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옆에 걸터 앉는 벤치가 있길래 잠깐 앉아 보니 엉덩이가 따뜻하다. 아마 열선을 넣어 따뜻하게 만든 온열벤치 인가보다. 손바닥도 대어보니 따뜻해서 좋다. 그 때 머리 위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데 갑자기 손바닥에 진동이 느껴져 깜작 놀라 손을 떼었다. 비행기가 지나간 뒤 손을 다시 대어보니 진동이 멈추고 아무렇지도 않다. 비행기가 내는 소리의 파동 주파수와 벤치의 고유주파수가 공명을 일으켜 벤치가 진동했나보다. 그렇다 파동은 보이지 않아 없는 것 같은데 공명 작용이 있어 있음을 증명하는 진공묘유의 그것이다. 파동의 작용이 어찌 보면 진공묘유의 현재성이며 동시성이다. 없이 계신 진공묘유의 그분과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재성은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는 각 사람에게 공명함으로 이렇게 나타난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후 그 생명의 파동이 믿음으로 따랐던 제자들과 팔삭둥이 같은 바울에게도 전해져 그들의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파동에 공명함으로 탐진치에 물들어 죽은 것 같던 그들이 십자가를 통과 하여 하나님 안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다시 태어났다. 다시 생명으로 태어나 그렇게 생명으로 옮겨진 그리스도의 숨결로 그들도 함께 숨을 쉬었다. 십자가를 통과하여 생명으로 옮겨져 새로운 존재가 된 그들에게는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숨결이 그들에게 공명을 이르킨 엄청난 에너지로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부터 생명으로 옮겼다. 율법이라는 죽음의 파동 작용 방식이 게브라 정의봉이라면 생명의 파동 작용 방식은 살리는 헷세드 자비와 사랑이다. 그들이 뭇 사람들을 죽음으로 부터 생명으로 옮기는 모든 일은 자비와 사랑이 하였다. 그리스도로 부활한 이천년이 지난 지금 탐진치에 물든 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리스도의 숨결로 하나님 안에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지금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파동이 나에게서 공명을 일으켜 자비와 사랑의 힘으로 흘러 넘쳐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지금 이 공간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의 숨결로 같이 숨쉬고 있지 않다면 그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 지금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는 이것이 탐진치 삼독을 제하고 실존적 한계상황을 벗어나는 하늘의 지혜며 해탈열반이며 진공묘유의 현현이다. 할 렐루야! 빠라상가떼 보디 스바하!
첫댓글 평화!
사랑의 顯現!
생명의 顯現!
"지금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파동이 나에게서 공명을 일으켜 자비와 사랑의 힘으로 흘러 넘쳐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주시는 메시지가 굳세고 강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