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 만주족 납란성덕(納蘭性德)의 대표 작품과 슬픈 정서
2020년 11월 30일
納蘭性德(1655-1685)은 字容若이고 號楞伽山人이며 만주족 정황기(正黃旗) 출신입니다.
북경에서 나고 자라서 17살에 국자감에 들어가고 18살에 향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병 때문에 시험에 참가하지 못하여 공사(貢士)가 되었고 강희 15년(1676)에 전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겨우 31살이던 강희 24년(1685) 5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노래 348수(또는 342수)를 남겼고 청나라 3대 작가의 하나라고 높이 평가받습니다.
그의 시문은 “맑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슬픔조차 아름답고 품격과 운율이 높고 길어 나름대로 특색을 가졌다.(清麗婉約,哀感頑豔,格高韻遠,獨具特色)”는 평가를 받습니다.
19살 강희 13년(1674)에 양광 총독 노흥조(盧興祖)의 딸과 결혼하였고 22살(1677)에 부인이 애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부인을 애도하는 글을 지었습니다.
그의 노래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불렀고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1997년 8월에는 대만 역사문학학회와 승덕납란성덕(承德納蘭性德) 연구회가 “해협양안 소수민족 문학 연토회(海峽兩岸 少數民族 文學 硏討會)”를 열었습니다. 중국 북쪽 승덕(承德)에는 납란성덕 연구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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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蘭花令、擬古決絕詞」:
人生若只如初見,何事秋風悲畫扇?
等閑變卻故人心,卻道故人心易變。
驪山語罷清宵半,淚雨零鈴終不怨。
何如薄倖錦衣郎,比翼連枝當日願?
마음에 둔 사람과 살면서 언제나 처음 만났던 느낌대로 지내면,
가을바람이 불자 버려진 예쁜 부채(漢成帝의 班婕妤)처럼 버림받은 슬픔을 걱정하랴?
이유 없이 가볍게 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는데,
오히려 애인의 마음이 쉽게 바뀌었다고 핑계를 대네.
당 현종은 여산 화청궁 장생전에서 양귀비와 영원한 사랑을 밤이 새도록 약속하더니,
당 현종은 마외파(馬嵬坡)에서 죽음을 내리고 빗소리와 방울 소리만 들어도 그리워 눈물 흘리지만 양귀비는 죽으면서도 원망하지 않았네.
무정한 당 현종은 어찌하랴? 하늘에서는 함께 나는 새가 되고 땅에서는 가지 붙은 나무가 되자고 약속하였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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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相思」:
山一程,水一程,
身向榆關那畔行,夜深千帳燈。
風一更,雪一更,
聒碎鄉心夢不成,故園無此聲。
하루는 산길을 가고 하루는 물길을 가고,
나는 산해관 북쪽으로 따라가는데, 밤이 깊어 밖을 보니 군인들 장막마다 등불이 켜있네.
한 시간은 바람이 불고 한 시간은 눈이 내리네,
시끄러운 바람 소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부수고 고향 꿈조차 꾸지 못하게 하는데,
내가 나고 자란 고향(북경)에는 이런 바람 소리도 없는데.
* 康熙 21년(1682)에 강희제가 운남(雲南) 지역을 평정하고 만주족 고향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려고 23일 산해관을 넘었습니다. 납란성덕도 따라가면서 오히려 낯선 풍경을 노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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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畫堂春」:
一生一代一雙人,爭教兩處銷魂。
相思相望不相親,天爲誰春?
漿向藍橋易乞,藥成碧海難奔。
若容相訪飲牛津,相對忘貧。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 한 번 맺어졌는데, 어찌하여 떨어져 영혼을 녹이고 깎아내는지
서로 그리워하고 바라만 보고 맺어지지 못하는데, 하늘은 누구 좋으라고 봄날을 만들었을까?
배항(裴航)이 목말라 물을 달래다가 남교(藍橋) 다리에서 만난 연인에게 쉽게 구혼하더라도,
예물로 불사약을 얻어도 항아(嫦娥)처럼 불사약을 훔쳐먹고 달나라로 도망가지 않을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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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鄉子、爲亡婦題照」:
淚咽卻無聲,只向從前悔薄情。
憑仗丹青重省識,盈盈,一片傷心畫不成。
別語忒分明,午夜鶼鶼夢早醒。
卿自早醒儂自夢,更更,泣盡風簷夜雨鈴。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목이 메어 소리도 나지 않고 다만 지난날 박정한 것만 후회합니다.
예쁜 사진을 보고야 기억이 나는데, 벅차고 벅차구나,
슬픈 마음만 가득 차올라 사진 그림을 그릴 수 없네요.
죽으면서 이별한 말들만 아주 선명히 남아, 다정하였던 꿈을 한밤중에 꾸다가도 일찍 깨어나네.
너는 꿈에서 일찍 깨었겠지만 나만 아직도 꿈을 꾸고, 한 시간 한 시간 흘러가서,
눈물이 다 마르고 바람은 처마에 불어 밤새 빗속에서 풍경 소리만 납니다.
* 납란성덕은 17살에 결혼한지 3년 만에 부인 노씨(盧氏)는 5월 30일에 애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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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縷曲、亡婦忌日有感」:
此恨何時已?
滴空階、寒更雨歇,葬花天氣。
三載悠悠魂夢杳,是夢久應醒矣。
料也覺、人間無味。
不及夜台塵土隔,冷清清、一片埋愁地。
釵鈿約,竟拋棄。
重泉若有雙魚寄。
好知他、年來苦樂,與誰相倚。
我自中宵成轉側,忍聽湘弦重理。
待結個、他生知己。
還怕兩人俱薄命,再緣慳、剩月零風裏。
清淚盡,紙灰起。
내 슬픔은 언제나 끝날까?
추운 밤 빈 댓돌에 떨어지던 빗방울도 그치고, 꽃이 져서 묻어준 5월이 왔구나.
3년이 길게 내 영혼은 꿈속에서 헤매는데, 이 꿈도 오래되었으니 이제는 깨어날 때도 되었구나.
생각해보니 꿈에서 깨어나더라도 이 세상은 재미가 없구나.
무덤에 가기도 전에 흙 덮인 무덤은 춥고 모든 아쉬움이 묻힌 곳이란 생각이 들고,
네가 아끼고 쓰던 장신구들을 언젠가는 버려야겠지요.
깊은 저승에도 서신이 오고 간다면,
네가 저승에서 3년 동안의 고락과 누가 너를 돌봐주었는지를 알 수 있을 텐데.
나는 한밤중에도 뒤척이다가 순임금 부인의 슬픈 노래를 억지로 듣는답니다.
다음 생에서도 맺어지질 기다리다가,
정말로 맺어졌으나 둘이 박명하여 다시 맺은 인연도 세파에 시달리다 짧을까 겁이 납니다.
이제는 눈물도 깨끗이 말랐고, 태우는 지전(紙錢)을 재가 되어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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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采桑子」:
明月多情應笑我,笑我如今。
辜負春心,獨自閑行獨自吟。
近來怕說當時事,結遍蘭襟。
月淺燈深,夢裏云歸何處尋。
정 많은 맑은 달은 내가 무정하다고 비웃겠지, 지금도 비웃고 있겠지,
봄날 같은 사람을 저버리고 혼자 걷고 혼자 답답하여 노래하는 것을.
지금은 지난 일을 꺼내기도 겁나지만, 그때는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는데.
달도 기울고 밤도 깊었는데 꿈에서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
* 采桑子는 2줄 44字로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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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臨江仙、寒柳」:
飛絮飛花何處是,層冰積雪摧殘,疏疏一樹五更寒。
愛他明月好,憔悴也相關。
最是繁絲搖落後,轉教人憶春山。
湔裙夢斷續應難。
西風多少恨,吹不散眉彎。
버드나무의 솜과 꽃은 날려서 어디로 갔을까? 버드나무는 두꺼운 얼음과 눈 속에서 꺾이고 부러졌는데, 쓸쓸히 외로운 버드나무는 한밤중에 더욱 춥겠지.
저 밝은 달을 비추고 싶은 대로 놔두면, 지쳐버린 버드나무도 마음 쓰여 비추어주겠지.
가지마다 무성하였던 잎들이 흔들려 떨어진 뒤에야, 지난 예쁜 봄날을 생각나게 하네.
바지를 적셔가며 물을 건너가 만났던 꿈이 깨니, 다시 꾸기 어렵네.
서쪽에서 부는 가을바람이 그리움과 미움을 조금은 실어갔지만, 내 이마의 걱정까지 불어 없애지는 못하네.