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로 돌아가고 싶다
안영식
"태백산 억센바위 벋은 동산에 낙동강 근원지라 맑은 정기 솟는다
어둠속에 떠오르는 해와도 같이 새로운 빛을 내는 석포국민학교,"
알록달록 새옷을 입고 손에 손을 잡은 아이들이 교가를 부르면서 소풍을 가고 있다.
바로 우리집앞 도래 강변이다.
구문소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태백산 백천동 개곡물과 육송정에서 만나 서낭골을 거쳐오다가 반야골물과 석계천이 다시 합류하여 섭제를 한 바퀴 감아돌아서 우리집이 있는 도래를 다시 돌아간다.
물길이 돌아돌아 간다고 우리마을은 도래라고 불렀다
물길이 S자형태로 휘감고 돌아가는 덕분에 수 십 만평의 강변에는 모래밭과 몽돌밭이 생겨나서 소풍놀이뿐 아니라 야유회를 자주 오는 곳이다
그날 나는 소풍을 가지 못하고 아버지가 밭을 가는 소의 코뚜레를 잡고 있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였으나 아버지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린가슴에 한을 품고 눈물을 삭혀야 했다
낙동강!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한도 많고 꿈도 많던 내 어린시절은 하루 종일 강과 함께 했다
소장수 하시던 아버지가 부룩송이지를 사오시면 강변 풀밭으로 몰고가서 풀을 먹이고 주루막에는 나뭇잎과 쑥을 뜯어넣어서 소여물을 준비해야 했고 장마에 떠 내려온 나무들을 주워 모아서 땔 나무를 해야했다
철쭉꽃이 강변을 온통 붉은 꽃밭으로 만들고 강건너 너럭바위에는 하얀 돌단풍꽃이 바위를 덮었다
밭뚝에는 메주나무꽃이 사과 꽃 처럼 피었다
하얀 조팝나무 꽃, 붉은 팥꽃등 온통 강변은 철따라 꽃밭을 이루었다
강뚝 나무아래는 더덕, 도라지며 산나물이 지천으로 있었다
소먹이러 가서 소가 풀을 뜯어먹는 시간에는 강물에 떠 내려오다 바위틈에 얼기설기 걸린 낚시줄을 주워다가 미류나무 낚싯대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낚았다
철쭉꽃이 피는 무렵부터 낚시질이 시작된다
흐르는 여울에서는 피라미, 갈겨니가 낚이고 큰 바위곁에나 돌 틈에서는 매기나 꺽지를 낚았다
물속에 돌을 들추면 모래와 작은 돌을 붙여 집을 만든 '고니'라는 검은 물벌래가 있다.
잠자리의 애벌래다 그것을 미끼로 하면 피라미, 꺽지, 퉁가리등 모든 물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
또 돌을 들추었을 때 돌 뒤로 재빨리 돌아가는 '가나구'라는 노란 벌래도 좋은 미끼가 된다
살아있는 가나구의 등을 낚시바늘로 살짝 꿰어서
큰 바위 위에서 가만히 물속을 보면 신발짝 만 한 시커먼 꺽지가 바위 틈을 드나들 때
바로 그 찰나에 낚시를 드리우면 영락없이 물고 챈다
아, 그 짜릿한 손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돌 틈에 있던 퉁가리가 낚이는 날에는 가시에 독이 있어 조심히 다뤄야 한다.
잘못해서 쏘이면 벌에 쏘인 것 보다 더 아프다
오죽하면 '무당 셋이서 사흘 굿을 해야 낫는다' 라는 말이있다.
저녁때가 되면 작은 돌을 들추어 기름종개나 수수미꾸리, 퉁가리, 꾸구리등 어린 물고기를 미끼로 막대끝에 낚시를 매달아서 바위틈에 꼽아둿다가 이튼날 아침에 꺼내면 팔뚝만 한 매기나 뱀장어가 잡혔다
때로는 낚시에 빠져서 소먹이를 소흘히 했다가 소가 콩밭에라도 드는 날이면 아버지의 불호령에 혼줄이 나는 날도 있었다.
동부레기들은 이웃집 소들과 싸우는 바람에 꼭 구역을 정해놓고 소를 먹였다.
장마때가 되면 누런 황톳물이 넓은 강변을 휩쓸고 간다.
큰 물이 지나고 나면 없던 모래밭도 생겨나고 강변의 모습이 조금 바뀐 곳도 있다
어디서 떠 내려 왔는지 강버들에 하얀 비닐들이 무당집 깃발처럼 펄럭 거린다
망태를 짊어진 능마주이 들이 집개로 비닐을 주우러 다녔다
우리도 비닐이나 고무신 깡통등을 모아뒀다가 엿장수 아저씨에게 팔기도 했다
떠 내려온 나무들은 화목으로 쓰이고 공사판에서 떠내려온 각목들은 장도리로 못을 빼고 집이나 외양간을 고칠때 쓰였다
뺀 못은 바르게 펴서 못통에 담아두고 재활용했다
하나도 버릴게 없었다
강변은 어느틈에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다
늦여름에는 강변에 떠 내려오다 자리를 잡은 개똥참외나 수박들이 자라고 있다
각자 자기들 꺼라고 돌을 쌓아서 표시를 해두고 거름을 퍼다 주고 맛있게 익을 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던 강물에 내가 5학년 쯤 됐을(1965) 때부터 낚시질을 하면 물고기가 잡히질 않았다
여울에서 돌을 들춰보니 물벌래도 없었다
퇴비덤이에서 지렁이를 잡아다가 낚시질을 하면 꼬리가 구부러지거나 비늘이 벗겨져 상처난 피라미가 어쩌다 올라올 뿐 꺽지나 메기 퉁가리는 보이질 않았다
'대현 연화광업소'에서 돌가루와 함께 독한 약물이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강바닥은 갯펄처럼 돌가루가 쌓이기 시작하고 돌들은 붉은 색으로 변해 갔다
낚시질이 하고 싶으면 반야골 물이 내러오는 석개천 합수지점으로 가야했다
섭제는 제련소가 들어온다고 모두들 토지를 팔고 하나 둘 떠나갔다
우리가 사는 도래는 티타늄공장이 들어 온다고 경작지를 팔았다
모두들 그렇게 고향을 떠나갔다
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회지로 떠나왔다
고향을 찾는 연어들 처럼 항상 내 마음속에는 어린시절의 고향이 그리웠다
강물만 보면 낚시질이 하고 싶고 철쭉 꽃만 봐도 고향이 그립다
구불구불 칠 백리를 흘러가는 강물처럼,
때로는 좁아졌다 넓어졌다 폭포수를 이뤘다가 땜속에 갇히기도 하면서 살아온 강변의 개똥참외 같은 인생, 이제는 바다같은 포근한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
더 늙기전에 고향으로 가서 살고싶어 40년이 훌쩍 지나서 아내와 함께 고향을 찾아 갔다.
그 곳은 내가 자라고 살던 곳이 아니었다.
강물은 흐르고 있었지만 물에는 물고기가 없고 소 먹이고 놀던 강변에는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산에는 나무와 풀이 모두 선체로 말라죽어 붉은 산은 마치 폭격맞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눈물이 났다.
아! 이곳이 정녕 꿈에서도 그립던 고향산천이란 말인가?
승부쪽으로 내려가 보아도 물은 흐른다 만은 여울에 돌을 들춰보아도 물속에는 생명체가 없고, 강변에는 철쭉도 없고 나무도 없는 죽은 강이 맥없이 흐르고 있었다.
죽은 강을 가로지른 굴티다리위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이 뚝뚝 낙동강에 떨어진다.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우리가 살던 터전에서는 거대한 공장의 굴뚝에서 온 산천을 집어 삼킬듯이 매케한 연기만 하늘을 덮고 있다
영동선 철길위로 열차만이 무심하게 변하지 않고
낙동강을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첫댓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옛 시조는 그저 먼 과거일 뿐인가 봅니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기는 하는데 정취는 남겨두질 않습니다. 영풍제련소 폐수 사고를 보면서 얼마나 마은 저리실지 짐작이 가고도 남네요.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