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3세 [Napoléon III, 1808.4.20~1873.1.9]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 제2제정 황제. 정식이름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Louis-Napoléon Bonaparte)이며 파리 출생이다. 나폴레옹 1세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의 셋째아들. 어머니는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보나파르트. 제1제정의 붕괴로, 어머니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하여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7월혁명 뒤에도 추방령은 계속되어, 망명생활의 불만으로 이탈리아에서 카르보나리당(黨)에 입당하기도 하고, 루마니아 반란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나폴레옹 2세인 라이히슈타트공(公)의 죽음으로 보나파르트가(家)의 종주(宗主)가 되었다. 1836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신정부 수립을 계획하나 실패, 미국으로 탈출하였다. 이듬해 어머니의 죽음으로 스위스로 돌아와 1838년 런던에 갔다가 《나폴레옹적 이념:Des idées napoléoniennes》을발표하였다. 1840년 볼로냐에 상륙, 반란을 꾀하나 체포되어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에서는 공상적 사회주의에 몰두하여 《빈곤의 절멸》을 집필하였다. 1846년 탈옥,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2월혁명을 계기로 귀국하였다.
2월혁명 뒤부터 ‘나폴레옹적 이념’의 대표자 및 사회질서 ·안정의 옹호자로서의 자신을 표명,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75%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는 소농민의 지지, 대중의 영웅 대망열(待望熱), 우익급진주의 공포의 결과였다. 1851년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 공화파의 세력을 꺾었다. 그 해 말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고, 이듬해 1월 헌법을 제정, 11월 쿠데타기념일에 황제로 즉위하였다. 제2제정은 시민적 자유를 억압하였으나, 뒤에 ‘자유주의제국(帝國)’의 양상을 띠었다.
대외적으로는 크림전쟁(1854~1856)에서 러시아를 누르고, 청나라에도 출병하였으며(1861~1867), 1859년 이탈리아 통일전쟁에도 관여하여 니스 ·사보이아 두 도시를 얻었다. 프랑스를 국제적 고립화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고, 특히 멕시코원정(1861~1867)의 좌절은 제정(帝政)의 위신을 내외에 실추시켰다. 국내적으로는 철도망 확대 ·파리 미화 ·만국박람회 개최 등으로 국위를 선양하였다. 비스마르크의 정책에 농락당하여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돌입, 9월에 포로가 되었다. 파리에 혁명이 일어나서 제정은 붕괴되고, 영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첫댓글 영국으로 망명이후 미쳐버리죠.죽으면서 의사에게한말:스당전투에 참가햇심?
나폴레옹3세가 잡힌곳은 메츠아닌가요? 스당에 포위된 프랑스군 구하러가다 오히려 메츠에서 역포위 떡실신 당했는데 ㄱ-;;
반대로 알고있군요.메츠에서 포위당한거 구하러가다 스당에서 역포위당합니다
오우..제가 실수했군요..반대로 뒤집어 얘기를 하다니 ㅎㅎ;;
음...;
보나파르트 가문은 죄다 야심가인가?
그런듯 하군요. 그래서 프랑스 헌법에서 나폴레옹 집안을 대통령을 못한다고...
야심가의 성격은 물려받았으나 능력은 물려받지 못한 비운의 인물.
ㅋㅋㅋ
그래도 현재 파리를 디자인한 사람이 나폴레옹3세입니다...나폴레옹3세의 도시계획에 의해서 오늘날의 파리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