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이씨 수은공파 소호문중 6.25이후 해산공파 족보(구족보)를 최초로 휘 영구가 주도하여 만들다.
한산이씨 수은공파 일명 소호문중은 항일운동의 정신적지주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몸소 실천한 가문이다.
개항이후 위정척사운동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상소 단발령으로 시작된 항일운동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할때까지 대략 80년간 지속된 항일운동 실천은 2대-3대에 걸친 문중의 수난시기였다.
또한 광복되자 얼마지나지 않아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었고 소호문중의 많은 유산이나 유물은 대략 80년동안 거의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었다.
이시기 동안 서원이나 정자 큰 한옥집 같은 종가 및 소호문중의 족친 가구등은 엄청난 소실을 보았다.
그래서 문중의 힘을 다시 회복하고 흩어져있는 소호문중 일가들의 소식을 파악하고 추스러기 위해 서산서원 중심의 복원과 족보의 간행이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1988년 소호문중족보는 이보다 20년 정도 앞선 구족보에 일부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그러면 소호문중의 한국전쟁이후 족보간행 구족보 즉 1960년대 최초의 족보는 누가 주도하여 만든것일까?
소호문중 전체가 한 것은 맞지만 중심인물이 없다면 이룰수도 또한 학식있는 인물이 아니면 해낼 수가 없는 일인것은 누구나 다 아실것이다.
그 단추는 사실 이전에 저자가 올린 기사에 있다. 조선의 마지막 전통 한약방을 운영하신 한산이씨
이영구( 李永求) 이시다.
자가 양원(養元)이며 1909년에 출생하셨고 1970년 졸하였다. 묘소는 안동 일직 원동(원리) 서산서원근처이며 슬하에 1남 3녀 두었다.
파보) 수은공 이홍조 --- 휘 석보 -- 약와 이현정- 휘 경 - 휘 병은 -휘 수영 - 휘 돈대- 휘 안규 - 휘 영구( 최초 구족보 발행인) - 자 윤복
지금은 공의 후손들은 모두 대구에 거주하고 있다.
영자구자 할아버지는 학식이 매우 높으셨으며 살아생전 당시 소호문중의 종가 어르신들도 영구할아버지의 이야기에는 모두 고개를 숙여서 경청하고 모든 일에 잘 참여하셨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서산영당 (지금의 서산서원)의 한때 실질적 훈장으로 역할을 하신 한산이씨 휘 영구의 증조부이신 대은공 이수영(형)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은공은 졸하시기를 몇해전 관직을 제수받으셨다고 하나 소실적 대산집부터 목은선생연보 공의 부친 설죽공은 백불암집 정재집 함홍당집 구애집 대은유고 등 수많은 문집에 흔적을 남겨두셨다.
2010년부터 차츰 번역되고 디지털화 되기 시작한 승정원일기는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되었고 이로 인해 저자는 영남만인소의 소두였던 면암공 이우 선조님이 증직되어 2품에 해당하는 상당직의 벼슬이 내러온것도 최초로 소개하였으며,
나의 고조부인 한산이씨 이돈대(李敦大) (1841 ~1886 )
자(字) 가덕(家德) 호(號) 류계( 柳溪 )가 서원철폐에 항의하는 만인소를 올렸고 이 상소로 인하여 조정의 단발령 조치 이후 가해진 일제의 탄압으로 돌아가신 대상자 인것을 간접적으로 알수 있다. 항일운동의 중심에 나의 고조부가 있었지만 이제는 지난일이 되어버렸고 안동 향교지 책자에 안동 고장의 큰 인물 정도로 한번씩 소개되는 것이 전부이며 아무런 포상도 없이 이제는 그저 잊어져버린 사건이 되었다.
한산이씨 류계공 이돈대의 부친 대은공 이수영(형)에게도 조선말 고종시대에 벼슬이 내러왔다.
살아생전 졸하시기 몇해전 높지는 않지만 자식잃은 힘없던 시기 조정의 사과나 미안함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의금부도사의 벼슬이 내러왔다고 한다.
승정원일기
고종(高宗) 26년 기축(1889, 광서) 1월 30일(병자) 맑음
26-01-30[68] 김윤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였다
○ 김윤수(金胤洙)를 예빈시 주부로,
김상묵(金相默)ㆍ이수영(李秀瑩)ㆍ정복원(鄭宓源)을 의금부 도사로,
강한경(姜漢庚)을 감찰로, 김인근(金仁根)을 평해 군수로, 민영헌(閔泳憲)을 예빈시 주부로, 김도원(金道源)을 감찰로, 이준하(李俊夏)를 연일 현감으로, 김기영(金基永)을 사천 현감으로, 이근석(李根碩)을 의금부 도사로, 이시홍(李時弘)을 전옥서 주부로, 박원신(朴元信)을 감찰로, 김여혁(金麗赫)을 평해 군수로, 홍우덕(洪祐德)을 인의로, 김기호(金基鎬)를 전적으로, 정재호(鄭在鎬)를 감찰로, 김학수(金學洙)를 연일 현감으로, 권용(權溶)을 의금부 도사로, 고용(高溶)을 전적으로, 박내춘(朴來春)을 감찰로, 손홍직(孫洪稙)을 평해 군수로, 민재승(閔載升)을 의금부 도사로, 성하영(成夏永)을 사천 현감으로 삼았다.
승정원일기 2981책 (탈초본 136책) 고종 26년 1월 30일 을해[병자] 57/93 기사 1889년 光緖(淸/德宗) 15년
○ 傳于趙秉翊曰, 平海郡守申鴻模, 延日縣監具永書, 郭山郡守尹喜民, 前府使白東奭, 順川郡守安秉宅, 泗川縣監成夏永, 竝內禁將除授。 以金胤洙爲禮賓主簿, 金相默·李秀瑩·鄭宓源爲禁府都事, 姜漢庚爲監察, 金仁根爲平海郡守, 閔泳憲爲禮賓主簿, 金道源爲監察, 李俊夏爲延日縣監, 金基永爲泗川縣監, 李根碩爲禁府都事, 李時弘爲典獄主簿, 朴元信爲監察, 金麗赫爲平海郡守, 洪祐德引儀, 金基鎬爲典籍,鄭在鎬爲監察, 金學洙爲延日縣監, 權溶爲禁府都事, 高溶爲典籍, 朴來春爲監察, 孫洪稙爲平海郡守, 閔載升爲禁府都事, 成夏永爲泗川縣監。
한국전쟁 이후 한산이씨 소호문중의 해산공파 구족보를 주도하고 만드신 최초의 장본인 이영구 할아버지를 기리며 후손 해은 이대원 삼가 글을 짓다.
출처 (승정원 일기 원본 고종시대 1889년 1월 30일 기사 )
첫댓글 글을 볼 수록 대단하고 감동입니다.
저도 조선의 양반 유일의 한산이씨선조님 계보 10대 봉군을 조만간 올리려 합니다.
장원 일가님 계보도는 저도 쬐금알고 있습니다 우리 한산이씨 중에서도 대단한 명가이시지요 곧 기사를 접할 기대가 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