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2:17-18, 왜 성령충만 받아야 하나.
마귀 사탄 앞에서 가장 강한 자. 그는 성령충만한 자입니다. 우리의 지혜로움이 사탄 앞에서는 종이처럼 아무 것도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의 재료는 흙덩어리에 불과 합니다. 흙덩이가 강해봐도 결국 흙덩어리일 뿐입니다. 그 흙덩어리가 강하려면,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릴려면 그 어떤 것으로 무장하여야 되는데. 바로 성령으로 충만, 무장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무서워 하는 것,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성령님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무능력해 보이고 보잘것 없어 보여도 그가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무장 하였다면 그는 능력있는 자이고 마귀 권세를 꺽어 내고 제압해 버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승리하는 자는 성령으로 무장하고 의지하는 자인 것입니다.
사탄이 말세에 역사하는 정도는 은혜의 시대에 장난치는 것 과는 다릅니다. 왜그럴까요? 말세에는 삼킬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말세에는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증거가 삶속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요? 똑똑하지 않아 보이는데 그가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즉 미련해 보이는데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뱀보다 미련하면 그는 뱀의 밥입니다. 그러니 먹히지 않고 이기려면 뱀보다 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 사탄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뒤를 이어 사역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라 하실 때 신34:9절에서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시51:10절"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도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령이 떠나지 않게 하소서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다윗이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을 누가는 증언합니다. 행1:16절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또 갈4:29절을 보면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이게 누구이죠?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육체를 따라 난 자, 이삭...영을 따라 난 자. 하나님의 계보는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아니라 영을 따라 난 자를 통해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번도 이스마엘의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크고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하나님은 그 성전을 인정하지 않셨습니다. 성도도 많고 제사도 잘 올려 드렸지만 말씀하십니다. 헐어 버려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성전을 떠나 마가의 다락방으로 가셔서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120명의 성도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그 크신 하늘의 뜻을 맡기셨습니다.
지금도 말씀 하십니다.
이삭 같은 성령의 사람, 말씀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라고, 그리하면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도우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입술의 권세를 더하십니다. 성령을 부으시고 능력과 말씀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그래서 약한 자가 강하게 되어야 하고 성령 충만하게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엡5:18절 "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 명령하십니다. 또한 골3:16절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즉 말씀도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말씀충만하면 믿음의 은사가 임하는데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 하나는 내적인 것, 즉 말씀과 구원이 확실하게 믿어지고 그래서 주님께 헌신을 하게 되고 성령의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고전12:4-12절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병을 고치고 귀신이 쫒겨 나가고 방언을 하고 통변을 하고 예언을 하고, 이 모든 것들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믿음의 능력, 은사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면 겸손하고 성숙해져야 하고 그래서 거룩함에 들어가야 하고 경건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능력은 나타나는데 교만하다던지, 탐심이 가득해서 물질을 탐한다던지, 등등은 진정한 성령의 충만함은 아닐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한 성도는 연륜이 쌓일수록 겸손해져야 하고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갈5:1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네. 우리는에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율법아래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를 또한 방종의 기회로 삼아서도 안됩니다. 그런데 '종의 멍에'가 뭘까요? 4장을 보아야 합니다. 4:22절 부터 보면 하갈의 자녀와 사라의 자녀가 등장을 하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종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을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으로, 사라를 통해 낳은 아들을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자유자라 설명을 하면서 5: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15:10절에서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은혜로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이제 그의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자유를 주신 그 은총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의 저주아래로 내려가서 종의 멍에를 메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종이란 자유를 잃어 버리고 속박당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법으로 속박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제는 그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율법아래로 내려가서 종노릇 할 것이 아니고 자유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질문이 생깁니다. 율법을 안지켜도 되나? 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율법이 더이상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5: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벧전4:8절"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성도는 사랑으로서 죄를 이기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하려면 내 의지나 힘으로는 안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죄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는 죄 아래 굴복된 자로 죄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면 '마약'을 하는 사람이 처음에 한번은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강력한 맛에 중독이 되면 그 마약을 하기 위하여 별짓을 다하게 되어 버립니다. 즉 마약의 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강력한 것을 끊어 버려 주신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깨달아지시면 아멘.
그런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죄를 짓는다면 그는 저주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다시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히6장에서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벧전 2:11절에서 사도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제어하는 방법은 성령 충만 받는 길 뿐입니다. 갈5: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갑니다. 완악한 자아는 부서지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바꾸십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나에게는 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그냥 되어 지지는 않습니다. 순종이 따라야 합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떠다 주는 일은 사람의 몫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물의 성분이 바뀔때 아무 요동이 없었을까요? 알수는 없지만 순수한 물이 맛있는 포도주가 되기 위하여는 내면에 어떤 소용돌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려면 그 싸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를 향해 나아가려는 자기 의지를 주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같은 방망이로 오시기도하겠지요, 부수기 위하여, 그러면 아플 것입니다. 또한 말씀으로 다가 오시겠지요, 단단하게 세우기 위하여, 그리고 순종하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게 되기때문입니다. 그 행함이 법으로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행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엡2:21절"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지면 주님과 일치되는 마음을 주십니다. 겔11:19-20절"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유기성 목사님이 이런 글을 쓰셨어요, 죄 안짓는 것이 힘들다구요? 죄 짓는 것이 더 힘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진정으로 성령께서 주인되신 분이 하실수 있는 표현이라 보여 집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성령충만하면 성령께서 내면에 쓴 뿌리를 제거하시고 평안으로 부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강단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말씀에 자신을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리로 가슴까지 차고 넘치는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는 자입니다. 말씀의 권세를 덧입게 하셔서 말의 권세를 받게 됩니다. 결단을 하셔야 합니다. 죄의 종이 될 것인가, 성령의 종이 될 것인가, 불가불 우리는 달려갈 갈 길을 마쳐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거룩한 자가 주의 앞에 서게 됩니다. 주의 성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가, 주앞에 서기 위해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합니다.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행하는 주님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