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운에서 서안까지(2)초왕릉, 하남성 박물관(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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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기계적으로 화장실로 가서 면도를 하고 샤워를 했다. 일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이른 시간에 움직여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식사는 뷔폐식이었는데 먹을 만 했다. 그래도 아침 식사는 빵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계란후라이, 만두, 과일과 주스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에 짐을 가지고 나와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서 나왔다. 버스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린아이가 실수로 유리잔을 깨드린 것도, 탁자 위에 놓여졌던 차 봉지를 열고 사용한 것도 돈을 내야만 했다. 그래도 웃으면서 그 곳을 빠져 나왔고 아이들은 그것을 통해서 세상의 한 부분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렸으나 우산을 사지는 않았다. 그 곳을 출발해서 초릉으로 향하다가 중국인들이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비옷은 군대에서 사용했던 판초우의와 비슷한데 그것을 입고 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워 보였다. 잠시 후 초왕릉에 닿았다.
한나라의 초왕이 말을 타고 오른손에 칼을 든 동상이 먼저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잠시 기다린 후 입장했다. 중국에 와서 첫 번째 만나는 문화재인데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옥으로 만들어진 관, 옥으로 만들어진 옷, 초왕상(超王像), 개인용 금고, 편경과 같은 악기, 창고와 항아리 등을 볼 수 있었다. 중간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경이로움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하남성 박물관을 그 날 오후에 보아야 한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의해서 우리들은 서주에서 초왕릉을 관람한 후 곧바로 정주로 향했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고 있었고 비에 젖은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부대의 행렬이 새롭게 다가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의 도로는 시원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이점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도로가 지나가게 되면 다른 곳에 집을 지어주고 도로를 내니 주민들도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4차선을 난 도로는 시원했고 자전거 왕국처럼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서 안전하게 운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서주를 떠나 정주로 가는 길옆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새롭게 건설되는 아파트나 빌딩의 모습,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오래된 빨간 벽돌집, 색이 바랜 오·육 층의 낮은 아파트, 비를 맞으면서도 쓰레받기와 쓰레기통을 결합시켜서 만든 것으로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들, 우의를 입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직장으로 나가는 사람들, 가끔 버스 옆을 지나가는 다 낡은 택시들을 보면서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의 화단에는 빨강과 주황 그리고 노랑의 칸나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삼십 분 정도 시내를 달린 버스는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고속도로는 승용차 120km, 버스 100km 제한속도 였으나 중국의 버스 운전사들은 웬만하면 100km를 달리지 않는 것 같았다. 도로변에는 한결같이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그것은 경제림이라고 했다. 획일적으로 심어놓은 것이 답답하기도 했다. 나무는 대개 고속도로에서 3-4미터 떨어져서 대 여섯 줄을 심어놨는데 그 뒤로는 끝없는 옥수수 밭이 펼쳐져 있고 벼를 심은 논의 끝도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 고속도로를 달린 후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다. 먼저 화장실에 들려 볼일을 보았고 식사를 기다렸는데 고속도로 휴게실의 식사가 좋지 않다며 시내에서 식사를 하자고 한다. 우리들은 편의점을 들렸는데 문에 종업원이 두 명이 서서 한 명은 나가는 문을 열어주고 다른 한 명은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국은 달랐다. 국가에서 고용안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보통 샐러리맨들의 월급이 지역이나 회사의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중국 돈으로 200원-300원(260,000-390,000)정도라 한다.
그 곳을 출발해서 계속 고속도로를 달렸다. 잠시 후 수십 수백 만평은 될만한 사과 과수원이 나타났다. 우리 나라의 과수원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인데 나중에 사과를 먹어보았는데 우리 나라의 사과보다는 훨씬 맛이 없었다. 하남성에 가까워질수록 논이 많아졌다. 도로 옆의 논에는 가끔 연꽃을 볼 수 있었고 낚시를 즐기는 여유로운 강태공의 모습, 개울에 설치해놓은 그물, 꽃을 피운 목화밭 등을 볼 수 있었다. 한참 고속도로 위를 달린 다음 우리들은 다시 한 휴게소에 닿았다. 그 곳에서는 과일을 파는 행상이 있었는데 사과, 배, 자두, 대추, 키위, 수박, 망고까지 팔고 있었다. 일행중 한 명이 대추를 사서 돌렸는데 우리 나라의 대추를 생각하면서 씹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푸석푸석하면서 단맛은 전혀 없는 밋밋한 맛이었다. 버스는 그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옛 중국 최초의 은나라 도읍이 있던 곳으로 하난셩 중부에 있는 성 소재지로서 교통의 요충지인 정주에 닿았다.
하남성 박물관에 버스를 주차한 후에 우리들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 한 음식점에 들렸다. 나중에 발견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그 곳에서의 음식은 맛이 있었다. 느끼하고 향내가 나는 중국음식의 일반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먹는다면 그리 많은 거부감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녹차를 물처럼 마시는데 녹차가 떨어지면 종업원이 미소로 잔을 채워준다. 그리고 맥주나 콜라를 마시면서 느끼한 맛을 중화시켜준다. 아, 벌써부터 김치가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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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후 하남성박물관에 닿았다. 하남성 박물관은 중국의 초기 박물관중의 하나로 1927년에 세워졌고 1998년 5월1일 정식 개방이 되었다. 앙소(仰韶), 용산(龍山) 문화의 신석기 시대 출토품과 시내의 상성 유적으로부터 출토된 청동기, 석기제의 주기(酒器) 등을 전시하고 있고 1000점 이상의 이런 고대사 관련 유물과, 혁명사 관련 유물로 분리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총 수장품은 약 100만 점으로 중국 제일의 박물관이라고 한다. 내부에서는 후레쉬를 터트리지 않고 사진촬영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을 어기면 벌금을 문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중에 가끔 후레쉬가 터지는 모습을 발견했지만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문화재 보호라는 점에서 후레쉬는 터트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은 3층으로 되어있는데 층별로 전시물을 전시하고 관람객들은 맞고 있었는데 2층에서 공연이 있어 그것을 먼저 보기로 했다. 공연실에는 백여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미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서 중국의 모습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비파, 편종, 편경, 북과 이름 모를 중국악기로 연주를 했는데 그 곳을 메운 관람객들이 숨죽이며 하나가 되도록 했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로 답례를 했고 공연은 30분 정도 계속되었다. 아쉬운 것은 중국어를 이해할 수 없어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과 연주자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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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후 1층부터 3층까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을 했지만 그저 머리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중국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들었지만 때늦은 일이었다. 기념품 판매소에서 하남성박물관 소개책자를 한 권 샀다.
관람을 마친 후에 우리들은 시내를 잠시 달려 숙소인 한 호텔(紅珊瑚酒店)에 닿았다. 1103호에 짐을 풀고 나서 시내구경을 하러 갔다. 정주는 인구 300만의 도시로 하남성의 성도로 황하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옛날부터 화북과 화남을 맺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지금도 중국을 열차로 여행하면 한 번은 통과해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시내의 중심에 나오니 마치 서울의 명동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과 백화점 그리고 아파트와 상가를 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으나 교통 질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신호를 무시하고 통과하는 자동차를 볼 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도시처럼 도로는 잘 정비되어있어 우리 나라와 비교를 해보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백화점에 들어갔으나 살만한 물건이 없었다. 물건의 가격만 비싸고 질이나 디자인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구경만 하고 지하 슈퍼마켓에 들렸다. 저녁에 호텔에서 먹을 과일을 사기 위해서인데 메론과 사과를 샀다. 메론은 깎아서 포장을 해서 팔고 있었는데 포장한 것 하나에 1원을 받아 130원 밖에 되지 않았고 사과도 비싸지 않았으나 호텔에서 먹어보면서 너무 맛이 없어서 다시는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했다. 식사는 다른 호텔의 레스토랑을 이용하였다. 닭고기, 감자, 야채요리, 버섯 요리 등이었는데 맛은 그런 대로 괜찮았고 몸에서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식사를 한 후 호텔로 가서 쉬다가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