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우리 가족이 증평으로 이사 와서 산 증평은 도시 같으면서도 농촌 같은 그런 곳이다. 이곳에는 먼 조상 때부터 뿌리를 박고 살아온 사람들도 있고 외지에서 와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에 농사에 대하여 잘 모른다. 씨를 뿌리는 것과 관리를 하는 것과 추수를 하는 것 모두 잘 모른다. 그런데 농사를 오래 동안 지으신 분들은 잘 알 것이다. 농촌에서 자란 분들은 씨를 뿌리고 관리를 하고 열매를 거두며 재미를 본다. 그러나 도시 스타일의 사람들은 먹고 싶은 농산물을 돈으로 사서 먹는 것으로 재미를 삼는다. 인스턴트 스타일인 것이다.
예전에 어던 사람이 나를 좋아해서 자신의 정원에 심겨져 있는 무슨 꽃나무를 뽑아 줄테니 집에 가져가서 심으라고 했다. 그
사람은 농촌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그 나무에 대하여 알고, 그 나무를 나에게 주는 것은 큰 선심을 쓰는 일이었지만, 나는
나무를 뽑아 주겠으니 가져다 심으라는 말에 별로 반응하지 못했다. 뭘 심는다는 것에 대하여 거의 무지한 나에게 나무를 주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니다. 천지에 깔린 게 나무인데 궂이 나무를 우리 집 마당에까지 가져다 심는 수고를 할게 무어냐는 심산이
들었다.
그런데 농사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들은 땅만 보이면 자기 땅이든 남의 땅이든 뭔가를 뿌리고 심는다. 증평이 도시가 되면서
아스팔트가 깔리고 고층 아파트가 생겼지만, 조금의 짜투리 땅만 보이면 농사를 아는 사람들이 뭔가를 뿌리거나 심어 놓는다.
몇 년 전 집 옆에 보도 블럭이 있었다. 보도 블럭 사이로 흙이 들어가 있는 작은 틈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거기에다가도 콩씨를 뿌려 놓고 갔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보도 블럭 사이에도 콩씨를 뿌려 놓은 것을 보니 보통 농사꾼은 아닌 것 같았다. 날이 갈 수록 콩 나무가 자라니까 지저분하게 보이고 거추장스러워서 뽑아버리려고 하다가도 심어 놓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그대로 두었었다.
사람은 뿌리고 기다려야 한다. 뿌려 놓고 기다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
助長(조장)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조장하다.'라고 하는 데, 그 의미는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성장을 돕는다'는 뜻이 된다.
조장이라는 말은 알묘조장 (揠苗助長)이라는 고사성어에서 왔는데, 중국 송나라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이다. * 揠(뽑을 알) 苗(싹 묘) 助(도울 조) 長(길 장)
한 농부가 봄에 볍씨를 뿌려 놓고, 그 싹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다. 하루는 자기의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하여 논에 가보았다. 그가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의 논에 있는 벼가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처럼 보였다. 마음이 초조해진 농부는 어떻게 해서든 곡식의 싹을 빨리 자라게 해서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볏모는 눈에 띄지 않게 자라고 있었으나 농부는 그러한 사실을 몰라 다급했던 것이다.
농부가 벼의 순을 당겨보니 벼가 약간 더 자란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논에 있는 나머지 싹도 모두 뽑아 올렸다. 하루 종일 벼의 순을 빼느라 힘이 빠진 그는 비실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오늘은 매우 피곤하다. 나는 곡식의 싹을 도와서 자라게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가족들은 몹시 궁금해 했다. 다음날 그의 아들이 논에 가서 보니 벼는 모두 죽어 있었다.
벼도 심어놓은 후에는 스스로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