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이 '검사 수사범위 확대'해 법치 파괴
2022년 8월 11일 법무부는 검찰청법의 하위 시행령인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바꾼다고 밝혔다. 개정 검찰청법 제4조 제1항 제가호. 1목이 검사의 수사 범위를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하니 그 하위 시행령에서는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의 구체적 죄명들이 열거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법무부가 최근 발표한 시행령 개정안에는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선거범죄 중 ‘매수 및 이해유도’ ‘기부행위’가 ‘부패범죄’에 포함됐다.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 ‘경제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범죄’가 ‘경제범죄’ 범주 안에 들어갔으며, ‘무고·위증죄’는 ‘…등’ 안에 포함됐다.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범주에 가능한 많은 하위 범죄를 욱여넣고, ‘등’이라는 글자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검사 세상’ 재림 노리는 ‘…등’의 최대한 확장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법무부는 “공직자 범죄 중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등은 뇌물 등과 함께 부패범죄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선거범죄 중 ‘매수 및 이해유도’ ‘기부행위’ 등은 금권선거의 대표 유형이므로 ‘부패범죄’에 포함되며, ‘마약류 유통 관련 범죄’와 서민을 갈취하는 폭력 조직, 기업형 조폭, 보이스피싱 등 ‘경제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범죄’도 ‘경제범죄’에 포함된다. ‘무고·위증죄’는 사법질서를 해하니 검사가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며 법문에 ‘등’이 있으니 괜찮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부패범죄’ ‘경제범죄’ 의미의 최대한 확장은 검찰 수사권을 점진적으로 축소하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특히 이목을 집중시킨 부분은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등인데, 이 두 범죄는 개정법 이전까지는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에서 ‘공직자 범죄’에 규정돼 있었다. 개정법에서 공직자 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을 삭제하면서 두 범죄는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에서 제외됐는데, 법무부가 시행령을 통해 이를 문득 ‘부패범죄’에 집어넣고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로써 시행령은 모법을 다시 개정해 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지난달 31일에는 형사소송법의 하위 시행령인 ‘수사 준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위 시행령 개정안이 발표되자 검사가 ‘보완 수사’와 ‘재수사’ 명목으로 개정법 이전과 같이 거의 무제한의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무력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개정안을 보면, 제59조 제1항 제1호에서 ‘사건을 수리한 날(이미 보완 수사 요구가 있었던 사건의 경우 보완 수사 이행 결과를 통보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경과한 경우’에는 검사가 직접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상한 일이다. 검사가 마음속으로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다음 곧바로 경찰에게 보완 수사를 요구하지 않고 한 달 동안 침묵하고 있으면 수사권이 검사에게 넘어온다니…. 제2호에서는 ‘사건이 송치된 이후 검사에 의하여 해당 피의자 및 피의사실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보완 수사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검사는 직접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다고 정했다. 이것도 이상한 일이다. 검사가 수사권을 갖기 전에 일단 보완 수사를 시작한 후 상당한 정도의 수사가 이루어지면 해당 사건의 수사권이 넘어온다? 수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수사를 시작하면 수사권이 넘어오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국민 권익을 위해서…”란 독재시절 수법 아닌가
제64조 제2항 제2호는 ‘재수사 요청한 사항에 관하여그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역시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고 검찰이 해당 사건의 수사권을 갖는다고 정한다. 그 결과 경찰이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종결한 사건도 검찰은 얼마든지 다시 꺼내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이때 반드시 경찰의 사건 종결이 위법하거나 부당하지 않더라도 단지 ‘검찰의 재수사 요청과 그에 대한 불이행’이라는 주관적인 요건만 갖추면 종결된 사건이 되살아난다.
이런 수사 준칙 개정안이 시행령을 통해 개정 형사소송법을 무력화시키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다음 날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은 자신의 고소·고발사건이 더 빨리 처리되길 바라고 억울함을 풀 수 있게 자기 말을 더 들어주길 바란다. (중략) 수사 준칙 개정으로 검찰의 권한 또는 경찰의 권한이 확대되느냐가 아니라 개정 전후 국민의 권익이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가 이슈의 본질이다.”
법무부 장관이 상위법에 어긋나는 시행령을 제정하며 국민을 핑계로 댔다. ‘국민이 원한다’ ‘국민의 권익이 좋아진다’는 명분으로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하는 일은 독재 시절에 쓰던 수법이다.
개정법 시행 이후 경찰의 사건 처리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치고 시민 불편이 발생한다는 것만으로 시행령을 통해 모법을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어떤 제도이든 시행 초기에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니 행정부는 경찰 인력 확대와 시스템 정비 등을 통해 불편을 해소하면 된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현 행정부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 국회가 만든 법안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 기저에는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절대적인 악법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고, 악법은 시행령이든 뭐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위험한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하는 법무부 장관의 준법 파괴
법대에 들어가서 처음 배우는 법언은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법’이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국제적 기준에 한참 뒤처지는 절대적 악법이 아니다. 시민 중 어떤 이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일 수 있는 ‘상대적 악법’을 말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법이 이에 해당한다. 모든 사람이 옳다고 보는 절대 법이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은 악법으로 여기는 법이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그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존중하고 준수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내가 법대 초년생 때, 미처 육법전을 펼치기도 전에 배운 법언의 의미다.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은 세 건의 헌법재판을 거쳐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판단을 받았다. 비교법적인 측면에서 살펴봐도 개정법은 오히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던 이전 제도보다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 법무부 장관은 개인적으로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악법으로 여기더라도 그것이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시민으로서, 공직자로서 법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한다. 누구보다 법치주의를 보호하고 준법의식을 고취해야 하는 법무부 장관이 아닌가. 다른 부처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모법을 파괴하는 시행령 제정을 통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국민을 들먹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