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02일 토요일
제목 : 부끄러운 롯의 신앙
오늘의 말씀 : 창세기 19:23-38 찬송가: 391장(구 446장)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30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중심 단어: 롯, 여호와, 유황과 불, 소돔과 고모라, 멸하셨더라, 아브라함, 생각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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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
24절: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심
25절: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심
도움말
1. 유황과 불(24절):‘불타는 유황 덩어리’를 뜻한다.
2. 소금 기둥(26절): 소금 덩어리로 된 화석상을 말한다.
3. 생각하사(29절):‘기억하다, (잊지 않고 늘) 마음을 두다’라는 뜻이다.
4. 모압(37절):‘아버지로부터’라는 뜻이며, 롯의 맏딸과 롯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5. 벤암미(38절):‘근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작은딸과 롯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말씀묵상
부끄러운 롯의 신앙
본문은 롯의 후손을 소개하며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같은 곳에서 지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돔 성의 멸망과 함께 모든 재산과 아울러 아내와 사위들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돔의 타락한 문화에 물든 두 딸들의 패륜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아들들을 낳게 됩니다. 롯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시하던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불타지 않는 공력
바울은 그 원인을 공적이 불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고전 3:15). 바울에 따르면, 모든 신앙인은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상을 얻지는 못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신앙과 의로 인생을 건설하는 사람은 불을 견디고 상을 받지만, 롯처럼 불타버릴 인간적인 정욕으로 인생을 건설한 사람은 불을 견디다 못해 겨우 목숨만 건지는 구차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고전 3:10-15). 신앙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복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복락은 그 신앙의 모습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롯과 같이 불타버릴 재료로 인생을 건설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도움 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천사의 지시를 어기고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어떻게 됩니까(26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인생을 건설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의 신앙은 마지막 때에 불타지 않을 터 위에 세워지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서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로 멸망 당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속으로 기뻐하시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진심은 죄로 멸망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멸망 당할 때 겨우 구원받은 사람은 롯과 두 딸이었다.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롯과 두 딸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후손을 얻게 된다. 두 딸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고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결혼을 약속한 배우자들은 아버지의 말을 농담으로 듣고 유황과 불 가운데 죽임을 당했고 엄마는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이런 끔찍한 심판을 보고도 롯은 왜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헤브론으로 찾아오지 않았을까?
소알에 사는 것도 겁나서 두 딸과 함께 산속 동굴로 피한다. 이런 상황에도 롯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이때 두 딸의 생각이 너무 충격적이다.
큰 딸 언니가 작은 딸 동생에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밤에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먼저 들어가서 아버지와 동침한다.
성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어떻게 깨닫지 못할 수 가 있단 말인가?...
다음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말한다.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구절들이다.
‘36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아버지 롯이 소돔 사람들에게 했던 말 때문에 이런 복수를 하는 것일까?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더 놀랍고 두려운 것은 하나님이 롯의 두 딸에게 임신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딸의 태도 때문에 아내가 많이 화가 났다.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며 쓴소리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하였더라’라는 말씀이 내 마음을 찌르며 아픔을 주고 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어도 왜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일까요? 언제나 ‘초보사랑’ 딱지를 뗄 수 있을까요? 이제는 훈육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툰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자녀들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서 주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거룩한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아가며 부모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의 가훈 ‘범사에 감사하라!’를 실천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자녀들의 생각과 마음에 성령으로 채워져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예수의 마음으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