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제 4편 긴 여로
7장 마약의 심연
8장 판정패
9장 풍류따라
10장 사랑과 미움
11장 어머니의 노여움
12장 귀부인들
13장 왜 혼자 사는가
14장 쫓기는 사람들
15장 살해
16장 잠든 것같이
17장 카페
18장 장 기인인가
제 5편 젊은 매들
1장 번뇌무한
2장 손목 잡고 하는 말
3장 마차를 기다리다가
4장 주사
5장 호호야
6장 민족개조론
7장 하얀 새 한 마리
8장 배신자
9장 동승
10장 명장
11장 젊은이들
12장 잘못된 계산
13장 편지
14장 용의 죽음
15장 만주행
16장 지시
17장 사랑
18장 결혼
19장 햇병아리
20장 젊은 매
제 5편 젊은 매들
1장 번뇌무한
2장 손목 잡고 하는 말
3장 마차를 기다리다가
4장 주사
5장 호호야
6장 민족개조론
7장 하얀 새 한 마리
8장 배신자
9장 동승
10장 명장
11장 젊은이들
12장 잘못된 계산
13장 편지
14장 용의 죽음
15장 만주행
16장 지시
17장 사랑
18장 결혼
19장 햇병아리
20장 젊은 매
@ff
토지 4부 3권
차례
제4편 인실의 자리
4장 장례식 날 밤
5장 동경의 인실
6장 영광의 부상
7장 영호네의 부탁
8장 수유리에서
9장 만주사변
10장 조용하의 자살
11장 양자 얘기
12장 오누이의 재회
13장 양현광 ㅣ부사댁
제 5편 악령
2장 동성반점에서
3장 인실의 변신
4장 노파가 된 임이
5장 남경학살
6장 일본인의 시국관
7장 떠나는 마차
부록
어휘풀이
@ff
토지 4부3권
4장 장례식 날 밤
사건이 난 뒤 열흘이 지났으나 경찰은 범인의 흔적조차 찾아내질 못하였다. 온통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하마 어디서 쾅! 하고 터질지 모르는 소리를 초조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이 사람들은 즐거움에 가슴이 뿌듯해져갔다. 어디서나 그 사건을 화제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끼리 눈과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이야기하엿고 귓속말고 몸짓으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들리지 않는 함성은 차츰차츰 도시를 휩쓸어가고 있었다. 추상적이던 가정부, 상해에 있다는 우리 임시정부, 사람들은 그 존재를 실감하년서 무기력해진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희망의 빛을 보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조국. 그 조국이 내게로 올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남녀노소 빈부와 계급이 차이 없이 누구나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수 없다. 적보다 더 가증스러운 배신자, 반역자, 한겨레의 뿌리에서 나온 친일파 앞잡이들에 대한 응징도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불가능한 일이였지만 만일에 어느 누가 거리에 군자금 모금함을 내놓았다면 이 순간만은 사람들 마음이 가락지 비녀 다뽑아넣었을 것이며, 지게꾼 노점상 죽 팔던 노파까지 하루벌이를다 털어넣었을 것이다. 윤곡이도 걸핏하면 남강 모래밭으로 달려나가 데굴데굴 굴렀다. 몸이 가려운 강아지처럼 굴렀다. 구르면서 '아버지다! 아버지가 다 꾸미신 일이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나 모든 것 다 알 것 같았다. 알 것 같아서 피가 끄퓨었다. 그 자신도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으며 진주의 집을 수색한 것은 물론 평사리까지 형사대가 파견되어 집안을 뒤졌고 마을 사람들까지 불러들여 조사를 했다. 평사가 넌지시 관련되지 않았는가 말했을 때 길상은 물끄러미 형사를 바라보며 "그만한 돈 만들려면 우리도 어려운 처지는 아닌데 뭐가 답답하여 남의 집에 가서 강도질을 했겠소"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어쨌다는 거요. 나는 석 달 가까이 이곳에 와서 정양하고 있었는데 내 혼백이 가서 그 짓을 했단 말씀이오?" " 댁은 피해가 없질 않소. 그들보다 댁의 재력이 월등한데 이상하지 않느냐 그 말이오." "글쎄올시다. 왜 우리집은 털지 않았는가, ddltkdgkrls 이상하군요. 감옥살일 했다고 봐준겐가?""이보시오! 혁명지사 왜 이러시오!" "왜 이러시오? 그건 내가 할 말이오. 정말 왜 이러시오? 현금은잔사하는 사람들이 맣이 가졌을 터이고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온들 뭐가 나오겠소" "......" "누가압니까? 요 다음엔 우리집에 화살이 꽂힐지. 하룻밤에 드집 털기도 벅찬 일, 세 집이나 털 수는 없었을 게요." "당신은 재미있어 하는 군. 뭐가 그리 신이 나오!""그러면 악을 쓰리까? 그것 다 해본 짓이오. 무고하다고 악을 써본들 생떼 쓰고 나오면 별수없더군. 사람의 기만 넘고 명대로 살지도 못하겠더군."
그러고도 듣기 거북한 얘기가 한동안 서로간에 오고갔으나 형사는 꼬리를 잡지 못한 채 떠났다. 혐의가 있고 없고 간에 범인을 잡지 못하여 노심초사,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경찰이 길사의 전력을 감안하면 그를 진주까지 구인하여 조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분히 친일적으로 보여지는 서희의 존재, 평소 음으로 양으로 돈을 뿌려놨던 것이 이럴 경우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아꿎은 두 서기, 그러니까 이도영 집의 서기와 김두만 집의 서기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거의 병신이 되다시피 고문을 당하였고 다급한 나머지 덮어놓고 이름들을 입에 올려 무관한 사람들이 곤욕을 치러야 했었다. 아무튼 두 명의 서기는 파멸이었다. 전쟁에 부상한 병사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그것은 비참한 희생이었다. 그 동안 김두만은 만나는 사람마다 내 돈 강탈해간 놈들 잽히기만 해봐라! 칼로 배애지를 푹 짤러 직이지 그냥 두나 하고 욕을 했다. 어느놈이든 턱아리를 놀렸기 때문에 돈 있는 줄 알고 들어오지 않았겄는가. 입에 거품을 물고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떠들엇다. 그러나 그의 말에 맞장구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운수 불길하여 손해가 크다는 정도의 위로를 하던 사람들도 차츰 그를 피하게 되었고, 흥분하는 김두만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 한마디 없이 발길을 돌리곤 했다. 별수없이 그도 욕을 안 하게 되었지만 경찰이 내통했다는 의심을 그에게 전혀 갖지 않는 것을 알고는 빼앗긴 돈이 아까워 혼자 꿍꿍 앓았다.
"우떻게 해서 번 돈고. 내 피땀으로 번 돈, 돈 잃고 인심 잃고, 어이구 내 가심이야!"
자기 가슴을 치곤했다. 서울네는 서울네대로 뽀로통해서 말했다.
"왜 하필이면 그날 독골로 가셨소?"
"내가 가고 저버서 갔나! 아부지가 오늘만 내일만 하는데 그라믄 자식된 도리에 안 가고 우짤 기고!"
"초상이 난 것도 아니지 않아요. 가신 건 그렇다 하더라도 저녁에는 왜 못 돌아오셨소! 돌아오셨으면 빼앗기진 않았을 거예요."
본댁이 잇는 곳에서 잤다는 것이 서울네는 더 괘씸했던 것 같다.
"약한 여자 혼자 놔두고 두 부자가 한꺼번에 집을 비운 것이 잘못이에요. 나를 무시하니까 그랬지. 그놈들도 업신여겨 둘째부인 일어 나시오, 그러더라구요."
"칼 들고 두 놈이나 들어왔는데 설사 내가 있었다 하더라도 속절없이 당했지 별수 있을 기든가."
"나는 지금 돈 애길 하는 건 아니예요! 당신네들 마음 쓰는 것이 틀렸다 그 말을 하는 거예요! 어버지가 못 올 형편이며 저라도 와야하지 않았느냐 그 말이예요! 낳아놓기만 하면 그만인가요? 두 아이한테 내 정성 쏟은 걸 생각하면 분하고 서러워. 주야로 공부하게 뒷바라지한 사람은 누구죠? 연장 망태 짊어지고 남의 집 품일이나 할 주제에 양조장 주인은 뉘 덕이며, 동경 유학은 뉘 덕이며, 중학교는 웬 중학교, 사람이 그러면 못써요! 조강지처? 대체 조강지처가 누구지요? 사람 구실도 못하는 걸 두고 조강지처? 생모? 흥! 내가 칼에 맞아 죽었으면 속 시원했겠지요? 속 시원했을 거예요!"
서울네는 히스테리를 부렸다. 열심히 돈을 벌 때와는 달리 큰 집에 이사온 후 안방마님으로 행세하면서 서울네는 옛날같이 고분고분하다가도 성질을 부리는 일이 더러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기성이와 기동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이 서울 여자는 앞날을 생각하여 맏딸이한테서 남편을 빼앗은 것과 같이 두 아들도 철저하게 자기 자식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해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남편뿐만 아니라 두 형제가 독골로 가는 일이었다. 그날 부자가 집을 비운 것은 우연이었다. 이평노인의 병이 위중하여 가기는 갔으되, 병세가 오늘 내일 한다는 것도 벌써 여러 날 전부터의 일이었고 특별히 화급하게 기별이 온 것도 아닌 터에, 또 평소 부모에게 데면데면했었던 두만이었던지라 굳이 그날 가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날이 삼월 삼짇날이어서 양조장은 쉬었고 일꾼들은 모두 씨름 구경에 가고 없었기에 그 틈을 이용하여 두만은 아들을 데리고 독골로 갔던 것인데 언제나 그랬듯이 모친이 놓아주질 않았다. 누워 있던 이평노인의 눈빛도 매우 강경하여 할 수 없이 그곳에서 밤을 보낸 것이다.
시일은 지체 없이 흘러갔다. 양력으로 오월에 접어든 진주 시가에 녹음은 싱그러웠다. 오월이 가고 유월이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었을 때, 오늘 내일 하던 이평노인은 것 달을 넘게 견디다 드디어 타계하였다. 독골 상가에는 꽤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는 영팔노인 내외의 모습이 보였고, 사돈지간인 장연학이 있었다. 그러나 존문객의 주류를 이룬 것은 시장 상인들롸 주류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대중이란 끝없이 인내하면서 변화에 대하여 성급하고 가슴에 밎혀 잇으면서도 쉬이 체념하며 망각한다. 신출귀몰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고 인심이 소용돌이 치던 도시에 여름이 찾아왔을 때 신출귀몰이라는 말은 퇴색해가고 있었으며 인심의 소용돌이는 차츰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몸조심 말조심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주판을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상가에 모여든 상인들은 그 대표적인 존재엿다, 가정부를 칭하고 군자금을 털어갔다고 해서, 경찰이 그들을 잡지 못하고 이를 간다고 해서 당장 족립이 죄는 것도 아니었는데, 독립만 된다면 이까짓 점방 하나 팔아 올린들 뭐가 대순가! 했었던 그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썰물같이 격앙된 감정이 밀려가 버리고 나면 그들은 독립이 요원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두만이를 슬름슬름 피하던 사람들, 욕을 하는 두만에게 눈총을 주던 사람들, 그들은 본시 잇던 자리오 돌아와서, 돌아온 모습으로 두만이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한분 가믄 못 보는데 얼매나 허전하겄소. 그래도 복 많은 어른이요. 자식들 잘된 것 보고 눈을 감았으니, 효자가 따로 있소?"
하며 손을 굳게 잡는 사람도 있었다. 적잖은 부의금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손상된 감정을 복구하기 위하여. 그러나 상가를 하직하고 둑길을 지나면서
"묵고 살라 카이 우짜노. 입이 포도청이제. 제에기랄! 돈 좋다, 참말로 돈 좋구나!"
하고 자조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오일장으로 장례는 끝났다. 초상을 치르는 동안 오복을 갖추었다고들 하는 딸, 여수의 선이가 젤 섧게 울었다.
"불쌍한 울 아부지, 아들 사우 잘 두었다 넘들은 그라지마는 하루도 편키 못 산 울 아부지. 식구들 일이라 카믄 살을 깎고 뻬를 깎고, 다 소앵이 없는 기라요. 나부텀도 믿거라 하고 출가외인이라 하고 편키 아부지 한분 모신 일이 없고 잘살믄 저거들 잘살았제, 평생을 깡보리밥에 일만 하시고 어이구 불쌍한 울 아부지! 사람 하나 인연이 잘못되어 울 아부지 골수에 병들었제. 화목하기로 소문난 우리집이 와 이 지경 되었는고."
"청승이 늘어지는구마."
못마땅해서 두만이 혀를 찼다.
"내비나두게. 이럴 때 안 울곤 언제 울 기고."
매형 종학이 말했다. 마을 아낙들도 뒤꼍에서 일을 하며 입이 놀고 있지는 않았다.
"잘산께 큰소리하네."
"하모. 잘산께, 없이 살았이믄 저런 말 못할 기고 쬐끼갔을 기다."
"큰소리하게 돼 있제. 사돈노인이 다니감서 초상 비용 하라고 큰 돈 내놨더 카더마."
"그뿐아가, 짚배도 필필이 가지오고, 초상에 쓰는 개기는 말장 여수서 가져왔다 카데. 얼음에 채워가지고 자동차로 실어왔다 안 카나."
"그러기, 동기간도 잘살고 봐야. 불쌍한 거는 기성이네 아니가. 울음 한분 크게 못 울고 친정 식구라고는 개미 한 마리 없이니."
"친정에 누가 있었다믄 그냥 두기나 했일 기든가? 시도 때도 없이 가서 탕탕 뽀사부릿지."
"그거는 헹펜 모리는 이야기고 그 여자 때문에 오늘 이렇기 됐인께."
"아따! 그라믄 금송아지 갖고 왔든가? 과분지 소박데긴지 아니믄 덤짜인지 그 여자 내력이사 우리가 우찌 알까마는 혼자 잇는 젊은 것이 돈이 많았이믄 얼매나 많았겄노, 또 그랬다믄 머가 답답해서 기성아배 같은 목수를 따라왔겄노. 다 협심해서 벌었기애 오늘이 있는 기지."
"하기사 여자가 제아무리 나부대봐도 별수가 없기는 없지. 불쌍한 거는 기성이네, 친정이 있어 어리등대 했이믄 법으로 만냈겄다, 아들 형제 낳았겄다, 와 큰소리 못하겄노."
"이분에 초상에 와서 하는 행사 봤제?"
"와 아니라. 보통내기가 아니더마. 눈앞에 사람이 없는 기라."
"노리깨깨하고 입술은 포리쪽쪽하고 비상이라도 타겄더라."
시누이가 섧게섧게 울었지마는 사무치게 서러운 사람은 막딸이었다. 그러나 막딸이는 울어보질 못했다. 일이 태산 같았기 때문도 아니요 딸 아닌 며느리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저기이 계집이가, 저 꼬라지 하고서 에미라꼬? 남자 우세시키지 말고 자식 우세시키지 말고 제발 뒷구석에 콱 처박히 못있겄나!"
남편 입버릇 때문이엇다. 게다가 함께 머리를 푼 서울네가 한 소동을 벌여놓고 진주로 가버린 탓도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지나치게 서울네는 소외되기는 했었다. 그러나 어느 집안이든 대사를 치를 때는 서열을 엄히 때지게 돼있었고 서울네는 그것을 감수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적진에 날아든 한 마리 작은 새랕이 자신을 느꼈던지
"난 머리 풀 자격이 없어요. 어중이떠중이 잘 놀아보세요. 난 진주로 돌아가겠어요."
눈을 희뜨고 두만에게 앙칼진 소리로 대들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옥신각신, 서울네는 미친 듯 악을 썼고 울부짖고 하다가 가버린 것이다.
"만고에 저런 요망한 것이 어디 있노. 서울년은 법도 모리나. 이 자리가 우떤 자리고!"
두만네는 노발대발했다.
"어무이 시끄럽소. 예사 굴러온 돌이 본돌 치는 거 아닙니까. 행실이 기러믄 딱 무시해부리는 기이 젤이요. 내사 가고 나이 앓든 이 빠진 것맨크로 씨원하거마는, 불쌍한 우리 올케 그 꼬라지 안 보이좋고."
두만이 들으란 듯이 선이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방에서 비난이 분분했다. 화가 난 두만은 죄 없는 막딸이를 볶았고 마주치기만 하면 잡아먹을 듯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태산같이 믿고 의지했던 시아버지 죽음 앞에 막딸이는 울지도 못했다.
장지까지 따라갔던 사람들을 위해 마당에 쳐놓은차일 밑에는 음식이 준비돼 있었다. 백수가 된 영팔노인은 근력이 좋은 편이어서 장지까지 갔다왔고 연학이도 따라갔었다. 대개는 장지에서 돌아가고 마을 사람 몇몇과 영팔노인, 두만과 종학이 술상에 둘러앉았다.
"날씨도 좋고 호상이라 뒤끝이 깨끗하고."
"남의 나이 (팔십 이상)도 아닌데 호상은 무슨 호상."
"오십 넘기기도 어러븐데 칠십을 넘깃이믄 호상이지 머. 자손들 무탈하고, 벼룩박에 똥칠하며 사는 것도 죄라."
동네 사람이 주고받는 얘기를 듣다가 영팔노인은,
" 이 사람들아 그만해라, 늙은 사람 옆에 두고 욕하는 기가."하고 말했다.
" 아이고 어르신 무신 말심 입니까. 젊은놈들 빰치게 짱짱하신데, 제 술 한잔 받으시소."
영팔노인은 따라주는 술잔을 비우고 수염에 묻은 술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청춘이 잠간이네라. 눈 깜짝라 사이제. 늙은 것이 남의 일 같더마는 어느새 하나씩 가부리고……말할 수 없이 허전쿠나."
"하기야 머, 죽음에 노소가 있겄십니까. 타고난 명대로 사는 기지요."
"평사리서 용이가 죽었일 직에는 원통해서 땅을 치고 울었다마는, 오늘 이평이성님을 묻고 나이 샛바람 속에 혼자 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의 평생이 일장춘몽 같지마는 다시 생각해보믄 세월은 긴 기라. 한동네서 나가지고 함께 큼시로 별의별 일을 다 겪었제. 그 겪은 일들 하나하나가 우찌 그리 생생한고. 젊은 시절에는 이평이성님이 좀 돌리는 편이었다. 죽으라고 일만 하고 술사는 일이 있나 제 앞만 가린다고 밉으라 했제. 두만이모친이 후덕해서……이평이성님은 젊었일 때나 늙었일 때나 몸이 줄도 늘도 않고 뽀뽀하게 생기어 오래 살 줄 알았더마는."
"듣고보니 자기 앞만 가맀다는 것은 부전자전이구마요."
선이 남편이자 연학의 사촌형인 종학의 말이었다. 몰론 농담이었다.
"아이가, 아이가, 어림 없제. 두만이가 돈은 좀 벌었는지는 모리겄다마는 아부지 따라갈라 카믄 한참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평생 농산 부린 일 없고 남 못할 짓 한 일 없고, 얼랑 누굴랑이 없어 그렇지."
"아제씨도 참, 그라믄 지느 농간을 부리고 남 못할 짓 했다 그 말심입니까?"
발끈해거 두만이 말했다.
"농간 안 부리고 우찌 장사를 하노. 농간 안 부리고 우찌 부자가 되노. 그러자 카이 남 못할 짓도 하게 되는 거 아니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아무도 손을 못 된 자갈땅을 밭 맨들어보겄다고 죽자사자, 명태겉이 예비서 일하든 이평이성님, 눈에 선하다. 얼매나 땅에 포은이 졌으믄 그랬겄나, 다 그래가지고 너거들 안 키웠나."
그 말 대꾸는 두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년에는 더러 후회도 했네라."
"머를 후회했단 말입니까?"
종학이 물었다.
"그럴 일이 있었네. 다 지나간 일 아니가."
"산에 같이 안 간 그 일 말입니까?"
종학이 물었다.
두만이 말했다. 영팔노인으 잠자코 있었다.
"후회할 일이 따로 있지. 그리 됐이믄 명대로 살기나 했겄소. 식구들은 삼지사방으로 흩어져서 거지가 됐일 기고, 아부지가 그거를 후회했을 리가 없소."
"명은 하늘이 주신 거고, 사람이 잘 묶어야 하루 밥 세 끼, 저승길에 이고 지고 갈 기가. 나이 들어봐라. 재물 그거 별거 아니네라.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돌아보고 하믄은 잘못한 거만 짐이 되제. 그저 푼수껏사는 기이 젤이다. 그러고보믄 이평이성님이 잘못 살았다 할 수는 없일 기구마."
한편 안방에서는 영판노인의 마누라 판술네와 마주앉은 두만의 모친은 눈물을 흘리고 있았다. 오일장을 치르는 동안 두만의 모친은 통곡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 무덤 앞에서 무덤을 어루만지며
"보소. 나도 돋 갈 긴게 마음 편히 기시이소. 썩는 꼴 안 보고 잘 갔십니다. 야 나도 곧 갈 기요."하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만 내리가입시다."
영만이 와서 팔을 잡고 일으켰다.
"놔라. 내 혼자 갈 수 있다."하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산을 내려왔던 것이다.
"시아부지가 살아 있었으믄 그 계집이 그랬겄나. 어림도 없지. 제 년이 우찌 감히 그라겠노."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두만의 모친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판술네도 눈물을 닦았다.
"아닌게아니라 기가 찹니다. 어디서 배운 버릇인고, 풀었던 머리 걷어올리고 나가는 꼴을 보이 눈에 불이 나더마요. 그럴 거라믄 애씨당초 오지를 말든가."
"무서븐 시아부지 세상 버맀이니 겁날 것 없다, 그 봇장이제. 우리네하고는 사람이 다르다. 마음 묵으믄 묵은 대로 말하고, 정월 초하루 묵은 맴이 섣달 그믐까지 가지마는, 그 제집은 속 다르고 겉 다르고, 얼매나 수단이 좋은지 머시마들까지 손아귀에 넣어서 기성이 기동이 그놈들도 지 에미를 대수로 안 여긴다. 남정네를 틀어쥐고 이자는 자식들까지 싹 뺏아갔다. 그년이 우리도 호락호락했이믄 벌써 옛날 옛적에 기성에미 내쫓았일 기구마. 참말로 무서븐 제집이다. 참말이제 우리 기성에미를 우찌 할꼬."
"걱정 마이소, 성님. 영만이가 안 있십니까."
"가아들이라도 있인께……내가 살믄 얼매나 더 살겄노. 세상만사다 보지 말고 지금이라도 눈 암았이믄 싶다. 그놈 말말이 부모가 해준 기이 머 있는가, 해준 거사 없제."
"놔두고 안 해주었겄소."
"그기이 그놈 말이건데? 제집이 귀에 못이 백히도록 한께 그런 말이 나왔겄지. 자식 말이 나왔겄지.자식 말 해봐야 내 얼굴에 똥칠하기, 입에 다물고 있일라 카이 복장이 터지고."
"참으소 고만."
"우리 영만이도 성 덕본 것 없다. 지가 근한께로 땅마지기나 갖고 살지."
"은앙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엎더라고 그래도 형제가 아니요."
"우리 모두, 죽은 늙은이도 병들어 줍기까지 뼈빠지게 농사지었다. 말말이 자식 덕에 잘산다, 그것도 어디 그놈 말이건데? 제집말이고, 그 제집 덕에 잘산다 그 말 아니겄나."
"그래봐야 다 소용 없십니다. 자식을 낳았소, 법으로 만낸 제집이 겄소, 늙으믄 지 불쌍치."
"그기이 안 그렇다. 안 그러이 내가 이러제. 오십 년 넘기 자식 낳고 같이 살던 늙은이를 내다버리고 내가 무슨 정에 자식을 험담이나 하고 있겄노. 그거이 아닌 기라. 기성할배 눈 감은께 사정이 싹 달라졌다. 이자는 내 영이 통하지도 않을 기고. 기성애비가 늙은이 살았일 직에 마음대로 못한 일이 하나 있었거마는……"
"……"
"이분에 제집이 하는 행실만 봐도 틀림없이 그 말을 끄낼 기다."
"머가 말이요?"
"기성에미보고 미적 파자, 그럴 기라 말이다."
"민적을 파다니?"
"한분 그런 일이 있었네라. 에미 꼬라지가 그렇다고."
"에미 꼬라지가 우때서요? 살림 사는 지어미가 기생도 아니겄고, 핵교 선생도 아니겄고 가축 안 하믄 다 그렇지요. 도방에서 조석만 끓이묵는 것도 아니겄고 일이 좀 세야지, 농사를 아무나 지을 기든가.
"내 말이 그 말 아니가. 그래 에미 꼬라지가 그러이 자식 앞길 막고 이자는 지도 진주서는 윗자리에 앉는 몸이니 남사스럽다 안 그카나? 그 말이사 늘 하는 입버릇인께 그렇다 치고, 그러이 민적 파고 남 되자, 돈을 좀 줄 것이니 절로 가든 제 갈 길을 가라."
"시상에 그런 경우가 어디 있소. 시적 며누리 보게 됐는데 두만이가 환장했네."
"그 일이사 한참 전의 일이었제. 그래서 기성할배가 몽둥이 뜰고 아들 직인다고 야단이 안 났더나."
"시상에, 그런 일이 다 있었고나."
"이자는 내가 와 이라는지 알것제? 틀림없이 미적 파자고 나올기다. 불쌍한 우리 기성에미를 우짜믄 좋노"
"걱정 마이소. 자식들이 가만 있겄소? 다 컸는데"
"니도 참 답답하다. 여태 멋을 들었더노. 자식들이 에미 생각한다믄 무신 걱정할 기고."
"그래도 성님. 말이 그렇지 우찌 조강지처를 내쫓것소. 진주 바닥에 얼굴 치키들고 댕길라 카믄 그렇키는 못할 깁니다.!"
"모리는 소리 마라. 괘씸키는 손주놈들이 더 괘씸타. 장개갈 나이가 됐이믄서, 그놈들이 에밀 감싼다믄 애빈들 우짜것노. 그러나 그기이 아닌 기라"
언제였던지 에미 생각 안하고 서울네 편든다고 나무란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괄시하고 미워하니까 오히려 동정이 갑니다. 사람이란 감정의 동물이거든요. 우리 눈에도 집에서 너무 심한 것 같소"
기성은 냉담하게 말했다.
"자식도 서방도 독골에는 얼씬 못하게 하는 그 제집 소행이 그라믄 니는 옳다 그 말가?"
"옳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이해해야합니다. 남녀간에 뜻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을 어떻게 같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거는 무리지요. 있을 스도 없고 도덕적으로도 틀린 일입니다. 서양에서는 서로 좋아서 결혼했다가 싫어지면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것 보통이지요. 축첩하는 것보다 휠씬 깨끗하지 않습니까?
기성은 건방지게 유식한 척 말했다.
"이놈아! 우리는 서양 사람 아니고 조선 사람이다!"
"글쎄요. 나쁜 풍습을 고쳐나가야지요. 그래야 우리도 문명국이 될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독골어머니는 너무 무식하고, 누가보아도 진주어머니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요."
"진주어머니라니!"
"왜요?"
"이놈아! 작은에미다, 진주어머니라니!"
"하, 참 할머니도 머리 좀 쓰십시오. 말에 밑천 들었습니까? 자꾸 그렇게 나오니까 집안이 시끄럽지요. 인정해줄 것은 인정해주고 그 분의 공로를 무시할 수 있습니까?"
"그 노래이겉이 생긴 년!"
"그만하면 미인이지요."
약을 올리듯 말했다.
"식자 있고 머리는 놓고, 진조어머닐 만나지 못했으면 아버진 목수밖에 더 했겠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공평치가 못합니다. 좀 신식으로 이해해보십시오."
기성은 실실 웃기까지 했다.
"니가 머를 아노! 머리빡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모르기로는 할아버지 할머니지요."
"우리가 이 정도라고 했이니 니 에미가 쫓기나지 않았다. 그 백여기 겉은 년! 천륜을 우찌 끊노!"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잡안은 더 많이 달라졌고여. 할머니는 옛날 식으로 하실 생각 아예 마십시오. 자식이라 해서 부모 마음대로 못합니다. 자식이 평생 함께 살아야 할 여자를 어째서 부모가 택하지요? 그런 구습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버려야지 서로가 다 비극 아닙니까. 아버지도 괴롭고 진주어머니도 괴롭고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우리 역시 고통스러우니까요."
"그래서?"
"네?"
"그서 니는 우짜믄 좋겄노?"
"제 자신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자인 세 사람이 해결해야 겠지요."
"그라믄 니는 어이서 낳노? 누구 뱃속에서 나왔노? 하늘에서 떨어졌나? 짐승도 지 에미는 아는 법인데 니 말대로 하자믄, 일본까지 가서 배운 니 말대로 하자믄 다음 세상은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살아가겄고나."
그때 두만의 모친은 절망을 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 카든가. 옛말 하나 그른 기이 없다. 자식 그거다 소앵이 없네라.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기성이할배가 이녁 죽은 뒤 우떻게 될 긴가를 알고 땅응ㄹ 모두 기성에미 앞으로 넘겨놨는데, 문서는 영만이가 간수하기로 하고."
"야? 땅을 며누리 앞으로 다 했다 그기이 정말입니까?"
"운냐. 정말이다. 그래서 한 소동 벌어졌제. 그것도 생각해보믄 걱정이다. 돈을 뺏깄니 우찌니 하고 또 늙은이가 세상 버리고 없이니, 영만이가 우찌 견딜란고 모리겄다. 사업 자금으로 문서 내놔라 할 기이 뻔하다, 이리저리 더듬어도 내 눈 하나 없이믄 우리 기성이에미 앞날이 걱정이다. 울고 갈 친정이 있다 말가, 지 몫 챙길 성질도 아니고."
밖에서는 삼월 삼짇날의 얘기를 누군가가 꺼내었다. 그 사건 이래 피해를 본 당사자 두만이를 처음 대하는 사람도 있어서 당연히 궁금했을 것이다. 장례가 끝나자 곧장 진주로 내달리고 싶었던 두만은 차마 남의 눈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울적해 있었던 참인데 그 얘기가 나온 것이다.
"조선놈들 망해야 싸지 싸아. 남 잘되는 거를 보믄 밤에 잠이 안오는 기이 조선놈들 심뽀 아니든가. 어느놈이든 턱아리를 놀리도 놀맀길래 현금 있는 줄 알고 내 집을 덮친 거 아니겄소."
"서기가 벵신이 됐다믄? 풀리난 거를 보니 죄가 없었던 모앵인데."
종학이 말했다. 연학과 영만은 술자리에 끼여들지 못하고 멍석 끝에 나란히 걸터앉은 채 말이 없었다.
"그 속을 누가 알겄소."
"그라믄 자네는 서기를 위심한다 그 말가?"
"하기사 머, 시자의 점방을 판 거를 아는 사램이야 많겄지요. 여하간에 내막을 세세히 알리주고 배가 맞아서 한 짓 아니겄소. 잽히기만 하믄 배애지를 칼로 푹 찔러직일 기요."
"아직도 못 잡았이믄 이자 잡기는 영영 그른 기다."
영팔노인의 말이었다.
"죄지은 놈, 어느때 잽히도 잽힐 기요. 피땀으로 모은 남의 돈, 그 것 묵고 얼매나 하늘 보고 살겄소."
"니 말을 들으니 가정부 사람들 아니고 그냥 강도다."
"아제씨, 와 이러십니까?"
"와, 내가 머를 잘못했나?"
영팔노인은 심술궂게 웃으며 눈을 꿈벅꿈벅한다.
"내가 놈 짜 붙이고 배애지 찔러직인다 카고 도적놈이라 카이 그라믄 가정부놈 아니다, 얘기가 그렇기 되는 겁니까? 가정부 놈들 겉으믄 가정부 나으리, 배를 찔러 직이기는커냥 찔린 배 싸안아주고 방바닥에 이마빡 찧어감서 돈을 상납해야 하고 머 그런 얘깁니까?"
영팔노인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대신 종학이가
"세상 인심이 다르리 돌아가는데 자네도 풀세게 너무 그러지 마라."
"야아, 잘 알구마요. 세상 인심 잘 압니다. 바늘 하나 축간 것이 없는 놈들이야 무신 말인들 못하겄소. 입 가지고 만고충신도 되고, 입 가지고 나라 독립도 하고, 닳아지는 기이 아닌께."
"바늘 하나 축간 것이 없는 놈들, 그 속에는 나도 끼인께, 나보고도 두만이 니가 놈짜 놓은 기가?
영팔노인 말에 두만은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어버린다.
"오늘겉이 좋잖은 날에는 좋은 얘기나 하는 거요. 자아 술이나 마시고, 아무리 호상이라고는 하지마는 한분 간 부모는 다시 못 본께."
마을 사람의 그 말도 두만에게는 가시였다.
"여기 술 떨어졌구마.
하자 영만이 화드득 일어섰다.
"인 주이소."
주전자를 받아들고 영만은 부엌 쪽으로 가서 술을 내온다. 그리고 아까처럼 연학이와 나란히 멍석 끝에 걸터앉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해는 서편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이 시뻘건 하늘을 갈가마귀떼가 울며 날아간다. 몇몇 사람이 일어서서 하직을 하고 떠났다. 초상집의 일을 도와주던 마을 아낙들도 음식을 나누어가지고 다 돌아갔다. 사람 하나 비어버린 자리, 사람들이 하나 둘 상가를 떠나자 그 비어버린 자리가 남은 사람들 마음에 허무하게 스며든다. 올이 굵은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색이 바래진 여름 모자를 쓴 이평노인이,
"기성아!"
하고 문간에서 방금 들어올 것 같기도 했다. 기성아, 손자 이름이지만 때론 며느리를 부르는 것이기도 했고, 때론 마누라를 부르는 것이기도 했었다.
영만의 아이들이 큰집에 오다 말고 차일 밑에 어른들이 그냥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되돌아간다. 막딸이는 부엌 부뚜막에 앉아서 행주치마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영만이댁네가 울고 있는 동서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초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여 곡을 했던 선이는 지쳐버렸던지 작은방에 들어간 채 기척이 없었다.
"조선팔도 다 댕기고 우리 시아부지 겉은 어른이 어디 기실꼬. 지나가시다가도 내가 밭을 매믄 아가 니는 들어가서 보리방아나 찧으라. 내가 밭은 매줄 긴께……어디서 그 어른을 또 만낼꼬. 한시 반시 쉬시는 법이 없고, 아들 잘 두었다 캐도 남 가는 데 한분 못가보시고."
영만이댁네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팔짱을 끼고 부엌바닥에 쭈그리고 앉는다. 믿고 의지하고 큰 나무의 그늘 같았던 시아버지가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막딸이는 우는 것이었지만 맏손자이자 자신이 낳은 큰아들 기성은 분명히 전보를 받았을 터인데 장례가 끝난 지금까지 일본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둘째 기동이도 장지에서 곧장 진주로 가버리고 말았다. 어미한테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버린 것이다. 옛날에는 남편이 없어도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만으로도 방안은 가득 찬 듯 막딸은 행복했었다.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논에서는 개구리 우는 소리, 산에서는 뻐꾸기가 울었다. 영만이댁네가 기둥에 등을 내건다. 동시에 안방에서도 등잔에 불을 밝혔는지 장지문이 환해졌다.
"아까 산에서 피뚝 생각한 일인데......"
두만이 다소 신중해진 어투로 말을 꺼내었다.
"그 일에 송관수가 관련되지 않았이까 그런 생각이 들더마요."
빈 자리를 채운 듯 연학과 영만이 술상머리에 앉아 있었다. 연학이 두만의 눈을 가만히 바라본다.
"일구월심이다. 이자 그만 잊어부리라. 그러다가 세상 사람이 다도적으로 안 뵈겄나. 해서 잃어부린 사람이 죄를 짓는다 카이."
장종학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생사람 잡겄고나." 영팔노인은 곰방대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두만을 노려본다.
"대관절 송관순가 하는 사램이 누고?"
종학이 물었다.
"백정놈인데,전에 농청하고 백정들이 한판 붙었일 직에 내가 농청에다 돈 안 받고 공짜술 주었다 함서 그놈이 나한데 찍짜를 붙은일이 있었소. 아주 영악한 놈이지요."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 했다. 우째서 관수가 백정이고."
비로소 연학이 일어섰다.
"그래, 그러시야겄다."
종학도 엉거주춤 일었섰다. 비틀거리는 영팔노인의 겨드랑 밑으로 연학이 팔을 찔러넣으며 부축한다.
"이노오음! 내 이 늙은 모가지에 썩은 새끼줄 감아서 왜놈한테 끌고 가라 카는데 와 말이 없노!"
"이이구 참, 늙어감서 이기이 무신 짓이요."
"모리거든 임자는 입 다물어, 저놈은 저, 저놈은, 돈이라 카믄 지애비 묏자리도 팔아묵을......"
영만이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댁네가 달려나왔다. 영만이 말했다.
"두 분 뫼시고 가서 자리 봐드리라."
"야."
판술네와 영만이댁네가 영팔노인을 부축하는 바람에 연학은 물러섰고 그들이 문밖으로 나간 뒤 자리로 돌아온다.
"내가 이래야겄나? 세상에 뵈는 기이 없나? 니가 누고? 니가 멋꼬?"
두만의 모친은 아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두만이는 이리저리 모친의 눈길에서 도망을 치다가,
"와 나만 가지고 이러요. 내가 잘못한 기이 머 있다고 모두 나만보믄 덤비드는가 말이요! 억울하고 분한 거는 나 혼자밖에 없다 그 말이요! 내 밥 묵고 내 돈 쓰고, 부모 형제까지 이러이 서글퍼서 우찌 살겄소!"
울먹였다.
"우리는 니 밥 안 묵고 니 돈 안 썼다. 니 아부지 벵들어 눕던 그날꺼지 뼈빠지게 일하고 살았다. 이놈아 니 아부지 숨 걷을 때 머라 카싰는지 벌써 잊었나 남의 가심에 못박지 마라. 그말을 벌써 잊었나? 별말할 거 없다. 판술아배, 판술어매, 그리고 니 에미꺼지 모두 끌고 가거라. 독립군 했다고 끌고 가서 까바치라. 그라믄 상금 많이 줄 기고 축간 돈 아귀가 맞일 거 아니가."
"기가 차서."
"기가 차는 거는 나다. 아무리 돈이 좋기고 죄 없는 사람을 모함 해도 되는 기가? 니 아부지 땅에 묻고 날도 안 밝았다. 피알 하나 안 속이고 살아온 아부지 같은 노인을 모함해?"
"모함은 무슨, 말이 그렇다는 기고."
확 달려들어 아들의 멱살을 잡는다.
"장모님 참으이소. 지도 울화가 치민께 그러는 기지요. 부모 자식간엔 질기 이러믄 정만 떨어지고……"
종학이 나서서 뜯어말린다.
"나도 이러고 접지 않다. 컬 때는 안 그렇더마는, 부모 안 닮은 자식이 어디 있겄나 하고 생각했더마는 틀린 기라. 사람 아주 베맀다. 돈 있이믄 머하노. 집안이 풍지박산인데."
하다가 사위 보기가 민망했던지 두만의 모친은
"기성아, 나 작은집에 가서 잘 긴께 찾지 마라."
며느리에게 말하고 휭하니 나가버린다. 초상 뒤끝이 엉망이 되었다. 두만이는 쥐어박힌 살람같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멱살을 잡아도 어머니는 어머닌 것이다. 끈덕지고 가장 강한 공격수가 어머니였는데 두만은 모친이 나가버리자 갑자기 추위를 타는 것 같은 이상한 고독감에 빠진다. 매형과 그의 동생 연학에게 계면쩍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종시일관 말이 없는 동생 영만이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하니나 다를까.
"성."
하고 영만이 형을 불렀다.
"성은 자기 한 대 만 살고 말 생각이요?"
"……?"
"자기 한 대만 살고 말라 카믄 마음대로 하소."
"무신 말고?"
"나는 내 자식 내 손자 대꺼지 살아주기를 바래는 맴이니께 이렇기 되믄 성하고 남이 되든지 해야겄소."
"좀더 알기 쉽기 말해봐라."
"그라믄 내가 묻겄소. 성은 왜놈이 천년만년 우리 백성을 누르고살 기라 믿소?"
"……"
"우리 백성들이 천년만년 왜놈의 종으로 살 기라 성은 그렇기 믿고 있소?"
"나중 일을 누가 알꼬."
"모리지요. 나도 모리요. 하지마는 한 가지 틀림이 없는 일은 만일에 나라가 독립한다믄 성이 역적이 된다, 그것만은 틀림이 없을 기고, 삼족을 멸한다믄 조카 두놈에 우리 새끼들은 우찌 될 기요."
"야가 무슨 소리를 하노.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이 개명천지에 삼족을 멸할 기라꼬? 자다가 꿈 겉은 소리하네. 하하핫핫핫……하하하핫……"
그러나 웃음 소리는 공허했고 한풀 꺾인 느낌이다. 모친한테 멱살을 잡혔을 때 한풀 꺾이긴 했었만, 종학이 연학을 힐끗 쳐다본다. 형제의 눈이 부딪쳤다. 잠자코 술이나 마시라는 듯 연학은 형의 술잔에 술을 부었다.
"성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덩신이요."
"머?"
"장사 눈이 밝아서 돈을 좀 벌었는지 모리지마는 번 돈 간수하기는 영 어렵겄소."
"건방진 소리 하네."
"진주의 그 머라 카는, 이 머라 카는 사람 따라갈라 카믄 아득하요. 뿔따구 난 황소맨크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봤자 뿔따구만 뿌러지지 얻는 기이 머 있일 기라고 그러요."
"니가 진주 일을 우찌 아노. 시건방진 소리 마라."
"와요? 나는 귀도 눈도 없다 캅디까? 이 아무개라는 사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인께 소문이 나기로 가정부힌테 돈을 뺏긴 기 아니고 내어주었다, 그러이 우리는 바늘 하나라도 그 집에 가서 사자, 사실은 여하간에 인심이 기렇다는 긴데."
두만이 깜짝 놀란다.
"누가 그러더노."
자신도 그 비슷한 말을 듣기는 했으나 그 집 물건을 사자, 하는 민심의 동향은 모르고 있었다.
"방물장사 할망구가 그럽디다. 기와지사 돈은 잃은 거고, 찾으믄 다행, 더 말할 것도 없겄지마는 성이 악담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죄 없는 사람을 찍어넣는다꼬 돈이 돌아오겄소? 원수만 사지. 가만히 있어도 돌아올 돈이믄 돌아올 기고 못 돌아올 돈이믄 못 돌아오는 거 아니겄소. 집도 터도 없이 다 뺏긴 것도 아닌데 제빌 그러지마소."
차근차근 말하는 영만은 여러모로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 해본 것 같았다. 아까 김두만의 입에서 송관수의 이름이 튀어나왔을 때 사실 연학은 등골이 오싹했다. 연학이 진주로 돌아가지 않고 미적거리며 앉아 있는 것은 오래간만에 형제가 만나서 할 얘기도 있을 것이고, 남 보기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간의 김두만의 심경이라든가 돌아가는 형편을 살피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거기다 송관수가 거론되고 보니 연학은 더더구나 자리를 뜰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이따금 덩치가 크고 나이 들면서 비계살이 붙은 형을 바라보곤 한다. 처남인 김두만보다는 여유가 있고 너그러운 편이지만 그도 실리에는 밝은 사람이다. 연학의 신중한 눈이 영만에게 옮겨진다. 술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영만은 연학과 마찬가지로 오늘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앗다. 미끈하게 때가 빠지고 제법 뭐하는 사람같이 된 형에 비히여 영만은 갈 데 없는 농사꾼이었다. 손은 갈구리 같았고 얼굴은 검둥이었느며 햇볕에 탄 머리칼도 누릿누릿했다.
"성의 말대로 삼족을 멸하는 그런 일은 없을 기라 하드라도 칭찬 받을 일은 아니제요. 넘한테 손가락질 받으믄서 자식들 공부 시키 모았자 사람 구실 하겄십니까 내 생각은 그렇거마는, 나야 독립군 될 인야도 못 되고 언애 꼬꾸랭이 조금 끄적이는 식자고 보이 면서기 할 자격도 없고 평생 삽자루나 잡고 땅파고 살 기요마는 앞 뒤 재보는 감양은 있소."
이런 기회에, 모처럼 두만과 마주앉은 기회에다 부친의 장례는 끝났고, 매형도 있는 자리니만큼 가정일까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영만은 작정한 것 같다. 어떤 책임감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상채기는 아물게 가만히 내버리두고, 휘젓어봐야 덧나기밖에 더 하겄소? 무식한 놈 말이라꼬 덮어놓고 물리치지만 말고 잘 생각해보소. 그라고 좋으니 궂으니 해도 궂은 이리에는 부모 형제고 좋은 일에는 남이라 안 카요? 남이야 떡이나 묵고 굿이나 보고 안 그렇소? 이 분 일도 일이지마는 집안일도 그렇소. 남자 할 일 따로 있고 여자 할 일 따로 있고, 소견머리 좁은 여자 말만 들을 기이 아니라 다른 식구 말에도 좀 귀기기울소. 자식 낳고 사는 조강지처라믄 모리까, 여자란 좋을 때 좋은 기지 돌아서믄 남이고 해악을 끼치는 것도 흔히 있는 일 아니요, 언제 내가 성보고 이런 말 합디까? 아부지도 이자는 안 기시고 하이 식구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안 하겄소. 남한테 척지는 짓 해도 안 되고 가숙한테 모질기 해도 안 될 기요. 그라고 믿는다 하믄서 남자가 세세히 여자한테 이야기 다 하는 것도 못난 짓이라요."
영만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징했다. 종학의 술을 부었다.
"목 좀 추기감서 얘기해라."
"오늘은 술 안 할랍니다."
매형의 손을 밀어내고,
"그라고 머, 더 할말도 없십니다."
순간 영만의 얼굴에는 스스러워하는 빛이 떠돌았다.
"작은처남이 자네보다 국량은 넓네. 듣고 보이 하낫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집안끼리니, 남 없으니 하는 말이다만 왜놈들한테 잽히가지 않을 마큼 처신하고, 작은처남 말마따나 독립군 할 형편은 못 되지 마는 중뿔나게 원성 사고 살아서는 안 되겄다. 말이야 바로 하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 안 하든가? 강약이 부동이라 지금은 우쩔 수도 없지마는."
종학의 말에 두만은 침묵을 지켰다.
"지 생각에는."
연학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본의 경비가 어디 보통입니까? 물샐 틈 없는 것이 일본의 졍비고, 또 사건이 사건인만큼 이 잡듯 할 긴게 조만간에 잽히기는 잽힐 성싶습니다."
"그렇까?"
종학이 의문을 나타내었다. 두만이, 영만은 좀 뜻밖이란 표정이다.
"그런 일로 안 잽힌 경우가 별로 없지요. 그것이 또 가정부서 정말 그랬는지 의심스럽기고 하고, 차라리 강도한테 당했으믄 후환이나 없일 긴데."
"후환이라니?"
튕기듯 두만이 되물었다.
"첫째는 경찰에서 시끄럽고 혹시 내통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한께."
"그, 그 점은 나도 생각했고, 이도영이 그 사람도 그것 때문에 오라가라 했던 모앵인데……"
두만의 눈빛이 불안해진다.
"두번째는 반대로, 그 사람들이 잽히는 날이믄, 또 친일파로 지목을 하고 그랬다믄은 믈귀신맨크로 끌고들어갈 수도 있는 일 아니겄소."
연학은 무표정이었지만 그러난 무서운 말이었다.
"내, 내가 순사 형사도 아니겄고 돈 좀 번 것이 치, 친일이라 할 수는 없는 일."하다가 두만은 헝클어진 머릿속을 가다듬기나 하듯 생각에 잠긴다. 한동안 긴장이 흘렀다. 연학의 말은 두만뿐만 아니라 종학과 영만에게도 공포감을 갖게 했다.
"하기는 친일파한테 폭탄을 던지고 칼부림도 한다 카이……이래저래 참 어러븐 세상이다."
종학이 중얼거렸다. 관수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더라면 연학은 그런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 심사가 편한 것도 아니었다. 상당히 위험이 따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닌게아니라 두만은 강한 의혹을 느낀다. 길상의 존재가 크게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의혹이 짙어지면 질수록 공포심도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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