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풍 울타리, 통발, 방풍망 등 전통 기술 총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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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6일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와 함께 특수조림지를 찾았다. 대형 풍차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전시관이 들어선 옛 대관령 휴게소에 서자 줄 맞춰 심은 삼각형 수형의 전나무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숲이 울창한데 왜 조림이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했을까. 의문은 광장 뒷 편에 설치된 사람 키보다 높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방풍 울타리에서 풀렸다. 바람을 차단한 울타리 뒤에서 어린 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35년 전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기술은 아직도 살아 있다.
야생화 숲길이 있는 광장 오른쪽 특수조림지에 오르는 길옆에는 당시 방풍 울타리의 기둥이 잔해로 남아 있다. 방풍책은 높이 3m의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조릿대, 싸리 등을 엮어 만들었는데, 울타리의 앞과 뒤 바람을 50% 이상 줄이는 효과를 냈다. 특수조림지에는 20m 길이의 울타리가 240개 세워져 총 길이는 4,800m에 이르렀는데, “거센 바람에 무너지면 세우기를 수십 번 되풀이해야 했다.”고 동부지방산림청의 [국유림 경영 100년사]는 적고 있다. 큰 묘목은 이렇게 울타리로 바람을 막았지만 작은 묘목은 나뭇가지로 발을 만들어 둥글게 감싸는 ‘통발’로 보호했다. 조림한 모든 나무에는 지주를 설치해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대관령 정상 일대는 극심한 바람과 추위로 산기슭의 조림사업이 성공한 뒤에도 벌거숭이로 남았다. 1999년부터 3년 동안의 복원사업에는 1970년대 이후 고안한 기술이 총동원됐다. 방풍 울타리와 통발 이외에 새로 방풍망이 도입됐다. 삼각기둥의 꼭짓점을 바람 방향으로 향하도록 설치하고 모기장을 씌워 바람을 막는 장치였다. 논 흙 90t을 산꼭대기까지 옮겨와 객토를 하기도 했다.
신준환 박사는 “이 모든 과정은 일일이 사람 손이 가는 작업이어서 지금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민이 아니었다면 산림을 복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던 오영숙(43·평창국유림관리소 숲 해설가)씨는 “학교에서 방풍망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며 “어른들은 산에서 묘목을 캐오거나 마을마다 정해진 구역에서 반장의 인력동원에 따라 작업을 하고 밀가루 포대를 일당으로 받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풍 울타리와 통발 등은 현재 몽골과 내몽골에서 사막화 방지 조림을 하는 데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지역 주민의 전통기술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조림사업 당시 평창군 산림과 직원이던 김군섭(64·평창국유림관리소 숲 해설가)씨는 “이 지역에서는 돌담을 쌓을 돌이 많지 않아 전통적으로 나뭇가지로 담을 세웠다가 나중에 화목으로 써 왔다”며 “방풍책은 이런 전통 지혜를 조림에 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