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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명산행보 스크랩 덕유산 종주기
도레미 추천 0 조회 234 09.09.10 15:40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축구선수들이 경기에 지고 나면

정신력이 부족했다는 비난을 받는것에 대해

나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다

전술이나 개개인의 기량이 부족한 탓이지

무슨 정신력 타령이냐고 생각했었는데

덕유산 종주를 하며 그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얼마전 지리산 종주를 성공리(?)에 마친 우리(나와 남편 파솔라)는 어딘들 못가랴  생각했었다

지난 번 광속단 정기총회때 왕따님이 분명 덕유산 종주가 지리산 종주보다 더 힘들다고

경고해주셨는데  우리는 어쩐지 긴장이 안돼었다

정신력의 부재는 첫 걸음부터 고난을 예고했다

 

 

7시20분,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쯤에 있는 장계의 육십령에서 출발한다

 

선두에 이번 산행대장이신 뫼가람님이 서고

남편,  나, 만복대님, 강대장님,두리님, 프록켄타님이 내 뒤에 서신다

 

육십령(780)에서 할미봉(1026)까지는

300m정도 치고 올라가야 한다

 

6킬로에 육박하는 비박짐이 어깨를 누르고

천근만근인 다리는 더디기만하다

입이 바짝 마른다

 

지리산의 대가들이

내 뒤로 길게 늘어져서

내 발걸음 떼기만 기다리니 마음까지 타들어간다

 

만복대님은 속보이신데 기어가는 내 뒤에서 속터질것 같아

먼저 가라고 해도 괜찮다고 절대 앞서시지않고 기다리신다

 

'먼저 가 주시기는게 도와주는건데...'

 

서봉을 앞두고  훨훨 나르시던 뫼가람님이

먼저들 가라며 뒤로 빠지신다

배낭짐이 너무 무거워서 빨리 지치신거 같다

 

지난 주에 미리 와서 술이랑 물도 묻어두고

비박지도 살펴두고 저녁거리랑 아침거리까지

챙기느라 뫼가람님 입술이 부러텄다

 

12시에 이르러서야

절대로 나올것 같지 않던 서봉(1492m)이 나타난다

 

땡볕인 서봉에서 점심을 먹는데

나는 밥맛도 없다

김밥 반줄 먹고 한쪽에 몸을 길게 눕힌다

 

늦게 몸이 풀리는 남편이

할미봉까지 위태위태하더니

제 페이스를 찾아가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남덕유산(1507)을 지나 삿갓봉을 향해 가는데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삿갓봉은

죽을 힘을 다해 재를 하나 넘었는데도

고개를 들어 보면 저만치 멀어져있다

 

'저게 누구 약올리나...'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지원팀을 만나기로했으니

오빠가 와있을 생각으로 힘을 낸다

대피소 근처에 이르니 오빠 목소리가 들린다

 

"오빠!!!"

 

배낭을 집어 던지고 털썩 주저 앉는다

"오빠! 나, 콜라!"

 

산에 다니면서 눈치가 무척 빨라진 남편이

얼른 가서 콜라를 사와 모두에게 나눠준다

 

오늘 함께 산행못하고 지원팀으로 오게 된 오빠는

몇 가지 당부를 했다

 

"산에서 물은 생명이다

물은 자기 것만 마셔라

지치기 전에 먹어둬라"

 

우리는 2L의 물을 이미 소진하고

두리님 물도 마시고 강대장님이 서봉에서 물도 받아 주셨지만

힘겨운 우리는 갈증이 났다

 

"우리가 장발장님 안계신다고

도레미님 엄청 구박한거 같네요"

 

우리가 포기할까봐

노심초사하며 10분마다 쉬면서 조심조심왔는데

강대장님이 좀 서운하신가보다

 

'에구 죄송!'

 

오빠가 뒤에서

보폭을 줄여라, 옆으로 내려가라

찬찬히 챙겨준다

 

무룡산(1491.9)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무룡산에 오르는 목책아래로

보라색 쑥부쟁이가 함초롬하다

바람도 살갑다

 

비박지인 무룡산에

육십령을 출발한지 10시간만에 도착!

탁트인 전망에 정신이 번쩍난다

만세다!

 

뫼가람님이 정성스레 저녁밥을 지으시는 동안

오빠가 쳐준 탠트안에 비비색과 침낭을 펴고

아예 남편 자리끼 물까지 챙겨둔다

 

옷도 갈아입고

물수건으로 세수(?)도 하고 나니

저녁먹을 힘이 난다

 

내가 싸온 샌드위치를보고

아멜리아님이 좋아한다

 

"산에서 샌드위치보니까 반갑네요"

 

양용운이 먹고 우승했다던 식단대로

고기를 잔뜩 넣은 호밀빵 샌드위치를 아침에 먹고 또 싸온 것이다

원래 게으른 사람들 운동은 안하고 보양식만 먹는법!(효과 빵점!)

 

지원팀으로 온 정재님이

골뱅이 무침을 맛갈스럽게 요리해낸다

남편은 얼마전 북알프스에 다녀온 산행기를 보고

정재님에게 홀딱 반했다

 

"바람도 엄청 불었을텐데 어떻게 다니셨어요?

숨은 안막히셨나요? 27킬로도 넘는 배낭은 안힘드셨나요?"

 

"꿈도 꾸지마! 거긴 절대로 못따라가!"

 

나는 남편이 거기 가자고 할까봐

미리 못을 박는다

 

무룡산은 기묘하다

지는 해도 볼 수 있고

뜨는 달도 볼 수 있다

 

의자만 조금 바꿔앉으면 다 볼 수 있는

어린왕자의 별같다

 

밤이 깊어가면서

서서히 달빛이 힘을 발하면서

산맥과 골짜기가 수묵화로 변한다

 

골짜기 깊은 곳엔

보석처럼 마을 불빛이 빛난다

 

유학시절

알프스 산에 있는 Alpes douez라는 곳에

스키타러 간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산마루를 굽이굽이 돌때마다

작은 불빛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던 마을 모습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은 훌쩍 더 높이 떠올라 우아한 빛으로

아래를 굽어본다

 

'Es war als hatt'der himmel(아름다운 저 하늘)

die erde still gekusst(대지를 입맞추듯)...'

 

슈만의 Mondnacht(달밤)이

마음으로 흐른다

 

내 마음의 노랫가락이 평안이 되어

마을 곳곳에 스며들기 바라며

나는 속으로 속으로 노래한다...

 

잔것 같기도 하고

안잔것 같기도 한 밤을 보내고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잠을 깬다

 

"해 올라온다!"

 

'일출만 얼른 보고 다시 들어오자'

침낭에서 나오기 싫은 마음을 달래며 기어 나온다

 

나는 TV로 본 것 말고

진짜로 일츨을 본 것은 처음이다

 

여명이 부채살로 펼쳐지고

주변이 붉게 물들고

눈부신 태양이 떠오른다

 

아!!!!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그냥, 모두에게...

 

침낭에 다시 들어가래도 들어갈 마음이 다 없어진 나는

오빠의 도움으로 배낭을 꾸린다

 

어제 고생한 것을 안 오빠가

내 비비색과 침낭을 오빠 배낭에 넣자

내 배낭이 홀쭉해져 버렸다

 

"에이, 폼안나!"

 

오빠가 어이없어 웃는다

 

폼은 좀 안나도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이 가벼워져서

살것 같다

 

동엽령(1320)과 백암봉(1420)을 거쳐

중봉(1594))에 이르기까지

한시간마다 쉬었지만 어제보다 한결 수월하다

 

아멜리아님이 씻지않은 자두라고

조심스레 내놓았지만 모두들 주저없이 드신다

길거리에서 호떡 사먹으면 병걸려 죽는줄 아는 남편도

맛있게 잘 먹는다

 

지원팀이라 차량 회수때문에

오빠는 좀 늦게 출발하고

오늘은 프록켄타님이 내 뒤에서 조절을 해주신다

 

멈춰서 쉬지 말고

보폭을 줄이면서 호흡을 조절하며 쉬라고 일러 주신다

 

사실 우리가 연습을 통 안한것은 아니다

동네 산이다 보니 큰 산에 맞는 훈련이 좀 안된 것이기도 하다

 

프록켄타님이

동네 산에 오를 때 "모래주머니"를 차고

산행을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알려주신다

 

'모래주머니를 사야지'

 

동엽령에서 중봉에 오르는 길은

지리산의 촛대봉처럼 땡볕이다

 

그러나 들꽃들이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조망이 좋아서 두리번거리며 여유를 부린다

 

바람이 한번씩 간지럽히고 지나가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아! 시원하다!!"

 

중봉에 오르면

여자들에게 썬키스트를 준다는 프록켄타님 말에 힘을 낸다

 

중봉에서 아멜리아와 나는 썬키스트를 받는다

나는 단숨에 마시고

아멜리아는 자꾸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

 

'나는 언제나 철이 들래나...'

 

덕유산 대피소에서

산장지기인  만복대 친구분이

맥주 한 캔씩을 주셔서 목을 축인다

 

향적봉은 작년 겨울에 오빠랑 산행하러 왔다가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사진만 찍고 간 적이 있기때문에 눈에 익다

 

고사목은 겨울에 봐야 제 맛인데...

눈보라 속에 처연이 서있던 고사목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겨울에 꼭 와서 비박해야지'

 

드디어

향적봉(1614)에 올라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아스라히 길고 긴 산길에

점보다 작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산맥은 그대로고

우리가 지나 온 것은

한 줄기 바람만도 못한 것을 문득 깨닫는다

 

자연앞에

나는 마음을 낮춘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자기를 기록한다"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님의 말이다

 

나의 삶이

어느 것도 기록하지 못한 들 어떠랴

 

자연앞에

겸허함을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사람을 배우며

어제보다는 좀 나은 인간이 되어 죽을 수 있다면...

 

일제 징병을 피해

덕유산 은신골에 잠시 유토피아를 이루고 살았던

보광당처럼

 

광속단도

지리산에 우리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며

함께 늙어 가면 좋겠다

 

우리는

내년 5월에 있을"지리산 태극종주"에 한 구간이라도 동행하고

언젠가는 지원팀으로도 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모래주머니를 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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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9.10 15:43

    첫댓글 이거라도 올려야...^^

  • 09.09.10 21:22

    지금까지 봐오던 산행기와는 다른 감성적인 산행기가 굉장히 신선합니다. 다음 산행기는 파솔라님의 사진과 더불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09.09.11 12:46

    그렇군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 광속단 산행기 읽는 맛이 쏠쏠 합니다. 도레미님, 부디 올 겨울 눈 덮인 덕유산에서의 비박을 기대해 봅니다.

  • 09.09.11 13:29

    도래미님 파솔라 형님 잘 올라 가셨지요.동행해서 즐거웠고 다음 산행 기대 하겠습니다.

  • 작성자 09.09.12 09:07

    나 형님일세.. 동생 덕에 덕유종주 무사히 완주했지...... 항상 건강하고 눈 덮인 겨울산 비박 한번 같이 하세.... 서울오면 연락하게 한잔 술 나눔세.... 파~쏠라

  • 09.09.11 17:56

    산행기가 아니라 가을에 읽는 한권의 수상록 같습니다. 권장도서 같은.... 40대 50대 필수 권장도서 같은거 말입니다. 프록켄타님 산행기에 견줄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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