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오는 봄 가는 봄>/구연식
봄은 만물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기지개를 켜는 시작이다. 봄은 아담과 이브의 사랑놀이가 시작되어 온 천지 수채화 화폭에는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지는 페스티벌이다. 어미는 모성애의 본능으로 식음을 전폐해 가며 가슴으로 토렴해 낸 포대기를 장만하여 새끼들 요람 준비에 바쁘다. 그래서 생명체들은 오는 봄을 기다리고 가는 봄을 안타까워하는가 보다.
봄의 꿈틀거림은 하늘에서 땅 위에서 그리고 물속에서도 약속이라도 했는지 달력에 표시가 없어도 조물주의 봄 시작을 알리는 빅 벤 종소리가 일제히 지구촌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다. 파란 잔디밭 하늘의 창공에는 천사들이 하얀 날개를 펴고 목화솜 궁둥이를 실룩거리는 양 떼들을 몰고 있다. 은하수 샘터에서 임신하여 배가 부르고 젖은 퉁퉁 부러 기우뚱 거리며 힘겨워하는 어미 양을 보듬어 주면서 겨우내 갈증의 목 축여 주기에 바쁘다.
행운의 네 잎클로버가 지천인 토끼풀 들녘, 가르마 같은 길에는 전생에 무슨 업보가 무엇이 그리도 질긴지, 시시포스의 후예인가 자기 몸뚱이보다 더 큰 바윗덩어리 같은 쇠똥 뭉치를 땀을 뻘뻘 흘리고 지친 한숨을 몰아쉬며, 앞발은 땅을 짚고 뒷발로 물구나무서듯 굴리면서 새끼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온종일 들판을 헤매고 있다.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면서도 수시로 언 땅을 비벼보면서 보송보송함을 느끼자, 벌떡 일어나 새끼를 낳고 기를 집짓기를 위하여 맘에 드는 곳이 없었는지 온 밭을 지하철 공사 터널 파듯이 다 헤쳐 놓았다. 농부는 봄 파종한 씨앗을 들쑤셔 놓아서 구시렁거리면서 두더지 터널을 가지런히 밟아서 없앤다. 다음날 밭에 가보니 두더지는 또 원상복구를 해놓았다. 어미의 종족보존 본능은 인간의 이성 위에 있는 것 같다.
실개천 여울목에는 심술궂은 겨울이 남긴 살얼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버들강아지 엄마는 새끼가 행여 감기 들까? 솜털을 모아 장갑을 해주었다. 시냇물의 콜록콜록 기침 소리에 깜짝 놀란 버들강아지는 솜털 장갑을 그만 냇물에 빠뜨렸다, 언 손을 비비면서 냇물에 떠내려가는 솜 장갑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곧 있을 엄마의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웅덩이 얼음 속 산개구리는 경칩이 벌써 지나서야 큰 눈을 휘 둥글리며 늦잠에서 깨어났다. 벌거벗은 언 몸을 벌벌 떨면서 주둥이가 벗겨지는 데도 얼음을 뚫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조금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 알을 낳기 위하여 얼음 속 흙탕물 속에서 손가락이 찢어지도록 수초 덤불 물갈퀴 질에 날이 저물고 있다.
자연의 오묘한 현상과 짧은 봄의 순간을 악착같이 본능을 실현하려는 모성애의 우연은 하나도 없다. 조물주가 수많은 생명체의 종(種)마다 각기 다른 생체 리듬의 칩(chips)을 내장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자연은 먼발치에서 보면 서로 같은 대동소이(大同小異)의 법칙이 존재한다.
이렇게 봄은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생명이 있는 모든 미물은 종은 달라도 조물주가 부여한 생체리듬 속에서 생로병사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어미들은 한정된 봄의 계절에 서두르지 않으면 궤멸한다는 종족 보존의 본능을 위해, 봄은 미물(微物)에서 매머드까지 빠르고 생기 있는 비바체(vivace)의 오케스트라 서곡이다.
순간 속에 지나간 봄, 언젠가는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봄, 그래서 오는 봄이 반갑지만, 그냥 머물다가는 봄이기에 허전한가 보다. 인간의 봄은 이팔청춘이라 했다. 나는 이팔청춘에 몇 곱을 더해야 하는 만춘(晩春)의 봄이다. 그렇다고 땅바닥에 벌떡 주저앉아 가는 봄이 아쉬워서 고무신이 탄내 나도록 양발로 땅을 계속 밀어 치는 생떼를 부릴 수도 없다.
인간의 봄은 조물주로부터 모든 생명체에게 공통으로 물려받은 본능과 후천적 학습에서 얻은 이성(理性)을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으로 봄을 맞이하며 가장 찬란하게 보내야 한다. 그래서 오는 봄이 그렇게 반갑고 가는 봄이 아쉬워서 잡은 봄을 놓지 못하고 가슴 저미며 때로는 청라언덕의 소년이 되는가 보다.
올해의 봄은 철부지의 봄으로 돌아가 한 마리의 꿀벌이 되어 모든 꽃을 찾아가 예쁜 씨앗이 탄생하도록 수정 받히기가 되고 싶다. 꽃님이 주신 꿀 한 방울 먹고 싶지만, 고이고이 모아서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허기를 때우고 입맛을 돋우는 생명수 같은 선물을 하고 싶다. 가장 순수함은 계산된 이성이 섞이지 않은 태초의 본능이다. 이제는 오는 봄 반가이 맞고 가는 봄도 즐겁게 보내며 색동옷 입혀 사르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