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5,7-21; 요한 15,9-11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4세기에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신 분입니다. 아리우스는, “성자는 성부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 으뜸이지, 성부와 같은 본체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는데요, 이러한 주장을 거슬러 성자께 대한 신앙고백을 확정한 것이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공의회에서뿐만 아니라, 공의회가 끝난 후 니케아 정신을 전파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아 다섯 차례에 걸쳐 17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셨습니다. 당시 아리우스주의자들의 세력은 무척 강했는데, 이들은 그리스 철학으로 그리스도교 교리를 해석하려 하면서, 결국 삼위일체를 거부하게 됩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그리스 철학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교의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는데 자신의 삶을 바치셨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성호경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이 미사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바치는 제사이고, 우리 삶은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삼위일체는 믿을 교리이면서, 우리가 살아야 할 신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 종교의 창시자들이, 자신이 ‘새로운 메시아’라 주장하고 있는데, 대부분 잘못된 삼위일체 교의에서 비롯한 주장들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삼위일체 교의가 확립되지 않았더라면, 교회는 이러한 이단들로 더한 혼란을 겪었을 텐데,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정통 교리를 수호한 성인들은, 교의의 확립뿐만 아니라 교회 일치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기에, 오늘 우리 삶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15장은 사도행전의 한가운데라 할 수 있는데요, 전체가 28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양으로도 그러하고, 신학적인 주제로도 그러합니다. 15장에서 교회는 이방인들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기준이 무엇인가?’ 사실 이것은 사도행전의 주된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신 것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고 계시다’는 것이 사도들의 믿음입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히 이방 민족과 구분된 삶을 살았는데, 이제 그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의 역할보다, 복음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이 여기부터는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15장까지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율법이 무엇인가?’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어떤 이들은 최소한 할례라도 받아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먼저 유대교로 개종한 후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견해는 달랐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믿음과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께서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내 사랑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 사랑 안에 머무십니다. 우리도 당신 계명을 지키면 당신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아버지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교의의 근본 믿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계명을 지킨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 아타나시오
출처: Ikone Athanasius von Alexandria - Athanasius of Alexandria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