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자유 + 권리 |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개인이 정치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힘에 의한 억압이나 부담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사상이다. 집단에 의한 통제보다는 개인의 자발성을 우선시하며, 국가와 사회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성을 꽃피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사상이다. 17~18세기에 주로 유럽의 신흥 시민 계급에 의하여 주장된 시민적ㆍ경제적 자유와 민주적인 여러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이다. 로크, 루소, 벤담, 밀 등이 주창하였으며, 미국과 프랑스 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
프랑스 자유주의 운동 | 빈 체제로 성립된, 부르봉 왕조(王朝.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전제정치(專制政治. 군주독재. 주권의 운용이 임금의 독단에 맡겨진 정치제도)와 자유주의 운동 탄압(의회 해산, 언론의 자유 억압, 부르주아의 선거권 박탈) → 국왕 샤를 10세는 프랑스 혁명의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의 동생으로서, 1824년 루이 18세(절대왕정으로의 복귀 단념)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입헌정치를 인정하지 않고, 구제도(왕정)에로의 복귀를 원하여 극단적인 반동정책(反動政策)을 실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르주아와 세력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반대는 높아짐 → 혁명에 성공(1830.7) → 샤를 10세(루이 16세와 루이18세의 남동생)는 영국으로 도망 → 루이 필립(시민국왕 :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했던 왕)이 즉위 → 1830년 7월에 시민들의 항거로 왕을 바꾼 이 사건을 ‘7월 혁명’이라고 한다. 7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제 헌법이 마련됨 → 루이 필립의 변심(가난한 노동자들은 무시하고, 돈이 많은 시민들에게만 선거권을 줌 = 재산의 소유 정도에 따라 선거권을 줌) → 1848년 2월 노동자들과 중소시민들이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며 혁명을 일으킴. 이를 ‘2월 혁명’이라고 한다. 루이 필립은 영국으로 망명감 → ‘2월 혁명’으로, 왕정은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 프랑스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은 ‘빈 체제’를 붕괴시켰다. → 다시 말해 오스트리아에 영향을 주어, 메테르니히는 추방되었다. * 프랑스 혁명(1차 공화정) → 빈 체제(왕정) → 7월 혁명(입헌군주제) → 2월 혁명(2차 공화정) →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의 조카)은 대통령 재직 중,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붕괴시키고 황제에 즉위함(2차 제정. 帝政) →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9월 새롭게 급부상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폐위 당했고, 프랑스에는 제3공화정이 들어서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