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인과를 믿고 있는가?(3)
진정한 인과의 소식은 진공묘유의 소식이 담겨있고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것을 생생히 밝혀주고 있다.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이다. 이런 인과의 깊은 진리를 자각하면 성경에 유다도 베드로도 예수님의 제자로써 죄인이 아니고 세상에 너무도 큰 복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죄복罪福이 둘 아닌 이치를 모르면 우리는 복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행복은 좋은 것이고 불행은 나쁜 것이라고 분별하고 산다.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며 불행을 싫어한다. 그런데 불행을 겪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이 나쁜 것일까? 배고픔을 경험한 사람은 평생 밥맛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한번도 배고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정말 행복할까? 밥맛을 제대로 알지 못할 것이다. 지난날 가난하고 배고팠던 경험이 나쁜 것이 아니고 사실은 너무도 좋은 경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고 행복해야한다고 외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불행하연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면 나는 늘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 것이다. 불행해도 돼. 괜찮아. 불행한 것은 좋은 경험이야. 불행한 나를 사랑해. 고마워. 고마워.
신심 공심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 신심 없다. 이것이 나의 판단 분별이고 죄이며 불의다. 그가 소태산을 찾아 자기발로 찾아온 것은 놀라운 신심이다. 그는 능히 신심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게 대단한 것 아닌가? 불신을 경험해야 더 깊은 신심을 꽃피운다.
신심 없는 사람 속에 신심 있는 것이 다 북 차있다. 이것이 온전히 보는 정견正見이다. 바르게 본다는 것은 분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것이다.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공으로 체 받는 것이며. 응하여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應無所住而生其心.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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