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새 키우기
바람이 차다. 영숙이는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보일러 온도를 18도에 맞추고 겨우내 두꺼운 옷과 이불로 지내는 어머니. 시집와서 시작한 일이니 습관이 몸에 쏘옥 배어 있다. 기름 아끼지 말고 훗훗하게 지내시라고 영숙이가 전화할 때마다 누누이 부탁해도 소용없다.
‘기름이 엔간히 비싸야제. 혼차 살면서 기름보일러 팍팍 돌리기 아깝제.’
이런 어머니가 오늘도 발발 떨고 있을 생각을 하니 영숙이는 전화기에 자연히 손이 갔다. 곧 어머니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그런데 엥! 이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늘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던 어머니가 오늘은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새 보러 안 올래? 요새 나 새 키운다.”
“닭도 오리도 아니고 새라고요?”
“그렇다니까. 날아댕기는 새야.”
“그게 뭔 말이어요?”
어머니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딸을 내려오라고 기이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귀가 확 열린다. 웬 새를 키운다고?
“글쎄 말이다. 뒤뜰에 물앵두낭구 있제? 그 옆에다 호박씨 몇 개 묻어서 한 해 잘 따 묵었잖아?”
“저도 몇 개 갖다 먹었지요.”
“근데, 앵두나무 이파리 지고 호박잎도 서리 맞아서 다 비틀어지고 낭께, 앵두나무 우듬 지에 늙은 호박이 두통이나 대롱거리고 있는 거라.”
“그래서요?”
어머니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어찌 말할까?’ 몇 문장을 지었다 부쉈다 했다. 딸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신이 난다.
“허리 꼬부라진 이 에미가 그걸 어찌 알아? 그냥 놨뒀제. 그놈이 초겨울부터 얼었다 녹았다 했는데, 쉬엄쉬엄 자주 눈이 내리니까는 새들이 쳐들어오는 거라.”
“먹을 게 없어서 그렇군요?”
“그렇제. 근데 고것들, 참 이쁘다. 첨에는 거무죽죽한 새들만 오더니, 대보름 지나구부터 총천연색 새들이 호박 통에 머리 박고 난리다. 구경 안 올래?”
“지금은 바빠서 못 가요.”
“야, 하루 종일 동네 할망구들하고 새 똥구멍 쳐다보며, 새소리 듣는 기 억수로 재밌다.”
“요새 마늘밭 안 매요?”
“마늘밭은 벌써 다 맸다. 물고구마 삶아 먹고 껍질 던져 주면 튓마루 가찹게꺼정 다가와.”
“예쁘기도 하겠네요.”
“새 키우기 이렇게 쉬운 줄 몰랐제. 올해는 아예 호박을 네댓 덩이 올리야겄다.”
“동네 새들이 다 우리 집에 진을 치겠네요?”
“새만 오면 존데, 쥐새끼도 와야.”
“동물원이구만요.”
“그라고, 내려올 때 닭 사료 한 포대만 사 온나.”
“닭도 쳐요?”
“아니고, 호박이 학교 종처럼 껍데기만 남았걸랑. 이제 사료 줘야지.”
“아이고 어머니도!”
“그리고 말인데 기똥차게 잘생긴 새 한 마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데, 꼭 돌아가신 니 아버지 같어.”
“아이구, 이제 그만 전화 끊을 게요. 잘 주무세요. 추석 때에나 내려가게 될 거예요.”
영숙이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더 전화기를 잡고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쏟아지겠다. 아버지 같이 느껴지는 새! 영숙이도 그 새가 당장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어머니의 마음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아 마음이 찹찹하다.
그래도 무엇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힘이 넘쳐나는 건 감사할 일이다. 몇 년 만인가? 늘 맥쩍은 외로움이 전화선으로 들려와 마음이 아팠다. 당장은 가지 못해도 이번 추석에는 꼭 가야겠다며 눈을 감는다.
어머니는 추석이 몇 달이나 남았는지 손가락을 꼽아본다. 지금이 이월이니까 아직 감감하다. 뭐가 그리 바쁜지 잠깐 다녀가면 될 텐데. 어머니는 누웠어도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그 잘 생긴 새가 우쩐지 영감겉애. 맞아! 영감이 죽어 새가 된 게야. 어서 날이 밝았으면 좋것다. 그 새 자꾸 보고로.’
추석이 되었다. 딸이 고향집에 들어서니 어머니 얼굴의 주름이 다 펴지며 환해졌다. 딸이 나타나서 반기는 얼굴이 이전에 풍기던 반가움 이상이다. 몸 전체가 기쁨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어머니에게 기쁨을 준 새가 고맙다. 어머니가 새들에게 모이 주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사료를 한 포대 보내주었던 일이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
“호호호. 저게 뭐야?”
눈을 들어 뒤뜰을 바라보던 영숙이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저번 어머니 말한 대로 늙은 호박을 네 덩이나 남겨 놓아 대롱거리는 것이 보였다. 한 겨울 함박눈 쌓일 때까지 물앵두나무 가지가 힘깨나 써야겠다. 물앵두나무 새순이 겨우내 낯선 새소리에 귀를 종긋 세우며 어서 봄이 오기만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