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주일) 오전예배
말씀 : 베드로전서 2:13~17
제목 : 국가를 위해 기도하라!
도입 : 국가보훈의 달
6월은 국가보훈의 달입니다. 6.6일은 현충일이고, 6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던 6.25전쟁기념일입니다. 이 나라에 자유가 없고 이 나라에 교회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국가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국가관에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보통 성경에 ‘나라’라고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의미하고 이 땅에서는 교회 혹은 복음의 사역과 하나님의 자녀들의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말씀하는 국가는 이 세상에서의 국가를 말합니다. 즉 왕이 통치하고 백성이 있고, 권세가 있는 이 땅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같으면 우리 대한민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라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이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이 땅의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안전해야 우리가 신앙생활도 평안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아멘
첫째, 위의 권세에 순복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늘 천국 시민권자이고 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또한 이 땅의 국가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3에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간이 만든 제도’라고 했습니다. ‘제도’라는 말은 ‘크티스’라는 말인데 원래의 뜻은 ‘창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조직 등을 말합니다. 그 제도에 순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땅의 국가나 사회가 만든 법과 제도를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피조물로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을 통치하도록 위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든 제도나 사람들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의 질서에 따르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라고 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왕이 통치하였습니다. 그래서 국가를 통치하는 왕에게 순복하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위의 왕의 권세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왕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1에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땅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의 국가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베드로전서를 쓴 기록자는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의 사도 베드로가 사역할 당시에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라고 하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을 합니다. 유대인 이스라엘도 로마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국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이 위의 왕에게 순종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왕으로 하면 로마제국의 황제를 말합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치적으로는 적대국일 수가 있습니다. 로마가 무력으로 유대를 점령하고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위의 권세에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위해서 권세와 질서에 순종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일 큰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확장을 위해서 질서에 순복하는 것이 맞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14절에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총독은 ‘헤게모신’인데 그 뜻은 ‘방백’을 의미합니다. 즉 지방장관을 의미합니다. 그 초대교회 시대에는 지방의 지역을 다스리는 자가 총독이었습니다. 왕의 명을 받아 유대나 사마리아 등을 다스리는 자는 총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총독에게 순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조금전에 말씀드렸듯이 복임이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우리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정부의 권세에 순복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그 지도자들을 통해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방장관은 도지사 혹은 시장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 지역을 다스리며 선행을 행하는 자에게는 포상을 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경찰을 보내서 체포를 하고 징벌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문장 속에 이 말씀이 있습니다. 13절에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라고 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해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말씀은 주님의 뜻을 벗어나는 일에까지 순종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를 거쳤습니다. 그 시대에 기독교가 초창기에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를 기점으로 일제는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강요했습니다. 즉 신사는 일본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서울 남산을 비롯해서 전국 중요도시에 신사를 만들고 거기에 조선사람들을 동원시켜서 절을 하게 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조선 사람들이 절을 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노회나 총회에서 이것은 우상이 아니고 국가예절이라 하여 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에 저항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우상을 숭배하게 하는 일에 가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투옥되기도 하고 심지어 순교자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모아놓고 조례할 때에 동쪽을 향에 절하게 했습니다. 동쪽에 일본천황이 있는데 당시 천황은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요배를 시켰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학교 다닐 때 동방요배를 하지 않아 학교에서 쫓겨나고 나중에 다른 학교에서 공부하고 신학공부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국가 권력이나 제도가 강요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면 순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동성애 문제입니다. 이 사회의 일부 사람들이 동서애는 소수의 인권이라고 주장하며 국가법에 동성애 결혼을 합법화하려고 수없이 법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 기독교는 결사적으로 반대하여 막아냈습니다.
아무리 국가가 권력이 지도자들이 이런 것을 법으로 만들려고 하고 일부 사람들이 퀴어축제를 하며 인권이라고 홍보를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들은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엄연히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결혼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자녀들을 통해 복을 주십니다. 또한 동성애는 죄이며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 무서운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동성애가 만연했던 소돔과 고모라와 수많은 나라들이 멸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이런 것들을 막아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자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
16절에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유자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심판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 안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은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마귀의 억눌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주안에서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고 마귀와 사탄의 옭아매는 그물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케 됩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두렵고 겁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으로 인해 주 안에서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당시 자유자이거나 종의 신분이라도 영적으로 자유자입니다.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있어서 노예의 신분 중에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신분은 노예의 신분이라할지라도 그들은 영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아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자유인인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 자유를 악을 가리는데 사용하지 말고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죄사함받았다고 해서 그 자유를 죄 짓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자유를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의 사역자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를 위해서 우리의 자유를 기꺼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아멘
예화) 디보션
디보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40년대에 이 흑인 제시라는 사람이 미국 최초로 비행장교가 됩니다.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미국 흑인들 중에 처음으로 전투비행사를 양성했습니다. 최초의 흑인 전투비행사가 제시입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한국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톰이라는 사람과 함께 압록강을 폭파합니다. 중국군이 참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전장에서 폭탄투하로 공을 세웁니다.
그러다가 결국 중공군이 참전하여 함경도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이 철수작전을 합니다. 미해병대를 비롯해서 연합군들이 철수하여 흥남부두에서 집결하여 배를 타고 철수를 하게 됩니다. 그 군인들이 흥남으로 오게 하기 위해 적군을 막고 따돌리게 됩니다. 그 때 동해에서 미함공모함에서 전투기가 수없이 뜨게 됩니다. 그 때에 제이와 톰은 이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시는 사명을 감당하고 그리고 기체에 문제가 있어서 눈밭에 비상착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착륙하여 다리가 끼어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톰이 함께 착륙하여 구하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흑인 장교 제시는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미군 비행단은 철수합니다. 이 소식을 고국의 아내에게 전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흑인병사들이 10만 명 정도 한국전쟁에 투입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흑인 병사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은 굳이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아도 될텐데 이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우리의 자유를 지켜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새겨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흑인 병사들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워주었다는 것입니다. 디보션이라는 말은 헌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 땅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헌신을 한 사람들입니다.
15절에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행으로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기독교에 대해 오해를 하고 비방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국가에 성실하게 헌신하고 또 선한 행실을 할 때 그들이 비방을 거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로 수없이 많이 이 땅에서 빛을 나타냈습니다. 많은 경우 고아원이나 양로원이나 장애자복지원 등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운영해 왔습니다. 지금은 여러 단체에서 운영을 하지만 그래도 기독교에서 70% 이상을 운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를 위 빛을 나타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멘
결론) 이 땅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
무엇보다 이 땅 나라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나 이 땅에 살아가는 자로서 우리가 나고 자란 이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이 땅이 복된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이 나라가 안전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복음이 흥왕되어 이 땅 백성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존재합니다. 뿐만아니라 이 땅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아감으로 우리도 함께 평안으로 믿음생활 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 죄악이 사라지고 공의와 정의가 강같이 흐르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도록 기쁘고 복된 나라가 되도록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