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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320(황보세가(皇甫世家))-1
풍운과의 대결 이후 오마(五魔)는 오금이 절여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대체 누굴까? 황보세가의 무공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무공의 경지를 초월했다. 그 만한 고수가 중원 무림에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今時初聞)이다. 다만 집히는 사람은 있다. 쌍마(雙馬)의 쌍륜협격진(雙輪挾擊陣)을 가볍게 막아냈던 일사(一死)다. 일사(一死)는 인간이 익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수라마령신공을 극성을 익혀, 그 무공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놈이다. 또한 천면역용술을 익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오마(五魔)는 정신을 차리고 사상자(死傷者)를 수습하는 한편 풍운에 대한 일을 정리해서 혁린강과 중원지부에 보냈다. 그리고 사람들을 풀어 제남(齊南)일대를 수색하라고 했다. 놈도 부상을 입었으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황보찬일은 밤이 깊어도 찬린일행이 돌아오지 않자 믿을 만한 사람을 오마(五魔)에게 보냈고, 오마(五魔)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다. 거짓말을 하면 잠시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간의 신뢰(信賴)는 무너지고 오해만 증폭되어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찬린과 혜경을 능욕(凌辱)하려 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결과만 제대로 전달되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을 전해들은 찬일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번 발을 들어놓은 발을 빼기는 늦었다. 한 마디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일이 있다. 찬린이야 눈에 가시 같은 존재니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 또한 찬린을 제외한 반대파가 몰살했으니 이제 배화교와의 협력에 반대하는 놈들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 이번 일에 엮어서 소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일이 더럽게 됐다. 눈치를 보면 남궁벽은 혜경이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혜경이 때문에 지원군까지 끌고 왔는데,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풍운은 밤이 깊도록 술을 마셨다. 아무리 마셔도 혜경과 찬린에 대한 고민 때문에 취하질 않는다.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인시(3~5시)가 넘어가자 만취(漫醉)한 도치와 악무룡 등이 방으로 올려가고 이제 마수와 금막비만 남았다.
“일사(一死)님! 얼굴이 어두워요. 무슨 고민이라도 계신 겁니까?”
평소와 달리 풍운이 술만 마시고 있으니 마수가 눈치를 보며 질문한다.
“그냥 심란해서..........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마수가 제차 질문해도 대충 얼버무리는 대답뿐이다.
“마수야! 우리도 그만 올라가자. 일사(一死)님도 그만 주무세요.”
금막비가 마수를 끌고 방으로 올라간다. 때로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홀로 남은 풍운은 달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 묘시(5~7시)가 지나갈 때쯤 처음 보는 여인이 일층으로 내려온다. 그녀는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풍운을 발견하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와 풍운의 겉으로 다가왔다.
“달을 벗 삼아 술을 마신다. 낭만을 적이네요. 그런데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아요.”
풍운은 낮선 불청객을 힐끗 쳐다보고 다시 잔을 기울인다. 칼날 같은 날카로움과 정갈한 기운이 충만한 것으로 보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고수 같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다. 여인이 의자에 앉더니 술잔을 내민다.
“저도 한잔 주세요.”
풍운은 달빛을 바라보며 술을 따라주고, 여인은 잔을 비우더니 술잔을 내민다.
“제가 한잔 따라드릴게요.”
특이한 여인이다. 풍운은 잔을 받아 마시고 눈을 돌려 여인을 바라본다. 초승달처럼 우아한 눈썹과 깊은 호수처럼 맑고 청량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이제야 관심을 보이네요. 이희린이라고 해요. 당신이 마수마랑이죠.”
“저를 어떻게 아시죠.”
“제가 귀가 밝은 편이예요. 어제 당신들께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어요.”
“우리가 소저의 잠을 방해했군요. 죄송합니다.”
여인은 눈을 흘기며 풍운에게 술을 따라준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릴 것이 아닌데,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군요.”
“.................”
“무룡님께서 당신이 세상에 찾아볼 수 없을 절대미남자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 말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생각해 보니 혜경과 찬린 때문에 역용을 풀었다가 지금까지 다시 역용을 하지 않았다.
“외모란 껍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껍질도 껍질 나름이죠. 당신 같은 껍질이라면 만금(萬金)을 주고라도 얻고 싶지 않을 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만 일어나야겠네요.”
“잠깐..........당신은 제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어제 밤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죠. 그럼 무룡이 당신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 것도 아시지 않나요.”
풍운은 그 말을 끝으로 이층으로 올라간다. 평소라면 최대한 예의를 갖추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심란하여 격식(格式) 따위에 억매이고 싶지 않았다. 풍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희린은 피식 웃더니 아침 산책을 나간다. 평소 습관대로 일찍 일어나 새벽운동을 하는 것이다.
방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문고리를 잡았다. 잠기지 않았다. 살며시 열고 들어가 보니 찬린과 혜경이 곤하게 자고 있다. 침상 겉에 앉아 두 여인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여인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복받친다. 빌어먹을...........말이 씨가 된다고, 냉하상에게 했던 말이 또 다시 현실이 되었다. 풍운은 침대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찬린이 살며시 일어나 풍운을 바라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픈 과거 때문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살았다. 하루, 하루의 삶도 힘들데 남자를 생각할 여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풍운을 보고 있노라니 한 번도 경험에 보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자신을 믿고 따르던 당주와 향주들의 죽음.........평소 같으면 분노(忿怒)에 치를 떨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평온하다. 눈앞의 남자가 복수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다.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고 한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모양이다. 풍운의 볼을 만져본다. 한 없이 감미롭고 부드럽다. 풍운이 손을 잡는다. 잠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살며시 손을 빼보려 하지만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잠시 망설이다가 상체를 굽혀 풍운에게 기댄다.
“고마워요. 저를 여자로 만들어 줘서.”
손이 아프다. 풍운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뺨을 따고 흐르는 눈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풍운이 벌떡 일어나며 소매로 눈물을 훔친다.
“더 주무세요. 식사가 준비되면 깨물게요.”
풍운이 돌아선다.
“혜경에게 들었어요. 당신께 지혜롭고 아름다운 부인들이 많다는 걸·······당신이 없는 동안 혜경이와 이야기 했어요. 저와 혜경이········당신께 부담 드리고 싶지 않아요.”
“.................”
“당신을 존경하고 흠모(欽慕)합니다. 저희들은 그것으로 만족해요. 당신께 부담스러운 존재로 남긴 싫어요.”
“진짜 이기적이네. 당신들만 편하면 그만이야. 나는..........난 뭐야. 난 그냥 당신들이 정해주면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꼭두각시야.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여. 당신들 맘대로 해도 될 만큼 하찮은 존재야.”
“오.......오해예요. 우린 그냥 당신을 편하게..........”
“그만하세요. 판단은 제가 합니다. 당신들 맘대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마세요.”
“죄..........죄송해요.”
이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데, 감정이 격해져 자신도 모르게 혐한 말이 튀어 나왔다. 풍운이 돌아서 선다. 찬린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살며시 다가와 찬린을 안아준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께 상처 주려 한말이 아닌데........제가 잘못했어요.”
순간적으로 울컥하던 감정이 녹아내리며 한 없이 무너진다. 이 남자..........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비록 어제 처음 만났지만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남자다.
“후회하지 않아요. 하룻밤 사랑이라도 당신을 평생 기억할게요.”
“...........”
풍운은 말없이 찬린을 안아주다가 살며시 뒤로 물러나 밖으로 나간다. 혜경도 찬린과 풍운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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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을 맡은 칠마(七魔)는 차갑게 식은 5구의 시체를 보고 이를 갈고 있었다. 벌써 30명이 넘게 당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범인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10명이 배화교 무공인 절정마검에 당했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또 절정마검에 당한 거야. 벌써 몇 번째야.”
이번에 당한 놈들은 팽가가 운영하는 전장에서 깽판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당했다.
“5명이 한 번에 당했다는 말이지. 그럼 한 놈이 아니라는 말인데, 대체 누굴까? 절정마검을 극성으로 익힌 살수라..........혹시 이사(二死). 아니지. 일사(一死)도 가능해. 모르겠다. 하여튼 십이사(十二死)놈들이라는 것은 확실해.”
대충 범인의 꼬리는 잡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칠마(七魔)는 무사들에게 개별행동을 자제시키고 최소한 10명씩 조를 이루어 다니도록 했다. 상대가 십이사(十二死)라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팽가의 가주도 요즘 들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다. 벌써 10명이 넘는 가솔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 처음에는 배화교 놈들의 소행인지 알았다. 그런데 살해당한 가솔들 전부가 배화교에 협력하자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배화교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사람을 죽일 이유는 없다. 그럼 누굴까? 누가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일까?
하북성에 있는 대부분의 개방분타가 일마(一魔)가 지휘하는 배화교에 의해 초토화 되었다. 이제 하북성에는 천진에 있는 총타와 요녕성에 가까운 몇 개 분타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일천의 기마병을 이끌고 금이장군이 제남에 도착했다. 악양왕의 명령으로 풍운을 잡아들이기 위해서다. 금이는 도착하자마자 관군의 협조를 받아 제남일대의 객점을 수색했다. 풍운이 대륙상회의 태상장로이니 회원들의 협조를 받아 객점에 머물고 있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넓은 제남에서 풍운을 찾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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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준비가 끝나자 점소이가 사람들을 부른다. 지향과 희린이 가장 먼저 내려오고, 금막비 부부와 도치부부가 내려왔다.
“배고파 죽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무룡이 툴툴거린다. 밤새도록 술을 마셔서 속이 쓰린 모양이다. 풍운이 찬린과 혜경을 대동하고 계단을 내려온다.
“혜경이.........혜경아.”
금막비에 옆에 있던 당령이 황보혜경을 발견하고 달려와 손을 잡는다.
“당령. 네가 어떻게 여기에.............?”
“소문 못 들었구나. 하여튼 반갑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혹시 고모님.”
“응~ 인사해. 우리 고모야.”
“안녕하세요. 사천당가의 당령입니다.”
당령이 웃으며 인사하자 찬린은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인사한다.
“황보찬린이에요.”
“혜경아. 이리와~ 소개 시켜드릴 분이 있어.”
당령은 혜경의 손을 잡고 금막비 앞으로 끌고 간다.
“비랑. 인사하세요. 황보세가의 황보혜경이에요. 이쪽은 지아비 되시는 금막비님이야.”
“아........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그동안 령이가 외로워했는데 혜경님이 오시니 화색이 도네요.”
당령은 혜경과 찬린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자신의 옆에 앉힌다. 금막비 말대로 그동안 이야기 할 벗이 없어서 외로웠던 모양이다. 찬린과 혜경의 소개가 끝나자 악무룡이 이희린을 소개하고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
“식사들 하시죠.”
풍운은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는 혜경과 당령을 힐끗 쳐다보고 묵묵히 식사를 한다. 그나마 당령이 있어서 자칫 어색해질 수 있었던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도치, 악무룡, 금막비, 사우, 곽지향, 마수님은 회의실로 집합하세요.”
식사가 끝나자 풍운이 십이사(十二死)들만 따른 부른다. 평소 모두가 회의에 참석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풍운이 먼저 회의실로 올라가자 도치행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풍운을 따라간다. 회의실에 집합하자 풍운이 회의실 문을 닫는다.
“오늘 여러분만 뵙자고 한 것은 황보세가 때문입니다. 혜경과 찬린이 듣고 있는데 황보세가 문제를 논의하긴 거북하죠. 그렇다고 그녀들만 별도로 내보내기도 곤란해서 말이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제 일 좀 설명해 주세요. 우리는 일사(一死)님께서 찬린님과 혜경님을 구출하셨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마수의 질문에 풍운은 미간(眉間)을 찌푸리며 잠시 입을 다문다. 혜경과 찬린과 있었던 일을 여과(濾過)없이 밝히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찬린과 혜경은 어제 일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황보찬일의 치부(恥部)가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을 것이다.
“황보가주와 오마(五魔)가 짜고 찬린을 비롯한 반대파를 제거하려 했어요. 혜경은 멋모르고 따라왔다가 당한 경우라고 보시면 됩니다. 당주와 향주들을 제거한 오마(五魔)는 찬린과 혜경을 생포(生捕)했고, 저는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그녀들을 구출했어요. 그런데 찬린과 혜경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독(毒)에 중독되었고, 가까운 동굴에서 그녀들을 치료하고 오느라 늦어지게 된 겁니다.”
풍운의 설명은 무척이나 간략했다. 찬린과 찬일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원한도 생략하고, 동굴에서 있었던 일도 생략했다.
“찬린을 따르던 당주와 향주들은 모두 죽은 겁니까?”
“모두 죽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배화교와 끝까지 항전(抗戰)하자는 세력이 전멸(全滅)했으니 이제 황보세가가 배화교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군요. 일사(一死)님. 그냥 지켜보실 겁니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특단의 조치라면 가주와 그를 따르는 위정자들을 제거하자는 뜻인가요?”
“모용세가의 선례가 있지 않습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래 바로 이거야. 잡것들........그런 싸가지 없는 놈들은 모가지를 쳐내야 해.”
도치가 입에 침까지 튀기며 열변을 토한다.
“무식한 새끼. 무조건 때려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돼. 가주와 그를 따르는 대가리들을 모두 죽어버리면 누구에게 황보세가를 맡긴 건데, 황보찬린. 황보혜경. 그녀들 능력으로 혼란에 빠진 황보세가를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아.”
도치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무대포정신의 악무룡이 딴죽을 건다. 세상 오래살고 볼 일이다.
“뭐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거야 똑똑한 마수가 방법을 찾아내겠지. 그러니까 너는 입 좀 닫치고 있어.”
“이런 쌍~”
도치가 버럭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하면 한 대 치겠다.”
“뭐하는 거야. 두 사람 다 그만두지 못해.”
풍운이 소리치자 도치와 악무룡이 입을 다문다. 풍운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저번에 마수님께서는 가주를 죽이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말씀을 하고 있어요. 찬린을 비롯한 반대파가 죽었기 때문인가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뭐죠.”
“가주는 이미 오마(五魔)와 짜고 찬린파를 제거했어요. 한번 발을 들어놓은 이상 이제 와서 발을 빼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해 개과천선(改過遷善)하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은 뭐죠.”
“가주를 비롯한 위정자들을 제거하고 찬린님께 황보세가를 맡기는 겁니다.”
“꼭 가주를 죽어야 합니까?”
의외의 반응이다. 지금까지 향상 마수의 의견을 존중하던 풍운의 모습이 아니다.
“꼭 살려야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혜경소저와 약속했어요.”
한 마디 말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세한 설명은 안하지만 혜경과 약속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제 밤부터 풍운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사(一死)님께서 그런 약속을 하셨다면 그에 대한 대안도 마련하셨겠죠.”
“직접 황보가주를 만나서 단판을 짓겠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마수가 계속 추궁(追窮)하듯 질문한다.
“그만해. 일사(一死)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시잖아.”
평소 말이 없는 사우의 말에 마수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간다.
“일사(一死)님이 만난다하여 달라질 것이 없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차라리 황보세가를 그냥 두고 오마(五魔)일행을 몰아낸다면 모르죠. 하지만 그것도 문제는 있습니다. 우리가 배화교 놈들을 몰아낸다고 해도 위협이 있으면 가주는 또 다시 배신할 겁니다. 쉽게 말해 가주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희망이 없는데, 가주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미리 단정하지 마세요. 가주를 만나본 다음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풍운은 말에 마수는 길게 한숨을 쉬고 주위를 돌아본다. 향상 싸우자고 주장하는 도치는 머리만 긁적거리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만하라는 눈짓을 보낸다.
“일사(一死)님의 뜻이 정 그렇다면 저도 더 이상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험험~ 나도 한 마디 하자. 황보가주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악독한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황보명과 황보혜경도 중원을 배반할 사람들은 아니야.”
무룡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무룡은 칠대세가 중 벽력세가 출신이다. 칠대세가는 오래전부터 유대관계를 맺으며 많은 왕래가 있었다. 다시 말해 무룡은 어릴 적부터 황보명과 황보혜경을 지켜보았다는 말이다.
“자~ 일단 의견이 좁혀진 것 같네요. 일사(一死)님께서는 가주를 만나보시고 우리는 오마(五魔)의 동태를 감시하겠습니다. 회의 끝내죠. 자~ 모두 일어나.”
금막비가 서둘려 회의을 끝내고 일어나더니 미적거리고 있는 도치나 악무룡들을 밖으로 끌어낸다. 이제 마수와 풍운만 남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심했죠. 일사(一死)님께서 말씀하시기 곤란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했어요.”
“.............”
“지금 있는 사실만 놓고 본다면 황보가주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모용세가나 장백파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죠. 만일 제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다른 분들이 반박할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알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황보가주를 만나시기 전에 한 가지 참고하실만한 이야기가 있어요.”
“뭐죠?”
“뒷산 호랑이보다 당장 코앞에 나타난 늑대가 더 무서운 법입니다. 다시 말해 배화교가 더 무서운지 일사(一死)님이 무서운지 비교해주면 설득하기 수월할 겁니다.”
“충고 고마워요.”
“그럼 저도 이만.”
마수가 나가고 풍운은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혜경과 찬린이 원하지 않기에 굳이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눈치 빠른 마수는 그걸 알고 다른 이가 반박하지 못하도록 연기를 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찬린과 혜경은 당령에게 잡혀 있었다. 그동안 말할 상대가 없어서 외로웠던 당령이 쉼 없이 떠들고 있다. 하지만 혜경은 당령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십이사(十二死)는 분명 가문의 일로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풍운이 약속했다고 하지만 결론이 어떻게 될지 불안을 하다. 풍운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비랑 어떻게 됐어요.”
“뭐가?”
“황보세가 때문에 회의하셨잖아요.”
“아~ 그거. 일사(一死)님께서 가주를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어.”
“그럼 아직 확정된 것이 없는 건가요?”
“글세.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일사(一死)님께 가주를 살려주자는 쪽이니 어떻게 잘 되겠지.”
“다행이네요. 혜경이가 많이 걱정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혜경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일단은 안심이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으니 더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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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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