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 계 8장 7-13절
설교제목 : 나팔의 심판
왜 어린이들이 고통받는가?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개인적으로 두 번의 장례를 치르면서 시공간 속에 붙박이 되지 않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가족의 의미, 이 시대의 고통에 대해 더욱 묵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2022년 소아 청소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내 소아 청소년 중 한번이라도 정신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비율은 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치상으로 5명 중 1명 꼴이고, 기타 경미한 우울감 등을 고려한다면 젊은 세대의 정신건강이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린 영혼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기에 좋은 토양이 아님을 반증합니다. 부와 권력이 최고의 가치로 숭상되는 사회에서 개성은 모두 말살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조기교육으로 내몰리고 자연스런 본능, 자연적 성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단적 가치와 입시 위주 교육에 적응하는 가운데 더 큰 불안이 가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대에 결혼과 출산은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달 여 전에 스위스에 계신 교수님께서 모로코 여행에서 느낀 것을 함께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로코에서 느끼는 가장 큰 정서는 친절과 환대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이슬람 문화가 아니라 진정한 이슬람 종교적 전통에 입각한 에로스의 문화였습니다. 사랑으로 낯선 자까지도 환대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모로코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가 고통받는 것은 돈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따뜻한 체온과 사랑의 정신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에로스는 제도적 교육시스템이나 국가가 장려한다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와 가정 속에서 부모가 기도하며 짊어져야할 중요한 책무인 것입니다. 개인적인 부모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늘 힘겨움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신적 지지 기반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을 호소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동기의 부모와의 애착형성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 속에 자라지 못한 자는 종교적 기반 위에서 단단한 사랑과 결속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팔의 의미
첫 번째 심판인 일곱 개의 봉인이 떼어지고 금향로를 든 천사가 제단에 서서 모든 성도의 기도의 향을 더하여 그 향의 연기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뒤에 그 천가사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 불을 가득 채워서 땅에 던지며 천둥과 번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나팔을 하나씩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준비를 하였습니다. 두 번째 심판의 국면은 나팔이 등장하였습니다. 나팔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을 알릴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기상과 소등시간입니다. 때로는 엄숙한 의식을 선포하거나, 군사적 작전을 개시하거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위대한 우주적 사건을 안내하는데 사용하는 악기입니다. 여리고 성 전투에서 침묵 속에서 육 일 동안 하루에 한바퀴를 돌고 칠 일째 일곱 바퀴를 돌아서 일제히 나팔을 불 때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나팔 소리는 신성한 힘이 개시되고 있음을 일러주는 도구였습니다. 천사들이 종종 나팔을 부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기쁨과 즐거움을 드러내는 음악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나팔의 용도는 고대 세계의 전투가 신성한 본성과 관련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쓰였고, 종교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큰 행렬의 첫걸음을 표시하기 위해 나팔을 사용했고, 이 나팔들은 주문의 힘을 가졌습니다.
이런 나팔 소리는 신성한 힘이 개시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인간으로 하여금 각성시키려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의 꿈에는 큰 소리의 나팔 소리, 또는 굉음을 들으며 잠에서 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나팔 소리나 굉음은 의식에게 시간의 경점을 자각할 수 있도록 촉발시키고, 무의식적 상태에서 일어나도록 일깨우는 것입니다. 이 소리에 귀를 기울며 이후에 나타날 변화에 주목하도록 합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울리는 나팔 소리는 무엇일까요? 이 사회와 시대를 향하여 울리는 경고음은 이미 코로나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온 세상을 뒤엎은 코로나는 집단과 문명을 향하여 큰 위협을 경고하였고,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경고를 무시하며 오히려 광폭한 전쟁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있고,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군사비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혁명의 AI를 통하여 인간의 편리하고 진보된 삶을 낙관하고 있습니다. 더 빠르게 성장하려는 시도 속에서 또다시 자연세계는 더 큰 위기 속에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에 울리는 이 나팔 소리가 무엇인지 경청하고 우리를 성찰해야만 합니다.
나팔의 심판 1
첫 번째 나팔이 불자 피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 푸른 풀도 타버렸습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고,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에 사는 생명이 있는 피조물이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었습니다. 첫 번째 나팔과 두 번째 나팔의 심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형상은 불입니다. 불이 대지에 있는 나무와 풀의 삼분의 일이 불살라졌고, 불타는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떨어져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하늘로 떨어지는 우박과 불은 일종의 천재지변같은 현상과 닮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 세계가 경험하는 이상고온은 마치 불덩이가 쏟아지는 듯한 현상으로 생명체를 말라 죽게 합니다. 지난달 동남아시아에 50도를 육박하는 고온 현상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경험했고, 최근에 스페인등에서 가뭄과 이상 고온으로 물 부족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불덩이가 바다에 던져지는 형국은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 현상일 수도 있지만, 땅의 뜨거운 폐기물등이 바다로 유입되는 현상과 닮아있기도 합니다. 핵폐기물이 바다로 유입되어 바다의 생명체를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는 무서운 일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경고의 나팔, 심판의 나팔의 증후일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자연 세계에 쏟아지는 불덩이는 심리적으로 우리의 정신 속으로,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로 정신 속에 있는 생명력, 역동적 리비도,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타버리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신적 황폐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분의 일이란 수치가 7부터 12절까지 12번이나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 수치가 아니라 일부분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시사합니다. 일종의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을 수 있는 심판의 일부 국면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경고의 알람이 울리고 있습니까? 여전히 남아 있는 삼분 이의 생명력이 심판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나팔의 심판 2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큰 별이 하나가 횃불처럼 타면서 하늘에서 떨어졌고, 강들의 삼분의 일과 샘물을 덮쳤습니다. 성서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은 인간에게 닥칠 고난과 심판에 대한 예언이 드러날 때 사용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9절에 보면, “그 환난의 날들이 지난 뒤에, 곧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그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인간의 위대한 잠재력과 운명이 빛을 잃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더 이상 생명의 샘이 고갈되는 현상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운명인 떨어진 별을 짊어질 수만 있다면 그 때부터 개성화의 과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별의 이름이 쑥이며, 물의 삼분의 일이 쑥이되고, 사람이 그 물을 마시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별은 슬픔과 고통을 불러오고 인간을 병들게 하는 쑥이란 이름을 지녔습니다. 결국 이 별은 파괴적인 속성을 지닌 원형적 힘을 드러냅니다. 쑥이란 이름을 지닌 위대한 별이 파괴적으로 작용하며 생명의 물은 죽음의 물로 바뀝니다. 저는 이를 인간을 팽창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분은 거대한 별이 자신에게 너무나 가까이 다가오는 꿈을 꾸고 놀라서 깨어난 것을 보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 별을 거리를 두어 객관화할 수 있다면 그에겐 위대한 별의 운명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되지만, 반대로 그 별에 압도되어 자신에게 떨어지면, 그 별은 쑥이란 이름의 별이 되어 자신을 부패하고 썩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상의 떨어지는 별이 심판과 죽음의 운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별의 운명을 실현해가는 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팔의 심판 3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와 달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어두워졌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이 어두워질 때 자연과 인간세계는 재앙을 맞이합니다. 이런 흑암의 재앙은 출애굽할 때 10가지 재앙 중 하나이며 요엘서나 아모스에도 등장하는 주님의 날의 심판의 전형을 가리킵니다. 어두움은 의식의 빛과 통찰이 가리어진 상태에 해당한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는 것은 의식의 명증성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정신수준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그들이 어떤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고 싶을 때 종종 그들의 생각이 사라졌다고 종종 불평합니다. 이런 현상은 히스테리에서 흔합니다. 자네Janet는 이를 가리켜 ‘정신적 일식’이라고 부릅니다.”[C.G.Jung, The Psychogenesis of Mental Disease, CW3, para.175, 33fn.] 오늘 우리 시대에도 무의식적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배회하는 맹목적 집단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이와 같은 현상일 것입니다. 집단의식이 빛과 통찰이 어두워져 우리에게 다가오는 실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다시 이 본문을 보며 질문하게 됩니다. 우리를 비출 빛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도 죽고, 비의도 사라져가는 시대에서 우리를 밝힐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종교와 전통의 가치를 새롭게 재해석해야하고, 우리의 심층에서 올라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우리의 어둠에 불을 밝혀야 합니다. 경고하는 나팔의 심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밝힐 빛이 사라져가고 어두워졌다면, 다시금 그 빛을 찾기 위해 주님 앞에 나를 세울 수 있는 복된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