 -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분명. - 꼭 개별적인 영혼의 불멸, 사람들이 이미 단순한 보편적이고 신적인 누우스만으로써는 만족하지 못하는 한, - 고대철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는 여기서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8. 윤리
1) 선 - 플라톤주의와 스토아사상이 당장 그리스도교윤리의 앞서 간 단계로 도니다. - 플라톤은 신을 닮으라고 요구. 성서에도 똑 같이 기록.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 - 윤리학을 철학적으로 기초지을 때에 플라톤으로 돌아간다. - "인간의 길은 로고스 안에 미리 제시되어 있다." 이 로고스는 물론 신의 로고스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클레멘스, 스토아학파가 주장하는 "올바른 이성" 이라는 도덕의 기준도 신의 로고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 "이 신의 로고스가 우리들이 일치해야만 하는 자연의 질서이다" -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인간의 삶의 과제가 모든 선의 원형, 즉 신에 참여하는데 있다.
2) 양심 - 락탄씨우스는 자연이나 인간의 잇어을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는, 아직 객관적인 도덕규칙을 일률적으로 확립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즉 우리들에게 가치감각과 양심을 알려주는 본성이 있을 때에만, 사람들은 본성에 알맞는 생활 속에서 윤리적인 선을 꿰뚫어볼 수 있다. - 에픽테토스, 시네이데시스(Syneidesis, 양심)이란느 개념을 알고 있었고, 필론도 알고 있었다. - 키케로가 콘스키넹씨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 바오로도 스토아학파의 통속철학에서 이 개념을 이어 받았다. - 교부들의 이런 움직임의 영향을 받아, 양심은 도덕에서 지배적인 위치. - 양심은 객관적인 자연법칙을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 동시에 신의 의향이기도 하다. 출처 : 벤아담 성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