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교회 옛 대구형무소 터에서 추모식…일제 때 순국 애국지사 206명
호남 출신 43명 39.6% 차지…영·호남 화합의 장 속에서 치러진 합동 추모식
"대구·광주광복회 역사적 동행, 선열들이 맺어준 숭고한 인연"
14일 대구 중구 삼덕교회 옛 대구형무소 터에서 광주·전남 독립운동가 45인에 대한 추모식이 열린 가운데 유가족들이 조부모의 이름을 찾아보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4일 오전 12시 삼덕교회 옛 대구형무소 터에서 거행된 추모제에서 심남일 의병장의 손자 만섭(80) 씨가 헌화하고 있다. 김세연 기자
"자주 못 찾아봬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이곳을 잊지 않겠습니다."
대구 중구 삼덕교회의 옛 대구형무소 터를 찾은 심남일 의병장의 손자 심만섭(80) 씨는 대구형무소 옛터에 남아 있는 벽돌에 새겨진 할아버지의 이름을 어루만지면 눈시울을 붉혔다.
1909년 10월 호남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체포된 심남일 의병장은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지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순국했다.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을 선고 받고 순국한 심남일 의병장의 나이는 당시 서른아홉이었다.
14일 오전 11시 옛 대구형무소 터에서 광주·전남 순국 독립운동가 45명을 기리는 합동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 대구를 찾은 광주광복회원 40명은 오는 16일까지 2박 3일간 경북 안동 임청각, 강원도 고성군 통일 전망대 등을 탐방할 예정이다.
대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당시 5천여명이 수용됐던 한강 이남 최대의 감옥으로 꼽힌다. 저항시인 이육사 선생 또한 이곳에 1927년 투옥돼 수감번호 '264'를 받은 역사적인 장소다.
일제 당시 복심법원(현재의 고등법원)은 한강 이남에 대구에만 있었던 탓에 경상도를 비롯한 충청도, 전라도의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혔다.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호남 출신 애국지사는 모두 43명으로 전체 순국선열 206명(의병 117명) 중 36.9%를 차지한다.
변재괴 광복회대구지부 사무국장은 "광주와 대구의 광복회가 역사적 현장에서 이렇게 동행하게 된 것은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이 맺어준 인연"이라며 "대구형무소는 사라졌지만, 그분들이 남기고 간 헌신과 애국정신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광열 광복회광주지부장도 추모사에서 "1909년 일제가 벌인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호남의병 대학살 사건)'에서 수많은 의병들이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갇혔다"며 "100년이 지난 이제야 술 한 잔을 바치고 꽃 한 송이를 올린다. 못난 후손을 용서해주시고 이제 자주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현재 대구 민간단체들은 대구형무소에서 숨진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역사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마땅한 부지 찾지 못하고 있다. 당초 팔공산 인근 부지와 망우공원 인근 공터가 후보로 떠올랐지만 팔공산은 접근성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됐다.
망우공원 부지 또한 역사기념관 설립을 위해서는 용도변경 절차가 필요하다. 변재괴 사무국장은 "대구시가 용역을 추진해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며 "사업 자체는 민간이 주도하지만 국비나 시비로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호남 의병들 대구형무소서 이슬로…` - 매일신문 (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