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타기의 한
“이 경운기가 사람 죽인 게 맞죠?”
고달픈 몸이다. 경운기는 바위에 눌린 시시포스처럼 고된 일에 억눌려 왔다. 황소처럼 일만 했을 뿐인데 흉악한 소문이 나돈다. 오가는 이들이 힐끔힐끔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이라는 담타기를 쓴 듯하다. 그의 과거는 모른다. 전 주인이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관리기, 건조기, 저온저장고 등 사용하던 물건은 모두 가져가고 경운기만 덩그러니 남겨 놓았다. 오늘도 낯선 이가 이상하게 물어왔다.
땅을 갈아엎을 참이다. 경운기의 덮개를 벗기고 자욱하게 쌓여있는 먼지를 닦았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시동을 거니 소리가 요란하다. 기계음이 거칠게 들려서 불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긴가민가하다. 우리 속담에‘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섬찟하고,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 마음에 걸리고, 시동 소리가 거칠게 들려서 불길한 예감이 든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몰고 들어가려던 그를 다시 농막 옆으로 갖다가 놓았다.
기계가 할 일을 사람이 하자니 부지하세월이다. 며칠째 땅을 파도 티가 나지 않는다. 축구장 반만 한 크기라 경운기로 한나절만 갈아엎으면 될 일이다. 마음속에서 두 마음이 연신 싸우고 있다. 하나는 경운기로 갈아엎자고 하고, 다른 하나는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며 반대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죽는 것보다 나을 거라는 심정으로 삽질을 해 댔다. 섭씨 사십 도가 넘어가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땅을 파자니 말이 아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염전에 잘 마른 소금 덩어리처럼 보인다. 온몸은 깡패한테 두들겨 맞은 듯 여기저기 결리고 아프다. 기계가 할 일은 기계가 해야지, 사람의 힘으로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정말 경운기가 사람을 죽였을까. 몹시 궁금하여 수소문 끝에 경로당을 찾았다. 때마침 노인회장이 있기에 물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란다. 마을 대동계 하던 날, 죽은 이가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혼자서 땅을 갈아엎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땅을 술기운에 갈다가 귀퉁이에 있는 철제 파이프 끼여서 숨진 것이다. 그의 아내가 해 질 녘 남편 시신을 발견하고 경운기를 원망하면서 와전되었다.
술이 화근이다. 그런데 뜬소문만 듣고 경운기가 사람을 죽였다고 수군댄 것이다. 그는 한마디 변명도 못 한 채 담타기쓰고 농막 옆에 쭈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초라하다 못해 비루해 보였다. 온당한 일인가. 그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땅을 갈아엎고 고르고 이랑을 냈을 뿐인데 말이다. 그를 탓할 일인가.
한때 담타기쓰고 몸부림쳤다. 직장에선 계급이 깡패다. 늘공(직업 공무원)은 어공(선출직 공무원) 아래 존재한다. 가끔 둘이 마주치면 갈등을 빚는다. 일부 어공이 생색내려 하기 때문이다. 늘공은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려 하나 어공은 지지자나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어공이 어질러 놓은 쓰레기는 늘공이 치워야 한다. 수없이 감사받으며 확인서와 경위서를 쓰고, 때로는 징계를 받았다. 이뿐 아니다. 인사철만 되면 모함이 소리소문없이 퍼진다. 미련퉁이처럼 일만 했는데 ‘승진하려고 부하직원을 혹사한다, 성격이 날카롭다.’ 등 묘략이 이곳저곳을 누볐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면 어공 가까이에서 흘러나왔다. 듣고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 벼룻길에 서서 담타기의 한을 달래느라 비틀거렸다.
혹자 시비를 걸어온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단 한마디뿐이다. 벙어리처럼 살았다. 자칫, 구설에 오를까 두려워서다. 세상사 거짓이 진실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게 한둘 아니다. 거짓은 소구력이 있어서 발 없이 세상을 누빈다. 마침내 진실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가려버린다.
생의 반환점에서 뒤돌아본다. 담타기의 한은 걱정할 일 아니다. 거짓은 어둠이 가시고 안개가 걷히면 설 자리가 없다. 천하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고마울 뿐이다. 억울한 누명이나 오명을 바로 잡아준다. 시간이 지나며 쓰레기 같던 담타기의 한이 하나둘 풀린다. 마치 흙탕물 속에서 연꽃이 한 잎 두 잎 피어나듯 말이다. 지인들이 감사패나 공로패를 들고 와서 고생했다고 위로다. 세상은 마라톤처럼 끝까지 완주해 보아야 알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즐거웠다면 추억이요. 괴로웠다면 경험이 아닐까. 채소를 심을 때가 왔다. 땅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간 초라하고 비루해 보였던 경운기를 위로하며 쓰다듬었다. 담타기의 한이 풀려서인지 부드럽게 소리 낸다.
퉁 퉁 퉁 퉁…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 수필 <담타기의 한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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