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간
박현솔
국수를 삶으며 직선의 행적을 따라간다 직선은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 흐물흐물 곡선이 된다 물의 결이 뭉치지 않고 돌개바람을 만든다 이제 회오리는 뜨겁고 짜다 면발들의 탄성을 가늠할 때 혀는 정직해지고 오래된 탐욕만이 위장 속으로 흘러든다
인류가 먹었던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을 황하강 유역에서 발견했을 때 당시 오래 살기를 꿈꾸었던 사람들은 죽고 없다 면발의 실크로드를 따라 장수의 염원만이 이어져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생명의 길, 욕망의 길, 유혹의 길
그 실크로드의 기억을 입 안에 밀어 넣으며 내 몸이 가늠하는 삶과 죽음의 교차 지점을 건넌다 권력자들은 더 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악마와 거래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생각한다 줄에 매달려 늘어진 목각인형의 핏기 없는 팔과 다리……굶주린 회오리바람이 그림자를 잽싸게 낚아채 간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결코 오래 살 수 없었던 사람들과 삶의 매 순간을 미련 없이 버린 사람들이 별똥별로 사그라지는 시간……정성껏 끓인 한 그릇의 국수를 앞에 두고 몇 가닥은 과거로 또 몇 가닥은 미래로 흘려보내는 순간, 어디선가 밀알 한 톨씩을 문 새떼들이 북반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박현솔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2001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 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와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 초월적 세계인식의 전망과 이데아가 있음.
현재, <문학과 사람>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