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아주 어여쁜 걱정
고영
눈길에 꼬꾸라진 일곱 살 가영이가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을 털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보더니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내곤
아무 일 없다는 듯
버스 정류장을 향해 절룩거리며 뛰어갑니다
복지관에 간 지적장애인 엄마가 돌아올 시간인데
엄마의 보행기가 되어줘야 하는데
다발로 쏟아 붓는 함박눈이
자꾸 가영이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눈송이만 한 눈망울에
걱정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 ㅡㅡㅡㅡㅡ 눈이 내리면 눈썰매, 눈싸움, 눈사람을 떠올릴 일곱 살이 넘어지며 달려가는 곳이 버스정류장이다. 엄마의 욕심과 강요가 아니라 결핍이 아이의 자발적인 성장을 키우는 것이다. 눈이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도, 눈길에 고꾸라져 피가 흘러도 엄마가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가야한다.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가 아니라, 지적장애인 엄마를 걱정하는 일곱 살 아이다. ‘다발로 쏟아 붓는 함박눈’처럼 엄마 걱정이 그렁그렁 맺힌 일곱 살의 기특하고 애틋한 마음이 겹도록 아름답다.
영하의 혹한 속에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첫댓글 아랫목 군불을 짓피듯 따스함이 몽골몽골^^ 교수님의 방에는 늘 훈기가 느껴집니다.
자주 들려 맘 녹이세요. 황시인도 따뜻한 시 많이 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