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8,9-18; 요한 16,20-23ㄱ
+ 찬미 예수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에 있는데요, 환시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코린토에 머물면서 하느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코린 2,3-5)
당시 코린토에는,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많은 웅변가들이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의 언변과 웅변술을 흉내내지 않고 성령의 힘을 드러내려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복음선포자들이 명심해야 할 구절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도 되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믿음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두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많이 생각하기보다 많이 기도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가르치기보다 배우려 해야 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끌고 가서 아카이아 지방의 총독 갈리오에게 고발하는데요, 갈리오는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였던 세네카(BC4-AD65)의 형입니다. 갈리오 총독은 “범죄나 악행이라면 당신들의 고발을 들어 주겠지만, 말이나 명칭,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냅니다.
갈리오의 행동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했을 때,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을 받아 마땅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루카 23,22)라고 말해 놓고도 결국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라고 넘겨버린 빌라도의 무책임한 판결과 무척 대비됩니다.
바오로는 코린토를 떠나 시리아로 가기 전에,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는데, 이는 민수기(6,1-21)에 나오는 나지르인 서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고,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으며, 정결례법을 철저히 지키는데, 이러한 세세한 규칙보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이처럼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후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조금 뒤에 못 보게 되고, 다시 조금 뒤에 보게 된다는 말씀을 여인의 해산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해산하는 여인은 주로 세상 종말 혹은 메시아 시대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성경에 등장합니다.(이사 26,16-19; 66,7-14)
예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이 기쁨은, 아무런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이 주는 고통과 함께 존재합니다.
교황님께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반포하셨을 때, 저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세상의 고통에 아파하시고 민감해하시는 교황님께서 당신의 첫 번째 권고에서 이렇게 기쁨을 강조하실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복음의 기쁨’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웁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오늘 복음 말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자리에 없었으면서도 오늘의 복음 말씀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계 계신다고 해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어려움에서 지켜주신 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 역시 당신의 모든 서간에서 기쁨을 그토록 강조하셨을 것 같습니다. 고통이 끝난 기쁨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존재하는 기쁨을 말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기쁨이고, 주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 역시 오늘 복음 말씀을 듣는 제자들로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Evangelii Gaudium – Parroquia de San Mateo · Madrid (parroquiasanmateo.org)
첫댓글 "바오로는 코린토를 떠나 시리아로 가기 전에,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는것이
바오로 사도가 주님께 봉헌한 후 일을 했다는 것. "
오~~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