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8,1-8; 요한 16,16-20
+ 찬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미크론’(μικρὸν)을 번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게쎄마니 동산에 가신 후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기도하시는데, 여기서 ‘조금’이라는 말에 ‘미크론’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다음 베드로가 하녀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자 ‘조금 뒤’에 다른 사람들이 다시 묻는데요, 여기서 ‘조금 뒤’도 ‘미크론’이라는 단어입니다.
즉 ‘미크론’은 아주 짧은 거리나 잠깐의 시간을 의미하는데, 희한하게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 수난 때에만 이 단어들이 나옵니다.
이에 비해 요한 복음에서는 이 단어가 11번 나오는데, 그중 7번이 오늘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있으면’이라고 두 번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서로 묻느라 세 번 말하고, 예수님께서 다시 “내가 한 말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며 두 번을 사용하십니다.
자, 그럼 제자들도 알아듣기 어려워했던 이 말씀을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키릴루스 교부는 ‘예수님께서 일부러 알쏭달쏭하게 말씀하셨다’는 주해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교부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 제자들이 더 이상 예수님을 뵙지 못하지만, 부활하시면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에 비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 우리가 더 이상 예수님을 뵙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다시 뵙게 될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긴 기간을 ‘조금 있으면’으로 해석하셨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같고, 한토막 밤과도 비슷하오니’라는 시편(89, 4) 말씀이 떠오릅니다.
오늘날 주석가들은 이 두 가지 해석을 합쳐서 이렇게 이해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 우리가 더 이상 예수님을 뵙지 못하지만, 전례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전례를 거행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는 이 전례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말씀의 전례 안에서 당신 말씀을 들려주시고, 성찬의 전례 안에서 당신 모습을 보여주시며,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는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통해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보여주십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가는데요, 당시 코린토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무척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여기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만나는데, 그들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 때문에 쫓겨 온 부부였습니다. 이 칙령은,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들 부부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합니다. 당시 그리스는 육체노동을 천시했는데, 그리스 철학에서 물질과 육체를 나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그랬습니다. 즉 정신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물질과 육체는 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취하셨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 성 요셉과 함께 오랜 시간을 육체노동자로 활동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바오로 사도가 천막 만드는 일을 한 것을 신비적으로 해석했는데요, 물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상의 천막을 만들던 바오로 사도를 주님께서 천상의 천막을 만드는 사람으로 변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으로 가는 길을 가르치고 천상의 복된 거처로 가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천상의 천막들을 지었다’라고 오리게네스는 말합니다.
저는 어제 장시간 운전을 하고 여기저기서 강의를 하였는데요, 그것이 길이신 예수님, 진리이신 예수님을 찾는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우리는 크고 작은 노동을 하였습니다. 그 노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적 활동, 신비적인 활동도 하였습니다.
이 전례 안에서 당신을 다시 뵙게 해 주시는 주님께서는 우리 일상 안에서도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형제자매 안에서 당신 모습을 나에게 드러내시듯, 형제자매들에게는 나의 노동과 봉사를 통해서도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출처: Can I avoid raising support if I am a “tentmaker?” - One Challenge
첫댓글 신부님, 감사합니다.
미사 시간 늦게 도착해서, 성찬전례부터 참석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실 수 있어 행복한 목요일 이었습니다.
평일미사는 의무참례가 아니여서 성찬전례에 참여해도 영성체 할 수 있다는 본당신부님 말씀이 떠올라,
성당로비 본당신부님 목소리 듣고 용기내서 참례했습니다. 늘 좋은 울 신부님 강론은 영상으로 .^^
오~~ 잘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