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든다. 그리움도 시골 감나무의 홍시처럼 익어가는 계절이다. 한결 높아진 하늘에서는 구름이 여러 가지 그림을 만들며 흘러간다. 나뭇잎은 아직도 초록인데 길섶 억새는 벌써 가을을 맞이하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제 시시각각으로 풍경은 가을빛으로 짙어갈 것이다.
거실 벽에 걸린 해바라기에도 가을이 영글고 있다. 남편이 그런 그림이다. 나는 혼자 남겨져, 해바라기 그림을 바라보며 그리움에 젖어든다. 꽃이 태양을 닮아있고 하염없이 태양을 바라보므로 ‘해바라기’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꽃말이 그러하듯이 시도 때도 없이 바라보는 그림은 나에게는, 그리움이다.
요즘의 해바라기는 개량품종으로 꽃송이가 작고 키도 작다. 그림의 작품 소재로서 뭔가 부족하다는 아들의 푸념을 종종 듣는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에는 집집마다 해바라기가 담 너머를 내려다봤다. 큰 얼굴을 살짝 내밀고 세상 구경하는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는 시골 풍경에서 빠질 수 없다. 해바라기 씨가 까맣게 영글어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푹 숙일 쯤이면 친구와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해바라기 씨를 까먹었다. 그 계절 맛이 참 고소했다. 부산으로 이사와 살면서 어쩌다 해바라기를 보긴 했지만 크고 노란 꽃 머리를 흔하게 보지 못했다. 제대로 가을을 만나지 못했던 내게 가을꽃은 코스모스나 국화꽃이 아니다. 노란 얼굴을 내만 해바라기다.
함안 강주 마을에 해바라기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곳 마을의 꽃송이는 토종이어서 엄청나게 크다고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부지에 해바라기 꽃을 조성하여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9월 대낮의 햇볕은 얼마나 더 따가울까.
해바라기 맞이 길을 나섰다. 들판의 벼들은 노랗게 물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길옆 코스모스도 나름대로 하늘거린다. 눈앞에 펼쳐져 스치는 차창 풍경들은 그냥 아름답다. 자연은 어느 능력 있는 인간이라도 겨눌 수 없는 솜씨 좋은 예술가이다. 벼 이삭만으로도 아름다운 계절을 만들어내니 말이다. 아무런 흥미도 희망도 느끼지 못한 나조차 무언가 아름다운 생을 채우고 싶다는 의식이 슬며시 솟아오른다. 그래서 사람들도 여행을 떠나게 되나보다.
강주마을은 함안에서도 한 시간 반이나 더 걸리는 곳에 있다. 초행의 시골길을 찾아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차창 밖 눈길 가는 곳마다 독특한 풍경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마치 액자 속 그림이 밖으로 나온 듯한 풍경에 빠져 있을 무렵 차는 강주 마을 정류장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 해바라기 꽃 축제로 들썩이고 있다. 마주 보이는 언덕에는 해바라기의 노란 물결이 끝없이 일렁이고 있다.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해바라기 숲을 향해 지그재그 언덕길을 줄지어 올라가고 있다. 갖가지 색깔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마치 해바라기 그루로 보인다. 흥은 무리 지어야 하는 법, 관광객들 속에 섞여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언덕배기에는 바람에 날린 노란 물결이 일렁인다. 이국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건만 해바라기 줄기가 같은 방향으로 서 있다. 태양만 바라보는 꽃으로만 알았는데 오지 않는 그리운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애절한 모습 같아 마음에 슬픔이 인다. 구경 온 사람들이 저마다 추억을 남기느라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밭 속을 파고든다.
해바라기라면 고흐의 그림을 떠올린다. 꿈을 추구하는 태양의 색이라고 생각했던 고흐는 노란색에 대하여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뜨겁고 격정적인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이 있다. 그것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희망과 기쁨으로 그는 회오리치듯 꿈틀거리는 힘으로 붓질을 해댔다. 그 열정이 있어 고흐는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현대미술의 토대를 형성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되었다.
남편도 해바라기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그의 작품에 그려진 해바라기는 노한 꽃잎을 떨어내는 완숙기가 지난 늙은 해바라기다. 노란 꽃잎을 떨구고 씨앗을 까맣게 채워 목이 무거워 고개를 숙인 그림이 대부분이다. 터치와 색은 완전히 그의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해바라기가 그의 예술혼을 지켜내고 있듯이 그의 생애도 해바라기 속에 살아 있다. 그런 생각은 나의 그리움 때문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해바라기 숲에 서 있는 아들은 자신이 원하는 작품 구도를 잡아보느라 분주하다. 아들도 아버지와 다른 기법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태양의 꽃을 그려내기를 바란다. ‘님이 그리워 자꾸만 자꾸만 얼굴만 크게 만들고 있다.’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강주마을 언덕에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아직도 뜨거운 태양을 받으며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해바라기는 분명 그리움으로 키를 키웠으리라 여겨진다.
지금 나는 거실이 앉아 캔버스 속 해바라기 그림과 마주하고 있다. 그림 속의 해바라기 꽃들은 그와 함께 행복했던 즐거운 한때를 보여주듯 노란 꽃잎이 미소처럼 화사하다. 말없이 캔버스와 팔레트를 오고가던 그의 손길만 안개 속처럼 뿌옇게 흐려진다.
오늘따라 그 해바라기 화가가 더욱더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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